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

창세기39:1-6

오늘은 “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창세기 39장 1절부터 6절에 요셉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 요셉은 바로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가 있었습니다. 요셉이 노예 신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요셉을 형통한 자가 되게 해주셨고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더욱 잘 되었습니다. 요셉이 신임을 얻어 보디발의 집과 소유물을 관리한 후로부터 보디발의 집은 모든 일이 잘 되고 재산도 더욱 늘었습니다. 

보디발에게 요셉은 복덩이였습니다. 본문 2,3절과 23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2),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3), “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23).

이 구절들 속에는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말이 형통입니다.‘형통’(亨通)은 “세상 일이 뜻대로 잘 된다”는 뜻입니다. NIV 성경에는 prospe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Prosper는 ‘번성하다, 성공하다’ 이런 뜻입니다. 특히 23절 후반부 “ The Lord gave Joseph success in whatever he did”에는 형통이란 하는 일의 성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놓고 보면 성경에서도 형통은 하는 일이 잘 돼서 성공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무 일없이 무사태평한 게 아니라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위기에 몰리기도 하지만 결국에 일이 성공하게 된 것을 형통했다고 합니다.

요셉의 인생은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노예로 애굽에 끌려온 요셉은 바로의 경호실장에 해당되는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습니다. 그런 요셉을 가리켜 하나님이 함께 하여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형통과는 좀 다릅니다. 하는 일이 잘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승진하고 권력도 갖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세상적으로 출세해야 형통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으로 끌려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누명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이건 확 꼬인 인생입니다.

그런데 성경엔 요셉에 대해 하나님이 함께 하여 형통한 자가 되었고 또 매사에 형통하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형통이라는 말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통이란 아무런 고난도 시련도 없이 편안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기도 당하고 누명 쓰고 고난도 당하고 나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중에도 돕는 사람이 있어 살길이 열리고 그런 고난과 역경이 마침내 성공의 계기가 되는 그런 것입니다

노예로 팔렸을 때 끝나버린 인생인 줄 알았는데 보디발 같은 사람을 만나 인정을 받습니다. 한 숨 돌리나 싶었는데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감옥에서 바로 왕의 신하를 만나 그것이 계기가 되어 총리의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이젠 죽었구나 싶은 고비마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고비마다 누군가 돕는 이들이 있어 결국 성공합니다. 이런 사람을 형통한 자라고 합니다. 졸부 아버지 덕에 흥청거리는 사람을 형통한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형통은 격랑이 이는 바다위의 뱃사공 같은 인생에게나 해당되는 말입니다.

여호수아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정복하러 가기 직전에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7,8). 

여호수아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전쟁하러 가야 합니다. 가나안원주민 중에는 아낙자손 같은 거인족들도 있었습니다. 오래 전 아버지 세대들이 그들의 기에 눌려 그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메뚜기 같다고 말했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다 죽었잖습니까. 그런 걸 생각하면 가나안 전쟁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싸워도 될까 말까 합니다. 실제로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고 병사들이 죽기도 했습니다(수7:5). 이런 사람에게 형통하리라는 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형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요셉이나 여호수아가 형통한 자가 되는 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고,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당시 애굽에 끌려간 노예들이 다 보디발의 눈에 들어 그 집 일을 하고, 감옥에서도 신임을 얻고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고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모든 역경을 다 극복하고 마침내 형통한 자가 되어 총리의 자리에 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며 도와주어야 형통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조건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맘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며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도 형통하는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할 때는 전쟁에 승리하고 하나님이 떠났을 때는 전쟁에 패했습니다. 여리고성의 함락은 여호수아 군대가 강해서 이긴 게 아니라 지진이 일어나 성이 안으로 무너졌다는 게 고고학자들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전 제품에 전기 역할을 해주셔야 합니다. 얼마 전에 주일에 바람이 심하게 분 적 있는데 예배 마치고 집에 가보니 우리가 사는 구역만 전기가 나갔습니다. 예배 후에 집에 가면 컴퓨터 작업을 하거나 휴식 겸 뉴스를 보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기가 나가니까 모든 가전제품이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컴퓨터를 쓸 수도 없고, TV로 뉴스도 볼 수가 없고 히터도 돌지 않았습니다. 전기만 나갔을 뿐 모든 게 그대로 있는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우리 인생도 전기 나간 가전제품처럼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요셉과 여호수아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형통하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지침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안 주인이 유혹할 때 하나님께 범죄하기 않으려고 뛰쳐나갔습니다. 다른 정탐꾼들이 이젠 죽었다고 낙담할 때 여호수아는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14:9)고 백성들을 격려했습니다. 여호와를 믿지 못하고 불평한 사람들이 다 죽은 후에도 여호수아는 갈렙과 함께 살아서 가나안 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 보낸 모양세는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굽에 가야 한다면 노예로 팔려가는 것보다 좀더 폼 나게 가게 해주면 안되었을까요? 생가해보니, 요셉을 2인자의 자리에 올리기 전에 낮추실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겸손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남보다 조금만 잘난 게 있으면 그걸 평생 우려 먹으려고 듭니다. 가문, 학벌, 재산, 외모, 출신지역 등 뭐든 남보다 낫다 싶으면 그것부터 입에 올립니다. 깨져야 겸손해집니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요셉은 노예의 자리에서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인정하고 더욱 겸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요셉과 여호수아에게서 인생의 교훈을 얻읍시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게 최종 목적지도 아니고 과정일 뿐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머리의 노릇을 하고 있든, 종 노릇을 하고 있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가 있다면 어떤 형편가운데 있든 어떤 인생을 살든 걱정 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형통한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맘대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살 게 되기 바랍니다. 얼마나 편하냐 고생하냐 그런 것을 자랑하지 마세요. 필요하며 고생도 해야 합니다. 밑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라면 고생하세요. 돈 벌고 권력 잡는 그런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기 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교우 여러분,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바랍니다. 누가 어떻게 보든, 뭐라고 말하든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기 때문에 교만하다, 무례하다고 한다면 그런 말은 무시해도 괜찮습니다. 사람의 말보다 성경의 말씀을 존중합시다. 그 다음 다른 사람과 세상적 성공을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걸어가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형통한 자가 되어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