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개인전도

마4:17-25
예수님의 개인전도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다섯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다섯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제자를 세우는 사역 
2. 개인전도하는 사역 
3. 인류의 대속을 위한 사역 
4. 중보자의 사역 
5. 재판관의 사역 

오늘은 두 번재 개인전도하는 사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예수님의 두번째 사역 개인전도에 대해 살펴보는 이유는 우리가 9,10월 전 교인이 전도에 힘쓰고 있는데, 예수님을 통해 개인전도차원에 대해 배우고 도전도 받으려고 합니다. 

복음서의 기록을 볼 때, 예수님의 개인전도는공개적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직전까지 대략 3년의 사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4장에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시면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 직후에 침례요한이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침례 요한이 투옥된 배경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당국자들이 침례요한을 잡에 옥에 가둔 이유는 마태복음14장 3절이하에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했는데 헤롯의 권세에 눌려 아무도 부당함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침례요한이 왕궁으로 헤롯을 찾아가서 동생이 아직 살아 있는데,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헤롯과 헤로디아는 침례요한을 눈의 가시처럼 여기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침례요한을 옥에 가두었다가 나중에는 참수하라 지시한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예수님 출생 직후 3세 이하의 사내를 죽이라고 지시한 헤롯왕(헤롯대왕)은 침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위대하다는 뜻이 아니라 구별하기 위해 헤롯대왕으로 불립니다. 헤롯대왕은 여러 부인을 두었는데, 부인 마리암네2세에게서 빌립1세를 얻고, 부인 말다케에게서 아켈라오와 헤롯 안티파스를 얻고, 클레오파트라에게서 빌립2세를 얻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부인들과 아들들이 더 있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아라비아의 왕, 아레타스4세의 딸과 결혼하고 동생 빌립1세는 헤로디아와 결혼해 둘다 기혼자였습니다. 그런데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보고 사랑에 빠져, 그걸 사랑이라고 표현하는게 적절지 못하지만, 아무튼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 부인과는 이혼하고서 헤로디아를 데려다 아내를 삼고 말았습니다. 이런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헤롯이 로마 권력자들에게 아부해서 유대에 대한 통치권을  얻어 권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심은 좋을리 없었습니다. 헤롯가문이 에서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삭의 후손인 유대 백성들은 헤롯왕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레타스 4세도 자기 딸을 내버린 헤롯에게 복수하기 위해 유대를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에 헤롯과 주변 권세가들은 침례 요한으로 인해 민심이 동요되어 소요가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침례요한을 옥에 가둔 것입니다. 

침례요한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유년 시절에 갈릴리에 지역에서 사셨는데,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기 위해, 말하자면 메시야 대관식을 하러 유대로 내려오신 것인데, 침례요한이 잡혀들어갔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갈릴리로 떠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겁나서 갈릴리로 도망가신 것은 아니고 아직 공개적으로 드러내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부터 회개하라 찬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해변가에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셨는데, 거기엔 늘상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18절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바닷가에서 그물 던지를 것을 보고 다가가서 전도했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지금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있는 그 청년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오라는 요청은 오늘 우리가 누군가 찾아가 예수 믿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따라올 것을 미리 아셨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면 어떤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그 청년은 재물을 아깝게 여기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라도 요청이 거부될 가능성은 여전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찾아가서 전도하려고 할 때 거절당할 것을 미리 생각해서 주저하면 전도하기 어렵습니다.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100% 성공한 셈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전도자의 몫이 아니고 피전도자의 몫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믿기를 거부한다면 전도의 실패는 전도자가 아니라 전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전도를 받고도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한 그 사람이 실패하는 것이고 그 사람이 구원 얻지 못하는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전도자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는 것을 이겨내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전도하려면 누구라도 낯선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도하는 경우라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전도는 마귀가 지배하는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인 긴장감이 생깁니다. 어떤 때는 말 그대로 전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정도의 거센 저항과 반격이 뒤 따르기도합니다. 그래서 전도하가다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 서먹하고 멀어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것을 염려해서 가만 있으면 겉으로는 평안하게 느껴질 지 모르지만 그 영혼을 주님께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전도한 내탓이라고 잘못 생각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찾아가 말해야합니다. 

원래 불신자나 마귀의 지배아래 있는 환경에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지, 맘대로 전도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전도할 때도 예수에 대해서는 어떤 말이든 일체 하지 못하게 금지시키고 그걸 위반하면 옥에 가두고 매질을 하고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그게 겁나서 전도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한 세기 후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 당시 제자들은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 너희 말을 듣는 것과 어느 것이 옳은 것이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도하다가 붙잡혀가고 매도 맞고 그랬다고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얻은 사람은 누구든 성령이 주시는 내적 확신을 가지고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제자처럼 증인이 되는 게 당연합니다. 훈련받아야 전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 내가 만난 예수님, 그 분이 누구시며, 믿으면 뭐가 달리는지, 믿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전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주신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분이 우리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고 누구든지 그것을 믿으면 죄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된다는 것을 전하면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의 내용을 전하는 것이지 복음의 내용을 믿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깨닫고 믿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즉시 믿게도 하고 나중에 믿게도 하실 것입니다. 당장 안 믿는다고 우리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된 것은 먼저 예수님이 찾아가서 불렀기 때문입니다. 21절 보면, 예수님은 똑같은 방식으로 야고보와 요한도 찾아가서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부르셨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겐 어떤 사람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시대는 발로 직접 찾아가는 것 외에도 전도할 수 있는 많은 방식이 있습니다. 전화를 걸어 말하는 것, 메일로 초청하는 것, 카톡이나 페이스 북 같은 SNS를 통해서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SNS 통해서 별 이야기를 다하면서 신앙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실례라고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마귀의 속임수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병으로 죽어갈 때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어떤 약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그걸 SNS통해 말하면 그 사람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해서 실례가 되겠습니까? 

개인전도의 측면에서 볼 때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개인적으로 전도하셨습니다. 수 많은 무리들을 대상으로 집회도 하셨지만, 틈이 날 때마다 개인적으로 이 마을 저 마을 다니시면서 어떤 때는 회당에서 가르치는 방식으로, 어떤 때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어떤 때는 병을 고쳐주면서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후에 제자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똑같은 방식으로 전도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본을 따라서 개인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개인전도의 차원에선 교회가 어떤 전도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목사님 목자들은 어떻게 전도하고 있는지 그런 것 신경쓰기 전에 나 자신의 전도계획을 세우고, 사람을 찾아다니며 전도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을 찾아내 전도하는 전략 중에는 새신자의 인맥을 적극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가복음2장 1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초청하고 그의 집에가서 식사하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도 레위 집에 모여 예수님과 식사했는데, 그들중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기시작했다고 합니다. 레위의 집에 모인 세리와 죄인들은 대부분 레위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최근 교회 나오기 시작한 사람 주변엔 우리가 좀더 신경쓰면 전도할 대상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도대상자를 찾는데 새가족 주변 불신자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교회성장원’이 34,000명이 넘는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80%이상이 친구 또는 친척을 통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Finding them,p.57) 불신자 친구가 있는 교우들은 기도하고 용기를 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초청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