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배우는 인생

창15:1-6

오늘은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을 배우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 믿음의 성장과정입니다. 아브라함도 보통 사람처럼 처음엔 별로 믿음 없는 사람처럼 살다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세월이 흐르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교훈과 위로가 됩니다. 감히 우리하고는 차원이 다른 그런 성인이었다면 아브라함을 본받자고 하기 어려울 건데 아브라함 역시 우리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후반기의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생은 어디서 어떻게 살든 누구에게나 이런 저런 일이 생깁니다. 청소년시절, 청년시절, 중장년,노년, 인생 말년까지 가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도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축복의 언약 속에 산다고 해서 만사 형통은 아니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그런 순진한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괜히 실망하고 믿음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12장부터 15장까지 아브라함 부부가 하나님 믿고 사는 동안 생긴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서 얼마 안되어 심한 기근(famine)을 만나 애굽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 사업이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거죠. 요즘에 경기가 침체되어 실직하거나 수입이 줄어 형편이 좋은 곳을 찾아 이사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좀 나을까 싶어 애굽으로 가는 중인데 아내 미모가 걱정이 됐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아내를 탐내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아내보고 누가 물으면 누이라고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전 뭐 미국 올 때 이런 걱정은 안 했는데, 그 당시 애굽 땅은 좀 험악했나 봅니다.

아브라함이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애굽에서 좀 처럼 보기 힘든 아리따운 여인이  애굽 땅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바로 왕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궁에서 사람이 나와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조사하고 누이라고 하자 후한 선물을 주고 사라를 궁으로 데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누이라고 해서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나귀와 약대를 얻고 위험은 면했지만 꼼짝 없이 아내를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바로에게 남의 아내를 빼앗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해서 바로가 사라를 돌려보내주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잔꾀를 부렸습니다. 그 결과 위험을 면하고 재물도 좀 얻었지만 체면은 구겼습니다. 조카 롯이 그걸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합니다. 삼촌이 수가 높다고 했을까요 뒤에서 비웃었을까요?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탓하지 않고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을 모르실리 없죠. 믿음이라곤 속눈썹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때도 하나님은 지켜주십니다. 그렇다고 믿음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린 아이일 때는 그렇다는 겁니다.

어찌 되었든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 육축과 은금이 풍부했습니다. 그걸 보면 아브라함 부부가 상당기간 애굽에 머문 것 같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무조건 청빈하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른 이후 물질적으로 결코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흩어져 살게 할 만큼 재물을 모았습니다(창25:6). 물론 구약 시대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이나 목사들이 불신자들보다 가난하게 사는 게 하나님이 더 바라사는 것은 아닙니다.다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탐욕과 사치를 경계할 필요는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후 아브라함 가솔들과 조카 롯의 가솔들 사이에 다툼이 생겨 서로 헤어져 살기로 결정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가족이 함께 사는 게 좋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면 싸우고 시기하기 보다 적당히 떨어져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혈육의 정을 나누는 것이 더 좋겠죠. 조카와 별거를 결정할 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기가 우선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었지만 조카보고 먼저 원하는 지역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목축이 주업인 상태에서 좋은 초지를 양보하는 것은 상당한 손실을 감수한 결단입니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와 동서남북 보이는 모든 땅을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포기하니까 하나님은 그 포기한 것까지 포함해 더 주셨습니다. 욕심 낸다고 다 내 것이 되진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부부가 한동안 평안하게 잘 지내고 있을 때 사고가 터졌습니다. 14장 1절 이하를 보면, 엘람 동맹국(4개국)과 사해 주변국(5개국) 간에 전쟁이 일어나 사해 주변국이 패하여 사해 연합군에 속한 소돔 땅에 살던 롯이 엘람 동맹군에게 사로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전쟁이 일어난 곳에서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해온 사람을 통해 조카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병 318명을 데리고 뒤 쫓아가서 조카 롯과 빼앗겼던 재물까지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자기 안전을 챙기던 사람이 이젠 조카를 위해 죽을 지도 모르는 위험 속으로 뛰어 드네요.

엘람왕은 지금의 이란, 이라크 북쪽 지역 패권자로서 막강한 군사력으로 제국의 위치에서 주변국의 조공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해 주변국인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왕들 또한 12년 동안 엘람왕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13년 되는 해에 서로 연합해서 엘람왕에게 저항했습니다. 그러자 엘람이 동맹국에게 동원령을 내려 사해 다섯나라를 응징하려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이런 자를 상대로 목축 일을 하면 짐승들이나 상대로 싸우던 가병 318명을 데리고 조카를 구하겠다고 출전하는 것은 참 무모하게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가신들을 나누어 야음을 이용해 급습해 엘람 동맹군을 대파시켰습니다. 낮에 준비하고 맞이한 전투라면 아브라함이 상대가 안되었겠지만 장수나 병사들이나 승전을 축하하며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전혀 예상 못한 기습이라 꼼짝 없이 당했을 것입니다. 롯을 모른척 할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은 도리를 다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참 많이 변했네요. 믿음도 커지고 책임감도 커지고 결단할 때 결단할 줄 아는 용기도 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해 주변국에 아브라함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졌습니다.

그 다음 15장 내용을 봅시다. 롯을 구출한 사건이 있은 후에 아브라함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아들을 낳게 해서 후사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난 주 말씀드린 것처럼 아들 낳게 해주겠다는 약속 하나 믿고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온 아브라함이지만 10여 년 가까이 흐를 때까지 아직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나이를 생각하면 조급한 마음도 생기고 또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 별을 보라고 하시면서 저 별처럼 많은 후손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어주는 아브라함을 의롭게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의의 개념을 선행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뭘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보시는 관점은 다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뭘 잘했다기 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보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의롭다고 해주겠다는 하나님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봐주십니다. 의롭다함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선행과 상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임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받았을 때 한 순간의 고백으로 이뤄집니다.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통해 진실함 마음에서 나온 고백이면 반복할 필요없이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것은 세상 떠날 때까지 때로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배웁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믿음의 사람답게 변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더 큰 믿음 대신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엔 믿음보다 꾀를 내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달라졌습니다. 교우 여러분들도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믿음에서 자라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