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약2:1-13

오늘은 야보고서 2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외모나 신체적 조건, 재산이나 학벌이나 세상 지위 등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야고보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죄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약2:9).

미혼 청년 여러분들은 이성 친구를 고를 때 뭘 봅니까? 외모를 먼저 봅니까? 그 사람의 중심을 먼저 봅니까? 여러분 부모님들은 사위나 며느리 감을 고를 때 뭘 먼저 보는 것 같습니까? 부모의 경제력이나 당사자의 직장 등을 봅니까? 사람 됨됨이를 봅니까? 저도 수년 내에 결혼하면 좋을 자녀를 둔 부모입장인데 사람만 괜찮으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쉽지 않은데, 아무든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외적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고 그런 적이 있으면 회개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1절의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이 구절은 헬라어 προσωποληψια(프로소폴렢시아)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편애, 혹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 하는 것을 뜻합니다. 9절에도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이런 구절이 있는데, 여기엔 동사 προσωποληπτητε(프로소폴렢테태)가 쓰였고 , ‘사람을 차별하다’는 뜻입니다. 프로소폴렢시아, 프로소폴렢테태, 이 두 단어는 모두 ‘얼굴’의 뜻인 헬라어 πρόσωπον(프로소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얼굴에서 유래된 말로서 ‘외모로 사람을 취한다’는 것은 미모나 신체적 조건, 혹은 그 사람의 직위나 지식이나 재산 같은 외적 조건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께서 이것을 지적한 것은 그 당시 유대인 회당에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여 차별하는 악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나 이런 것으로 형제들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모른 척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10장 34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 고넬료에게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고 예수 믿은 고넬료 가족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을 때 베드로는 고넬료가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백부장으로 이방인이었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또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힘쓴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로마서 2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로마교회에 다니는 일부 유대인들이 신앙생활은 바르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택함 받은 민족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내세운 듯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는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외모는 민족 혈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유대인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가 사울이 불순종하여 실망하신 후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에게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 중에 한 사람을 왕으로 선택했으니 가서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새가 사는 베들레헴에 가서 제사 자리에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불렀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중에 엘리압을 보자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선택한 줄 알고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 용모와 신장이 다른 아들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삼상16:7)고 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이 외모를 본다고 하신 것처럼, 사실 우리는 외적 조건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남자 친구 고를 때, 자녀를 결혼시키려고 선보게 할 때 뭔저 뭘봅니까? 대부분 외모를 먼저 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를 구할 때도 외모나 조건을 따져봅니다. 인상이 좋은지 설교는 잘하는지, 어느 신학교를 나왔는지 학벌을 따집니다. 직장에선 사람을 써 먹기 위해 사람을 뽑는 것이니 여러 조건과 능력을 따져 평가하더라도 교회에선 외모보다 중심을 봐야 할 것입니다.

요즘 세상 인심은 인품이나 인생을 얼마나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는지 이런 것은 별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재산을 얼마나 모았는지 또 얼마나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지 그런 게 높은 점수를 얻습니다. 재물이 많고 겉 모습이 번듯해야 대우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문 2절 이하를 보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 사는 세상은 참 똑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옛날 유대인 회당에서도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으로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은 회당장이 좋은 자리를 배석해주고 허름한 옷차림의 가난한 사람들은 말석에 앉게 하는 등 대 놓고 무시한 것 같습니다.

야고보의 지적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2절 이하에서 야보고는 회당에서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좋은 자리로 안내하고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은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거기 서있든지 저리 구석에 가서 앉으라고 하면 주 안에서 형제된 너희들이 서로 악한 생각으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야고보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율법을 거론하며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죄가 된다고 책망했습니다.

끝으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습관이 있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외적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데 익숙해있습니다. 그래서 외모와 상관없이 전혀 객관적으로 대하기는 어렵지만 오늘 이후에는 가급적 외적 조건을 보고 차별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합시다. 교회에서 조건을 따져 형제나 자매를 평가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된다는 것도 생각하기 바랍니다.

사춘기부터 결혼할 때까지 청년 여러분들은 특히 미모나 신체적 조건에 민감할 것입니다. 이성 친구를 고를 때 남자들은 첫째 조건이 이뻐야 하고, 둘째 조건은 미인이어야 야고, 셋째 조건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외모로 판단하겠다는 거죠. 여자들은 남자보단 외모를 덜 따진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중심을 보는 건 아니고 외모 대신 다른 외적 조건을 따지는 것같습니다. 가령 남자의 수입, 가정환경, 성격, 비젼, 종교 등을 봅니다. 결과적으로 외모를 따지는 건 비슷하다는 이야기죠. 미모보다 믿음과 심성을 살피고 그 사람 부모의 삶을 살피고 그러기 바랍니다. 자식은 어떤 형태로든 부모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외모만으로 사람을 취하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도 외모를 보고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가 실망하지 않았습니까? 사무엘상 9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울보다 더 준수한(풍채가 썩 빼어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했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사울은 외모가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사울에겐 왕이 되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아집과 교만이 있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도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보고 매우 실망하셨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사무엘 선지자도 사울왕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삼상16:1).

야고보께서 지적한 것처럼 교회에서 좋은 옷으로 치장하고 명품 백을 들고 고급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가난한 교우들을 생각해 삼가하는 게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치장하고 다니는 교인들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교회에서 세상의 직업, 직위, 이런 걸 가지고 사람을 평가해선 안됩니다. 전에 어떤 교회에선 출신학교든, 직업이든 이런 건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 나왔다거나 의사라거나 삼성에 다닌다고 하거나 뭐 그러면 높이 보고 조건이 좋지 못하면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러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에선 언제 예수 믿고 거듭났는지, 왜 하나님 나라에 인생을 걸고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을 화제로 삼고 전도하는 이야기로 꽃을 피워야 합니다. 세상 사는 형편이나 집이나 자동차나 옷이나 보석 치장이나 쇼핑이야기나 자녀들이 어디 대학 들어가고 어디 취업하고 돈을 얼마를 벌고 이런 이야기를 일삼는 교제는 앞으로는 피하면 좋겠습니다. 교회에서는 사회적 배경이나 헌금을 많이 하는 교인들을 알아주고 직분도 주고 그러기 쉬운데 이것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