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고백하는 믿음

야고보서2:14—26

오늘 본문의 말씀은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야고보의 생각이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신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남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그것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오늘은 믿음과 행함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2주 전에 살펴본 것처럼, 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고보는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실제로 입고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말로만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한다면 무든 도움이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이것은 말씀대로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뿐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행함으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만 믿음이라는 야고보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두 사람이 믿음과 행함을 가지고 논쟁합니다. 한 사람은 믿음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은 행함을 강조합니다. 야고보는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겠다는 사람 입장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행함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 믿음을 보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으로 자기 믿음을 보이겠다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믿음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강조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야고보를 믿음보다 행위를 강조한 율법주의자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율법의 행위만을 강조하는 유대인들과 달리 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2장 1절에서 야고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사람이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여 행함으로 표현되는 믿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표현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신앙고백하는 교인들이 많은 요즘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위해 시간을 내고 헌금을 드리는 건 인색합니다. 기성교인들은 이사 가서 교회를 찾을 때 집 근처에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가 있어도 피해서 멀리 큰 교회를 다닙니다. 그 이유는 큰 교회가 좋은 시설에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에 다니면 부담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당 짓는다고 하면 건축헌금도 해야 하고 또 일꾼이 없어 이 일 저 일 시키면 못한다고 하기도 미안하고 그러니 부담 없이 주일에만 출석해도 되는 큰 교회에 나간다는 겁니다. 이런 교인들은 말로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행함은 없고 말로만 예수 믿는 믿음은 귀신의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19절에서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귀신들도 믿고 떠든다”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다고 시인하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 믿음이라는 것이 귀신들이 믿고 떠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믿음을 온전케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화로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제시했습니다. 야고보는 21절부터 23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행함에 대해 말했습니다. 야고보는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린 아브라함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믿음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함이 함께 작용하여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25절에서 “이로 보건데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고 말했습니다.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야고보의 주장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로마서 4장 1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말하고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라고 주장하니 문맥을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한 것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와 바울 사도 강조하는 관점이 다를 뿐 서로 다른 주장을 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의 율법주의에 반대하여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강조한 것은 믿음과 상관없는 인간의 그 어떤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야고보는 믿음대로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행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행함을 강조할 때 야고보가 믿음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는 행함으로 표현될 때 그 믿음이 구원의 효력이 있다고 믿음의 행함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야고보는 말뿐인 믿음을 부정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25절에 기록된 것처럼, 기생 라합에게서도 이스라엘 정탐군을 숨겨주고 또 피신하도록 도와준 그녀의 행동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는 근거가 되었다고 봤습니다. 만일 여리고성에 거주하는 기생 라합이 여리고 수비대로부터 이스라엘 정탐군이 쫓길 때 숨겨주지도 않고 피신하도록 도와주지도 않고 그냥 모른척했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여리고성이 함락당할 때 먼저 구출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야고보는 라합이 반역자로 몰릴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탐을 돕는 행동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행위로 표현함으로 구원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 곧 구원얻는 근거가 믿음인가 행위인가 이분법으로 논쟁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믿음과 상관없는 어떤 의로운 행위로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 기준으로 어떤 의로운 행위라도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얻게 해줍니다. 다만 그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 되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행함이 강조되고 행함이 구원에 이르게 해줍니다. 이것이 야고보의 가르침입니다.

야고보의 가르침이 잘못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진리의 말씀이라고 인정하면, 우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대로 사느냐 아니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건 귀신들의 말장난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 다니는 것은 헛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노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마음의 눈이 어둡게 합니다. 마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로만 믿고 세상 욕심을 위해 살게 유혹해서 그 믿음이 결국 아무 소용없어 멸망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야고보께서 지적한 것처럼 행함이 없어 헛 것이 되어버린 결과 생겨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야고보께서 지적한 것처럼 말로만 사랑하고 위로하고 실제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도 주님의 사랑도 교회에서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동받지 못하고 변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바를 교회 안에서 또 이웃에게 햄함으로 보인다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런데도 자기 유익만 생각하며 말로만 평안하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그러면서 정작 쓸 것은 주지 않는 교인이 되렵니까?

먼저 개인적으로 누구라 할 것 없이 여러분 모두 행함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랍니다. 성령이 마음에 감동하시는 바를 주저하지 말고 매일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으로 수고하고 재물도 써야 할 겁니다. 교회 차원에서도 재정의 일부를 성도들을 돕는데 쓰고 교우들도 사랑의 헌금에 적극 동참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말만 하고 가만 있는 것보다 이렇게 하나씩 실천해가면 우리 교회가 말로만 위로하는 교회가 아니라 실제로 쓸 것도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주님 말씀을 듣는 의미가 있고 또 순종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도움의 활동은 여러분 각자 알아서 하기 바랍니다. 교회 차원에선 우리가 매달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십일조의 십일조인 수입의 100분의 1은 사랑의 헌금으로 드리는 방침으로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학생 여러분들도 모두 동참하기 바랍니다. 어려운 사람도 동참하세요. 동시에 교회에 도움을 청하세요. 원하는 만큼 다 돕진 못할지라도 힘껏 도울 겁니다.의식주에 곤란을 겪는 교인들은 우리가 당연히 나서 도와야 합니다. 그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입니다. 말과 삶이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힘씁시다. 한 주간 성령의 인도아래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