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대속

로마서3:21-31

오늘은 예수님의 대속을 주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문 24절을 보면 “예수 안에 있는구속”이란 말이 나옵니다. 구속으로 번역된 헬라어 απολυτρωσεωs 는 종으로 팔린 사람을 그의 친족이 속전을 지불하고 해방시켜주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이란 말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해내기 위해 우리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어떻게 작용해서 죄인이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몇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예수님의 죽음을 대속(atonement)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목양칼럼을 읽어보면 참고가 될 것입니다.

1. 속죄제사
우리는 대속을 속죄제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4장엔 죄의식이 생겼을 때 드리는 속죄제사 규례가 나옵니다. 제사장, 회중, 족장, 평민 누구든 여호와의 금령을 범한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희생동물을 회막으로 끌고 가서 그 머리에 안수한 후 잡아 피를 단에 뿌리도록 했습니다.

레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레4:4,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또한 레위기16장을 보면, 매년 7월 10일 한 차례 전국민을 위해 속죄일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 때는 수송아지로 속죄제사를 드리는 것 외에도 두 염소를 취해 제비 뽑아 하나는 여호와께 속죄제로 드리고 한 염소는 아사셀을 위해 광야로 내보냈습니다. 21, 22절을 보면, 광야로 보내는 염소의 머리에도 먼저 안수했는데 이건 백성들의 죄를 염소에게 떠넘기는 의식이었고 염소는 백성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광야로 추방되었습니다.

레16: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레16: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레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 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속죄제사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당사자가 잘못을 의식하게 될 때 희생제물을 회막에 가져와 머리에 안수해서 죄를 전가시킨 후 제사장이 잡아 피를 속죄제단에 뿌렸습니다. 동물에 안수하는 것은 죄를 지은 당사자가 하지만 전체 회중이 범죄한 경우는 회중가운데 장로가 대표로 안수하고, 일년에 한 차례 7월 10일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 아론이 온 백성을 대표하여 제물에 안수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동물을 통한 속죄제사는 동물에게 인간의 죄를 떠넘기고 동물은 인간을 대신하여 죄를 담당하고 죽었으며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2. 어린양 예수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오실 때“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요1:29, 36) 소개했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소개했을 때 요한의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적어도 유대문화 속에 자란 사람이라면 어린 양이 뭘 의미하는지 즉각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성전에선 각종 제사로 수 많은 어린양들이 속죄제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라면 어린양이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고 죽어가는 속죄제물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요한은 나사렛 출신 청년 예수가 어떻게 인류의 죄를 떠맡아 죽음을 당하게 될 속죄제물인 어린양인 줄 알 수 있었습니까? 침례 요한은 메시야를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임무를 받고 세상에 온 사람이었습니다(요1: 6,7). 하나님의 사자는 요한에게 “성령이 내려 누구든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 분이 성령으로 침례 주는 분임을 알라”(요1:33)고 일러주었습니다. 마태복음3장 13절~17절을 보면,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침례 주고 있는 요한에게 와서 침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처럼 내려 임하셨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라”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표징을 근거로 요한은 이 나사렛 청년이 성령으로 침례주실 구세주 메시야로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요한은 예수님이 어린양처럼 사람들의 죄를 떠맡고 대신 죽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지낸 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 것을 말씀하실 때 걱정하며 안된다고 만류하다 나중엔 실망해서 떠나려던 것에 비하면 침례요한은 그 어떤 제자보다 메시야에 대한 이해가 분명했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 자신은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5,26절에서 사마리아여인이“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것입니다”그렇게 대답하자, 예수님은 “지금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라”대답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직접 자신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밝힌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6장의 베드로와 대화 속에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베드로의 고백을 긍정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물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대답했습니다. 이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라고 말했습니다(마16:16,17).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에 자신이 메시야 곧 구세주이신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 다음 그리스도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을 보면, 예수님은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타일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대속물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인식했습니다. 대속물이 되기 위해선 어린양처럼 죽어야 합니다.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최소한 세번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장 21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
마태17:22,23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태20:17-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 2000년이 흐르는 동안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수는 누구인가?' 이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경, 특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증언에는 한결같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부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근 19세기에 이르러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를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도덕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산 인간 예수를 강조했습니다. 지금도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확신 없이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허망한 것이 될 것입니다.

3. 십자가 대속의 죽음
표면상으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아 로마통치자의 손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실패한 혁명가로 몰고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군중의 지지에 부담을 느낀 대제사장과 주변의 세력들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예수의 주장은 로마 황제 가이사를 부정하고 반란을 꾀하는 것이라고 로마 당국에 고발했습니다. 예수를 붙잡아 심문한 빌라도는 반란의 혐의를 찾지 못했지만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속셈으로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의 요구에 따라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허락했습니다. 로마 당국의 승인을 얻어낸 대제사장 일행은 백성들을 배후 조종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이 사실을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사도행전2장 22,23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그리고 36에서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증거했습니다. 그는 4장 12절에서“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3장25절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이 예수를 화목제물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5장 8,9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어 이제 우리는 그 피로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전에는 속죄제물인 동물에게 인간이 죄를 떠넘기고 그 동물이 대신 죽어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와 죽음을 면했습니다. 동물의 속죄제사는 개인적으로는 범죄한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국민전체로는 매년마다 반복해야 했습니다. 동물제사로는 1년 동안 진노와 죽음을 면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9장 12절, 10장 12절과 14절을 보면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에 더 이상 속죄의 제사가 필요 없이 믿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한 사람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이 죄 용서받고 구원 얻을 수 있는 영적 원리를 바울은 아담의 대표성에서 찾았습니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 바울은 아담이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인류의 대표주자인 아담이 죄를 범하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담은“오실 자의 표상’이랍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오실 자란 메시야 예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예수의 표상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아담의 죄성이 예수의 표상이된다는 걸까요? 죄성은 결코 그리스도의 표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아담에게 있는 뭐가 그리스도의 표상이 됩니까? 그건 바로 인류에 대한 아담의 대표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첫 사람으로서 인류를 대표하는 자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역시 아담처럼 인류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처럼 이번엔 예수님 한 사람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된 것처럼 예수 안에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4. 혈통과 믿음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야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혈통과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는 것은 혈통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의 피를 이어받고 태어난 자녀와 후손들은 죄인으로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다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도 다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죄인들로 태어납니다. 이렇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반면에 예수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육신의 피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죽으신 것을 믿는 자마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됩니다. 믿는 자에게 성령이 오셔서 그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대속의 원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희생 동물이 인간의 죄를 담당하고 죽음으로 범죄한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어린양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범죄한 우리가 심판과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기 전에 뭘 믿어야하는 것인지 생각하길 바랍니다. 대속의 의미와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한 주 동안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 다시 묵상하며 깨닫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합시다. 다음주엔 복음설교 마지막으로 '믿음에 의한 구원'을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