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소명

이사야 6:1-13

오늘은 이사야 6장, 이사야의 환상을 통한 소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선지자의 사역은 먼저 소명을 받고 그 다음에 계시를 받아 왕이나 백성들에게 예언을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경우는 소명 받은 기록이 1장이 아니라 6장에 나옵니다. 아마도 이사야는 1-5장의 예언을 하기 전에 먼저 소명을 받았지만, 7장 이후의 역사적 정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예언의 메시지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뜻에서 소명 받은 내용을 6장에 기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명은 예언자, 오늘날엔 목회자에게 사역의 권위를 부여하는 근거입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말을 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때 예언자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주께서 나를 불러 너희에게 이 메세지를 전하라고 보내셨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왕이나 백성들이 잘못하고 있을 때 선지자들이 등장해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듣기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환상을 통해 선지자로 소명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고 스랍들이 모셔 서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스랍’은 문자적으로 ‘불타는 것들’이란 뜻인데 하나님을 호위하는 천상의 존재인 천사들, 또는 계4장 6절 이하에 요한의 환상에도 등장하는 ‘네 생물들’로 볼 수 있습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는 BC739년 전후입니다. 역대하 26장을 보면,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하나님을 구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강성해지자 웃시야 왕의 마음이 교만해져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에게만 허용된 분향하는 일을 하려다가 즉석에서 문둥병[한센병]에 걸려 그 날 이후 골방에 은거하다 죽었다고 합니다(대하 26:5, 16, 19, 21).

하나님은 아론의 후손들을 먼저 거룩하게 구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린 후 제사장의 직무를 맡겨 여호와 앞에 나가도 죽음을 면하고 제사의 직무를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웃시야가 제사장을 통하지 아니하고 직접 여호와의 전에 나가 분향하자 하나님이 문둥병으로 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 이렇게 경배와 찬양을 하고 직접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 덕분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처럼 지금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스랍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를 보면,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고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 날아다니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날개로 자기들의 얼굴과 발을 가린 것은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려는 섬기는 자의 겸손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교회에서 주를 섬기는 목사나 일꾼들도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 얼굴이나 이름을 드러내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높입시다. 스랍처럼 얼굴을 가리고 발을 가리고 오직 거룩하신 주님 영광만 드러내도록 섬깁시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봤을 때 “이제 나는 망했다”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왜냐면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부정한 중에 하나님을 보게 되어 하나님을 욕되게 했으니 죽음을 당할 줄 알았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보았을 때 제일먼저 죄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자연스런 반응일 겁니다. 죄를 짓고도 무감각한 게 제일 위험합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즐기는 세속적인 문화라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죄에 오염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죄의식 없이 그런 것을 즐깁니다. 도시문화니 밤 문화니 신세대 컬쳐니 그런 걸 많이 경험하고 아는 것이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그게 다 회개할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게 되면 종교심은 물론, 양심도 도덕적 의식도 깨어납니다.

이사야가 망했다고 탄식할 때 스랍 중 하나가 화저로 숯 불을 들고 날아와 이사야의 입에 대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해졌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스럽을 보내 이렇게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왜 숯불을 입술에 갖다 댔는지 5절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입술이 부정한 사람, 입술이 부정한 백성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사실은 입술보다 마음이 문제지만, 입술을 통해 말로 죄악이 표출되기 때문에 입술을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고 심판하시지만 죄인은 용서받고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아담과 이브는 죄로 죽어야 했지만, 그 직후에 여인의 후손으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는 구원계획을 선언하셨습니다. 가인을 죄로 추방하면서도 누가 해하지 못하게 보호표식을 주었습니다. 유다가 범죄하여 바벨론에 멸망하고 사로잡혀가지만 결국 70년 후엔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해주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어떤 죄를 범했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구원해주십니다.

이사야가 환상을 본 것은 소명의 과정이었습니다.  8절을 보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런 주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때 이사야는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선지자로 불러 쓰려고 죄를 자각하게 한 후 숯불로 입술을 소멸시켜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일꾼은 믿음으로 죄 용서의 확신을 가져야 하고 죄를 멀리하도록 자신을 잘 지켜야 합니다. 목사든 목자든 죄를 숨기고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드러날 때 사람들로부터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기 전에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선지자의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실제로 선지자 중에는 왕의 비위를 건드렸다고 투옥당하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다가 돌에 맞기도 했습니다. 침례요한도 마지막 선지자였는데 참수당하지 않았습니까? 잘못한 사람들일수록 바른 말 듣기 싫어합니다. 책망하고 심판을 선언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지금 여러분도 이사야가 유대 백성에게 한 메시지라고 남 이야기처럼 들으니까 참고 들을만하지 제가 여러분 뒷 조사 다해서 대 놓고 잘못을 지적하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면 속이 불편해질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남 이야기면 무조건 옳은 말을 지지하지만, 그게 내 이야기라면 옳은 말이라도 귀에 거슬릴 겁니다. 혹시 오늘 말씀 듣는 중에 맘이 불편해지는 분이 있으면 약이 되게 잘 참고 잘못에서 돌이키기 바랍니다.

9절, 10절을 보면, 하나님의 의도가 부정적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여 깨닫고 돌아와 고침을 받기 어렵게 만들겠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실망하셨고 이젠 그냥 용서해주기보다는 죄에 합당한 징계를 받게 하겠다는 마음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녀가 죄와 함께 멸망하게 놔두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그냥 눈감아 주지도 않습니다.

죄인이 사는 길은 빨리 잘못을 깨닫고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를 바라며 알면서도 봐주는데,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이 몰라서 가만 두고 보고 계시는 줄 알고 숨어서 은밀한 죄를 자꾸 짓습니다. 말로 할 때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그 다음엔 얻어 맞고 고난과 수치를 당하고 결국 뉘우치고 돌아오게 만듭니다. 불러서 직접 말 안하고 그냥 이렇게 설교 중에 이야기 할 때 죄를 깨닫고 돌이켜야 수치와 마음의 고통을 덜 당합니다. 몰라서 가만 두고 보는 게 아닙니다. 여러 가지 입장을 생각해서 모른 척하는 것이죠. 그럴 때 얼른 눈치를 채고 하나님께 엎드려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고 바르게 살기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누리며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불러 쓰려고 영의 눈을 열어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 전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특별한 영적 체험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복음과 교회를 위해 일하라고 부르시는 소명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영적 체험이 있는 분들은 그걸 자랑하려고 하지 말고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은혜받은 데로 힘써 주를 섬기는 일꾼으로 자원하기 바랍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무슨 일꾼이 필요하다고 할 때 신령한 체험을 하고 믿음의 비밀을 가진 교우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앞장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주를 섬기는 일꾼들은, 목사, 목자, 장로, 집사, 모두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공로를 칭찬받으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종으로서 오직 주의 영광만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한 주 동안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