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일어나는 교회

요한복음2:1-11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은 교회입니다. 교회 그 자체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기적입니다. 기적을 보여주지 못하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때 하나님 나라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에선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는 기적도 일어납니다. 오늘은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를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기적’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있습니까? 기적을 믿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20장 30,31절을 보면,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에 표적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기적은 아무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가 도대체 누군가 의문이 생기고, 기적을 목격한 사람 중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에서 열린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하객이 예상보다 많이 와 포도주가 일찍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집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져다 부은 후 그 물을 떠나 연회장에게 주라고 지시했습니다. 연회장은 하인이 건네주는 포도주를 맛보더니 최상급 포도주를 나중에 내어 놓는다고 감탄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복음서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로 차고도 넘칩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엔 자연법칙이나 자연질서를 일시적으로 깨뜨리거나 중지시킵니다. 이 순간엔 자연이 자연법칙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다른 힘의 지배를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은 창조주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기적은 하나님이 간섭하고 통치하시는 증거도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적은 이신론자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일 누가 물로 최상급 포도주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수년 내에 전세계 랭킹 1위 부자가 될 겁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개발해 돈 버는 것은 비교도 안되죠.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다고 하니 이런 능력이 있다면 우리 교회 점심문제는 한 순간 해결되겠죠. 이런 능력이 있다면 전세계 식량문제는 한순간 해결될 겁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직전에 제자들에게 굶주린 군중을 위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눅9:13)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에겐 이 많은 군중들에게 줄 수 있는 음식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정을 몰랐을까요? 알면서 제자들보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까? 그 당시 어디가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줄 음식을 사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파는 곳이 있어도 제자들에게 그 만한 돈이 있을리도 없잖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하신 말씀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게  “김목사 니가 늘푸른교회 교인들을 다 먹여 살리라” 말씀하신다면 제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주님 제가 가진 거라고는 천불도 안됩니다. 어디서 빌려올 곳도 없습니다. 첨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제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주님도 이미 아실 것 같습니다. 사실 주님도 무슨 빵을 예비해뒀다 준 게 아니잖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람들을 먹이신 기적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고 기도하는 것이죠. 하나님께는 일상적인 역사가 우리 눈엔 기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동시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베드로도 같은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도 어떤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 지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같은 히브리민족으로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자란 예수님과 베드로의 세계관은 거의 비슷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볼 때 예수님과 베드로는 상당히 다릅니다. 무엇이 다르게 만들었습니까?

구약성경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인으로서 베드로는 오늘 우리보다 초자연적 세계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천사, 사단, 귀신들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어떤 질병, 예를 들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을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요9:2). 질병의 원인을 영적인 데서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이 영적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자연의 위험을 물리치기 위해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구 현대인들은 베드로보다 더 자연주의적이며 세속적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질병이나 사고가 귀신 때문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연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같은 히브리인이면서 예수님이 베드로와 다른 관점, 세계관을 갖고 계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의 차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산다는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서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의 차이도 사실 알고 보면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실 수 있었던 이유를 모르면 예수님처럼 살 수 없습니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이유를 모르면 무조건 따라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예수님처럼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바로 알아야 예수님 뒤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성자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십니다. 여러분은 제 아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겐 아버지가 안계셨을 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저는 어려서 오랫동안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존재를 믿습니다” 이러면 더 이상합니다. 논리적으로도 아버지가 없이 어떻게 제가 태어났겠습니까? 제가 무슨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라도 됩니까?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지 몰라도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흔들림없는 확신이 예수님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자신을 다 버리는 삶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여러분도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흔들림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예수님은 몰라도 바울처럼 사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데 예수믿으라고 하니 시시한 것 같고 구원의 가치도 모르고 감격도 없지 하나님 나라를 알고 나면 진주장사처럼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사려고 들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계관의 두번째 특징은 세상을 사단과 영적 전쟁터로 본 것입니다. 영적 세계가 본질이고 눈에 보이는 세상은 현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소경이라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보지만 영적인 하나님나라는 보지 못하는게 문젭니다. 피조된 자연만물은 보면서 만드신 하나님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이 선물을 받고 좋아라 하면서 그 선물을 사게 만든 아버지의 사랑은 보지 못한다고나 할까요? (어떤 목사님이 이런 비유를 들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다이어반지를 사다줬습니다. 아내가 너무 좋았습니다. 매일 다이어반지를 보고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걸 사준 남편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습니다….. 이게 잘하는 겁니까?)

예수님은 사단과 귀신들의 존재와 활동을 믿었습니다(마25:31). 하나님 나라와 사단의 나라가 서로 대결하고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마12:22-29). 여러분도 믿습니까? 예수님이 40일 금식하신 직후에 마귀가 직접 나타나 예수님을 유혹했던 것을 여려분도 잘 알겁니다(마4:1-11). 회당에 숨어 있던 귀신은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막1:24) 소리쳤습니다.  거라사지역 무덤을 배회하던 귀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원컨데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소서” 소리쳤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한 말 중에 누가복음 4장 6-7절을 보면,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사단은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자기가 넘겨 받았노라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그것을 관리하고 다스릴 권세를 아담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자기가 넘겨 받았다는 것입니다. 추론해보면, 아담이 범죄하여 자격을 상실하게 되면서 사단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이 된 듯합니다. 사단은 그 후부터 지금까지 죄를 범한 인간들 배후에서 왕노릇하며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혈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의 권세가 깨지면서 사단의 나라가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사단의 나라가 완전히 소멸된 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인들이 구원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놨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가만 있으면 사람들은 죄가운데 살다가 죽어 사단의 지배로 떨어질 겁니다. 사실 지금도 예수 믿고 구원얻는 영혼보다 죄 가운데 살다가 사단에게 떨어지는 영혼이 더 많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놓았지만, 그걸 몰라 멸망하는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전도하는 것보다 우리끼리 재밌게 지내자고 할 겁니까?

주님이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시는 목적이 뭡니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이 구절을 보면 지금도 사람들이 사단에게 사로잡혀 있고 눌려있어 인생이 힘들고 잘 되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제일 힘써야 할 일이 사단에게 눌려있는 사람을 벗어나 자유롭게 도와주는 것입니다.(눌려있다-등짐지고 길을 가는 예화).

우리가 성령받고 능력받아야 하는 이유는 귀신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러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눅9:1-2). 이런 능력과 권세가 왜 필요했겠습니까? 사단의 세력인 귀신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두 성령으로부터 능력을 받고 일했습니다(눅3:21-22;행1:8;10:3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도는 영적 전투입니다. 기도하는 걸 보면 영적 수준이 보입니다. 옛날엔 소나무 뿌리를 열개는 뽑아야 귀신과 싸울 영력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시원찮으면 귀신이 안심하고 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을 구하려면 마귀보다 더 강한 능력을 가져야죠. 먼저 강한 자를 제압해야 그 소유물을 빼앗을 수 있지 않습니까? 마귀가 지배하는 영혼을 구출하려면 마귀의 세력 귀신들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귀신과 싸움은 육신의 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죠. 영적 세력인 귀신을 쫓아내고 복음을 깨닫고 예수 믿게 하는 전도활동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는 자기 영혼만 구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까지 구원하진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면 배후에서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을 깨뜨리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귀신을 후려 패서 쫓아내 그 사람이 제 정신을 차리고 복음도 깨닫고 예수님도 믿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데, 그 능력은 성령받아야 생깁니다. 그리고 성령받는 길은 주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침례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부어 달라고 기도하세요.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으면 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받기 원하면 회개하세요. 베드로사도께서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침례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스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고 말한 것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안주는 게 아니고 주고 싶어도 못주는 겁니다. 주님은 약속하기를 구하는 자마다 다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고 하는 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있겠느냐? 사람들도 자기 자녀가 구하면 좋은 걸 준다는 겁니다. 하물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구하는데 왜 안주시겠습니까? 반드시 주십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성령부어달라고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성령받고 능력을 얻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면서 복음을 전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늘푸른교회와 씨애틀에 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