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통치

다니엘1장 8,9절

오늘부터 7월 한달 동안은 다니엘서를 중심으로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6월 25일은 한국 전쟁 58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6.25가 발생한 때가 1950년이었으니 우리 중엔 6.25를 경험한 분들은 장로님 밖엔 없습니다. 저도 전후 세대이기에 어렸을 때 굶주림 속에서 자라긴 했지만 전쟁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 대부분은 전쟁의 참상을 이겨내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건이 좋아진 후 자라난 세대이기에 6.25 전쟁의 비극, 공산주의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별로 모를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6.25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공산주의를 반대하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사실 공산주의는 종주국인 구 소련과 동독 등 동유럽에서 실패로 끝난 이데올로기입니다. 지금 중국과 북한에 공산당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거기서도 공산주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입니다. 저는 오늘 다니엘서를 통해 세상 나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7월엔 또한 미국 독립기념일이 있는 달이기에 미국 시민들에겐 특별한 달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1620년 청교도들이 이주해 오고, 1775년에 독립전쟁이 시작되어, 1776년 7월 4일 식민지 13개 주 대표들이 필라델피아 제3회 대륙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독립을 선언한 후, 1788년 파리조약으로 전쟁이 종결되어 미국 13개 식민지 독립이 승인되었습니다. 다음해 1789년 조지 와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미국은 1939년에 발발한 2차 세계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는데 기여하여 소련과 함께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공산주의 경제의 실패로 1991년 붕괴된 반면 미국은 자본주의 중심축으로 부상하여 아직까지 세계 경찰국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도 점점 위기의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개척 초기부터 건국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초대 대통령 와싱턴은 언제나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재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필라델피아 교외 밸리포지 (Valley Forge) 에 있는 기념교회당에 새겨진 그의 기도문 이렇습니다.

"하나님, / 이 나라를 지켜 주실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이 나라 지도자들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 정직한 생활의 본이 되고, / 겸손히 백성을 섬기게 하소서."

지금도 미국 대통령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정무를 보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들이 세상 일을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일은 더 이상 상관 안 하신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세상의 권세와 통치 배후에 하나님께서 활동하신다는 걸 믿지 못합니다. 세속화되면서 교인들도 이런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국가의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할렐루야!’는 물론 ‘호산나!’도 외칠 것입니다. 기도가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개역개정]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다니엘서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라 다니엘이라고 붙여졌습니다. 다니엘이란 말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 혹은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기 전 BC 7세기 후반에 출생했습니다. 당시 신흥 세력인 바벨론이 BC612년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켰고, BC605년에 갈그미스 전투에서 앗수르와 애굽 연합군을 대파했습니다. 그 때 애굽의 통치아래 있던 유다도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다니엘 등이 바벨론에 사로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유다왕은 여호야김이었습니다.

유다의 18대 왕 여호야김은 BC608년부터 597년까지 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국제 정치판세를 보면 유다를 중심으로 남쪽엔 애굽이 있고, 북동쪽엔 앗수르 세력이 약화되면서 신흥 바벨론 제국이 등장하고 있던 때입니다. 바벨론이 등장하기 전 유다는 애굽의 영향권아래 있었는데 바벨론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앗수르와 애굽 연합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침공해오자 여호야김은 3년 동안 느부갓네살에게 조공을 바치며 섬겼습니다. 그러던 중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애굽 국경지역 전투에서 애굽 왕 바로느고에게 패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호야김은 이 때를 이용해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결과적으로 유다는 몰락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가 몰락한 것은 분명 바벨론보다 국력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느브갓네살의 침공으로 유다가 멸망에 이르게 된 진짜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죄가운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4장 1~4절을 보면 선지자의 예언대로(참고 렘25:9) 유다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 하나님께서 갈대아 군사들을 불러다 유다를 쳐 멸하신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개역개정]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물론 이 기록은 저자의 신앙적 관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외교술의 실패가 원인이고, 군사적으로 보면 전투력이 모자랐기 때문이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느부갓네살은 성전의 기물도 빼앗기고 고관 대신이나 방백이나 귀족들을 사로잡아 갔는데 여기에 다니엘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유다왕과 백성들은 두 차례 더 잡혀가서(BC597, BC586년) 바사왕 고레스 귀환령이 내릴 때까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렘25:11,12) 거의 70년간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다니엘은 느부갓네살/Nabu-kudurri-usur (605-562) 때부터 에윌므로닥/ Amel-Marduk (562-560), 네르글리살/ Nergal-sharezer(560-556BC), 라르시마르둑/ Labashi-Marduk(556BC), 그리고 나보니두스 /Nabonidus(556-539BC) 와 그 아들 벨사살/ Belshazzar(553-539BC) 왕으로 이어지는 여러 왕들의 통치 아래 살았습니다. 세계사를 보면 한 때 아무리 강했어도 때가 되면 쇠약해지고 다른 나라가 치고 나옵니다. 바벨론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니엘 말년인 BC539년엔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왕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패권을 잡은 고레스는 바벨론에 잡혀 왔던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폈습니다. 왕조가 바뀌고 정책이 달라짐에 따라 유대인들은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인솔아래 BC538년 첫번째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두 차례 더 귀환이 있었는데 이 내용이 학개와 스가랴에 나와 있습니다(2차-BC457;스7:8, 3차-BC445;느1:1).

다니엘서 전체에 흐르는 주제는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라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방 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왕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하나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이런 세상 한 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고 지키시며 때가 되었을 때 세상 나라 판도를 바꾸어 뜻하신 계획을 성취해가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수 십 년 혹은 수 백 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길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엔 감춰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모르고 세속 역사에 대한 지식만 가진 사람들은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계기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이 작동했기 때문이지만 우선 바벨론의 식민지 정책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벨론 왕은 정복 전쟁으로 얻은 나라들을 통치하는데 그 나라 출신 젊은이들을 바벨론에서 동화교육을 시켜 친바벨론주의자들을 내세워 통치하는 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3~5절의 내용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은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포로로 잡아온 젊은이 중에 인재를 발굴해 의식주를 풍족하게 제공해주면서 바벨론을 위해 일하도록 포섭했습니다. 인간성, 용모, 학식, 머리가 뛰어난 사람을 선발해서 왕자와 같은 대우를 해주며 3년동안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도록 지시했습니다. 선발된 인재들은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출세가 보장되는 셈입니다. 다니엘도 여기에 선발된 인재였습니다. 다니엘 개인이나 가문으로도 영광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바벨론은 알아주는 우상숭배의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왕에게 올리는 음식과 포도주는 우상에게 먼저 올려졌던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던 다니엘은 우상의 제물로 자기를 더럽게 하지 않을 결심을 했습니다. 왕이 먹는 음식을 부정하다고 거부하는 게 포로 주제에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도 짐작할 것입니다. 그는 환관장에게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사양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환관장 역시 바벨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니엘의 요구를 들어주기 쉽지 않은 입장입니다.

환관장은 다니엘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가 먹는 게 부실하여 건강을 손상하거나 초췌해지면 왕에게 관리 소홀의 책임추궁을 당하게 될 것을 걱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니엘은 열흘동안 채식한 후 그 결과를 시험해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환관장은 다니엘의 제안이 그럴 듯해 승락했습니다. 환관장이 조건부로 다니엘의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해 9절에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개인의 야욕을 성취하기 위해 조국도 의리도 배신하면서 기회주의자처럼 행세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니면 자기에게 주어진 출세의 절호의 기회조차 위태롭게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왕의 진미를 거부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걸 지켜보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결단을 돕기 위해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열흘 동안의 시험적인 관찰 결과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는 청년들보다 더 혈색이 좋고 건강했습니다. 건강한 용모가 어찌 음식에만 달려있겠습니까? 나물 반찬에 거친 밥을 먹더라도 마음이 평안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화색이 도는 법입니다. 하나님 잘 믿고 마음 평안을 유지하는 게 건강이나 미용에도 좋다는 걸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친구들을 건강하게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이리하여 다니엘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나 포도주를 피하고 채식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특별히 지혜와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3년 동안 유학하는 동안 학문과 재주를 닦았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는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출신 점성술가나 마술사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과 총명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혜와 모사와 이상에서 하나님보다 뛰어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학자든, 과학자든, 사업가든, 신학자든 하나님이 지혜와 총명을 주셔야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물질 세계에 과학이 발견하는 원리들이 작동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에게 지적인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을 주관하고 복과 화를 다스리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한국 땅에서나 이 미국 땅에서나 돕는 자를 만나 은혜를 받고 긍휼을 얻게 해주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개인의 출세와 성공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선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잘되기 위해서도 하나님을 먼저 경외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다니엘서 서론으로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는 것으로 결론을 삼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나라와 권세자들을 다스리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 역사는 세상의 권세자들이나 마귀의 손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세상 사는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성공하고 승리하기 원하면 뭘 열심히 하려고 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대열에 합류하기 바랍니다. 숲 속의 나무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목수에게 픽업되어 재목으로 쓰여야 비로소 가치가 주어집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 손에 들려져야 값이 나가게 됩니다. 다니엘서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