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마태1:18-25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조금 전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1장 18절부터 25절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탄생이 세상에 주는 의미와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성탄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연대를 표현할 때 BC와 AD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합니다. BC는 Before Christ, AD는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로 그 뜻은 In the year of the(our) Lord 입니다. AD 연대표기방식은 525년 수도가였던 디오니시우스 엨시구우스가 고안했다고 합니다(The Anno Domini dating system was devised in 525 by Dionysius Exiguus to enumerate the years in his Easter table.) 요즘에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Common Era의 약자인 CE, 또는 Before를 붙여 BCE를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탄생은 BC와 AD사이가 아니라 BC4년 전후라고 합니다. 수백년 후에 다시 계산해본 결과 Dionysius Exiguus가 계산을 잘못해 4,5년의 오차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럼 뭘 근거로 맞다 틀리다 판단하는가 하면 예수님 탄생시 재위한 로마황제나 그 때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참고해서 연대를 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헤롯 대왕이 유대 분봉왕으로 있을 때 태어나셨고(마태2장), 그 때 아구스도가 로마황제였고 호적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옵니다(눅2장). 역사가들은 헤롯왕이 BC4년 유월절 직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아구스도 황제가 직접 기록했다는 ‘업적록’에 따르면 인구조사는 BC28, BC8, AD14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있었던 호적령은 BC8년에 발효된 것으로 봐야 할 겁니다. 그 당시 인구조사는 수년이 걸렸으니 호적령은 BC8에 발표되었더라도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하러 고향 베들레헴을 방문했다가 예수님을 출산한 때는 한 참 후 BC4년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도서 3장을 보면 하늘 아래 모든 일이 다 기한이 정해져 있고 모든 일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메시야가 태어난 때는 가장 위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거의 무명의 소수 사람에게만 예고되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사람으로 메시야를 갈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요셉과 마리아, 스가랴와 엘리사벳, 목동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셨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의 탄생을 갈망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출생 당시나 지금이나 세상은 돈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에서 부와 권세를 잡고 부족할 게 없는 사람들은 지금 세상이 좋기 때문에 메시야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 속에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바랄 겁니다. 반대로 좋은 환경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다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더 클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열망을 가진 성도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사단이 왕노릇 하는 세상에서 부와 권세를 잡으면 변절되기 쉽습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을 찾아보세요. 거의 없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도 종교생활에 가깝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상에서 무명으로 평범하게 살면서 믿음 잘 지키는 것이 세상에서 너무 잘나가 주일지키기 어려운 것보다 낫습니다.  요셉이나 마리아, 목동들 세상이 주목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야 탄생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겁니다. 세상에서 이름 얻는 것보다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 주목받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수태하게 될 것을 예고하면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로 부르도록 지시하고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자기 백성은 바울의 말로 표현하면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죄라는 말은 현대인이 거부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아서 하나님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제가 미국 기독교 계통의 사립 초등학교에서 진행되는 신앙교육에 대해 어떤 학부모가 항의하는 자료 화면을 본적 있습니다. 어떤 아이 어머니가 자기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자기 자녀가 죄책감을 가지고 어두운 마음으로 사는 걸 원치 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됩니까?

기독교 신앙에는 죄가 핵심적 요소가운데 하나입니다. 죄가 뭔지 깨닫고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고는 구원도 헛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선 죄에 대해 강조하고 죄인임을 깨닫도록 가르칩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고 죄에서 벗어나 생명 얻는 길을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혹시 죄책감이 들게 한다고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을 만나면 오해를 풀어주고 생명의 길로 안내하기 바랍니다.

죄라는 말을 멀리하고 거부한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고 용서받아 자유를 얻어야죠. 천사가 들에서 양을 돌보던 목자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린 메시지 중에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말이 나옵니다. good news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세상 뉴스에는 사실 good news는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나쁜 소식들입니다. 사기치고 횡령하고 부정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최근 북한에선 권력다툼 속에 정적을 잔인하게 처형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고, 남한에선 여야 정치권이 매일 극한 대립을 벌이고, 코레일 노조가 파업을 벌여 교통대란이 일어나기 직전이고, 일본과 미국과 중국이 세력다툼을 벌이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불안한 세상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인간이 마음의 평안이나 구원을 얻기 위해 신을 찾기 위해 수고와 고행을 시키고 결국 죽을 때까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합니다. 불교를 예로 들면,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을 마음의 욕망에서 찾습니다.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해탈의 길이죠. 그러기 위해 집을 떠나고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정, 가족이 걱정꺼리가 되기 때문이죠. 혼자 살면 아무래도 근심꺼리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육식을 금하고 108 배를 하고 그럽니다. 몸의 기력을 다 빼서 지쳐서 다른 생각 못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기독교는 어떤 형태로든 율법 즉 행위를 통제하는 것으로는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구원얻으려고 새벽기도다니고 철야하고 금식하고 봉사활동하고 십일조내고 그런 것이라면 헛수고입니다. 그런다고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불교는 예수 없이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고 기독교는 예수를 메시야 구세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전혀 다릅니다.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 대해 적대적 감정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그 어떤 종교적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히 반대합니다.

인간이 구원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외의 구원의 길로 소개되는 것은 모두 사탄이 배후에서 역사하여 인간을 속여 만든 거짓 종교입니다. 다원론적 사회에서 타종교인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타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목사나 신부들을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건 바알 우상을 용인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갔는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사람들에게 “나를 본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느냐”고 일깨우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서로 다른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삼위일체이신 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하나님을 만난 것이고 성령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과 동행하길 원합니까? 그 방법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순간부터 세상 떠날 때까지 항상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분들은 이 믿음을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 앞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만나게 해달라고 하면 소경입니다. 소경이 아니라면 코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보여달라고 합니까?

끝으로 천사는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며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있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임했다고 선포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다투며 죽어가는데 무슨 평화입니까?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평화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겐 더 이상 정죄도 형벌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모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