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왕의 불순종

사무엘15:10-23

지난주까지 두 번에 걸쳐 믿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생기기 때문에 믿음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성경, 특히 복음서를 열심히 읽는 게 도움이 됩니다. 오늘부터 두세 번 순종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시작은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믿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다음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 주님을 따르는 일꾼들에게 순종보다 더 앞세울 것이 있습니까? 믿음을 빼놓고는 순종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시며 순종하는 자를 쓰시며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여러분도 사울과 다윗을 통해 순종의 중요성을 깨닫기 바랍니다.

10절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후회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잘못된 선택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것이 아니고 매우 실망스럽다는 뜻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왕께 실망한 것이 뭡니까? 왕으로서 능력이나 인품이나 리더쉽이 부족했기 때문입니까? 사울이 하나님 지시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에게 아말렉 족속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말고 멸종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멸하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땅으로 향할 때 아말렉족속들이 대적했기 때문이었습니다(출17:8-16) 출애굽기 17장에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전투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혹시 모세가 손을 들면 싸움에서 이기고 손을 내리면 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까? 그게 바로 아말렉과 싸울 때 있었던 일입니다. 이 전투는 하나님께서 도와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크게 승리했는데, 이 때 여호와께서 말씀하기를 앞으로 아말렉과는 대를 이어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때에 아말렉이 대적한 것을 기억하시고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가축은 물론 젖먹는 아이까지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악의 씨를 남겨두지 않으시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지 않고 아각왕도 사로잡고 죽이지 않았고 양과 소의 좋은 것과 기름진 것도 죽이지 않고 전리품으로 취했습니다. 그걸 알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보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책망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번제와 다른 제사들보다 지시에 순종하는 것을 주께서 더 좋아하시지 않겠느냐고 말한 후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이 불순종의 사건으로 인해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아들에게 왕권이 계승되지 못하고 대신 다윗이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순종에 대해 우리가 무엇보다 알아야 할 것은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의지로 시작합니다. 마음을 먹어도 잘 안 되는 게 순종인데, 순종할 의지가 없다면 시작도 안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는 경우는 알았다고 해놓고 나중에 자기 욕심대로 하잖습니까? 순종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순종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순종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과 그걸 이용해 순종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단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며 살고 싶은데 실제로는 잘 안 되는 이유는 욕망 때문입니다. 욕망이란 예를 들면, 재물에 대한 욕심, 성공해서 인정받으려는 열망, 쾌락을 누리며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 같은 것입니다. 사울왕이 순종에 실패한 이유도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이 생각할 때 양이나 소 중에 살지고 좋은 것은 굳이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재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힘들고 갈등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도 잘 믿고 세상에서 인생도 성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욕심을 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도 힘든 겁니다. 세상 성공이나 재물은 포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면 교회생활이 선택의 갈등도 줄어들고 교회생활도 쉬워질 겁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은 세상살이도 힘들고 신앙생활도 힘들어집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이런 욕심을 이용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며 살도록 유혹합니다.

육신의 욕심을 다스리고 주님을 따라가려면 나의 의지 만으로는 부족하고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다른 사람보다 의지가 강해도 내 힘만으로는 세상과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한 평생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디서 무얼 하며 살든지 하나님 없이 자기 영광을 추구하며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볼 때 유혹을 받습니다. 재물이든 성공이든 욕심 때문입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자가에서 정과 욕심도 함께 못박혀 죽고 새 사람이 되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신앙생활이 재미없거나 힘든 이유는 욕심이 살아있는 상태로 주님을 따라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욕심이 더 크기 때문에 잘 안 되는 겁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아깝다는 마음이 더 커서 나눠주기 어렵습니다. 교회 일에 더 힘쓰고 싶지만 아직은 공부든 일이든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서 그것도 잘 안됩니다.

예수님과 바울이 어떻게 순종했는지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에겐 자신을 위한 인생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일이 곧 자기 인생이었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후엔 지금의 터기지역과 그리스와 로마까지 다니며 복음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로 여생을 마쳤습니다. 자신을 위해 해야할 일이 많은 사람은 주님께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살아있는 사람도 생각이 많아서 주께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러면서 순종을 대신합니다.

요즘 도시교회에선 교인들이 들어서 부담스럽고 기분 나쁜 십자가나 순종 같은 이야기는 빼고 축복, 위로, 치유 같이 듣기 좋은 설교를 주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뭔가 요구하는 분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계신다는 달콤한 사탕 같은 메세지가 대세입니다. 설교하는 분들이 자기 소임을 다하지 못한 탓이지만, 그러다보니 교인들도 불쾌한 메시지에 대해서는 심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솔직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소위 성공한 교회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과연 십자가의 복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축복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 한정됩니다. 예수 믿으면 죄 용서 받고 구원 얻어 영생얻게 된다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예수 믿으면 좋은 성적을 얻고 원하는 일자리를 얻고 최고의 배우자를 만나고 그런 세속적인 성공은 약속한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성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는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걸 위해 살면 세상과 마귀에게 충성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믿기 어렵게 되고 잘못하면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 높아지려고 하지 마라,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라. 등.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믿음은 순종으로 나가야 하는데, 욕심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걸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치고 처음부터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겠다고 작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순종하고 싶죠. 그런데 순종하지 못하는 건 뭡니까? 하고 싶은 욕망, 갖고 싶은 욕심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더 있다가 이것부터 하고 나중에는 꼭 순종하겠다는 그런 식이죠. 그런데 욕망과 욕심이란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커지지 줄어들지 않습니다. 잘라내지 않으면 계속 따라다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사울이 나뻤던 것은 단지 불순종만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을 지적 받을 때 고치는 태도 또한 문제였습니다. 사울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습니다. 그는 뻔한 것을 가지고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마치 자기 논리에 바보처럼 설득이라도 당할 것처럼 말합니다. 짐승 중에서 좋은 것을 남긴 이유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게 진심이라도 빼앗은 짐승으로 제물을 드릴 게 아니라 자기 우리에서 좋은 짐승을 골라 제물로 바쳐야 마땅할 겁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순종보다 제사를 더 좋아하시겠느냐 지적했습니다.

회개는 단지 잘못한 것을 슬퍼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는 성령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회개는 성령의 빛과 감동의 결과물입니다. 회개는 믿음을 낳고 믿음은 순종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연적 과정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가난한 시절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물질로 돕고,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했음에도 죽기를 각오하고 전도해서 수 많은 결신자들이 나왔습니다. 이 모두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에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나가 제자를 만들고 복음을 전하며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이 두 가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인이고 교회입니다. 순종하는데, 싫고 좋고, 잘하고 못하고 그런 게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베풀고 전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