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받은 날

창2:2-3 /  복받은 날 

여러분 한 주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좌우 앞뒤로 서로 인사하고 숨을 돌린 다음 하나님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그 동안 여섯번에 걸쳐 창세기 1장의 6일 동안  천지장조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창세기2장 2,3절에 언급된 일곱째 날 안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는 일을 끝내고 그 다음 이어지는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안식하신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구별하여 다른 6일과 다른 특별한 날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사람보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실제로 아담 이후 모세 이전까지 사람들이 일곱째 날을 어떻게 지켰는지 성경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안식일 규정과 관련된 최초의 성경구절은 출애굽기20장 8절 이하와 31장 12절 이하입니다. 출애굽기20장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을 기록해 놓은 것인데, 8절 이하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8절), “아무 일도 하지 말라”(10절) 등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1장 12절 이하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지키는 것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표징(sign)’(13절)과 ‘영원한 언약’(16절)으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안식일 지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된 표시로 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젠 이해가 갈 겁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식이 되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이제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날의 구분 없이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느 날 하루는 집밖으로 나가도 안되고(출16:29), 어떤 일도 해선 안되고,  불도 피우지 못하고(출35:3),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도 없고(신5:14) 이런 금지령을 어기면 죽음에 처해지는(출31:15) 상황을 맞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좋기만 했겠습니까? 

애굽에서 탈출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의 양과 소를 데리고 나왔기 때문에 가축을 돌봐야 했을 것입니다(출12:32). 가축이 뭘 알아서 안식일이라고 아무것도 안 먹고 아프지도 않고 새끼도 안 낳고 그러면서 안식일을 지키겠습니까? 아직 광야에 머물 때는 농사를 짓거나 하는 다른 일은 할 게 없었더라도 가축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물러 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몸에 익을 때까지 훈련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가지고 안식일 훈련을 시켰습니다. 광야에 머무는 동안 먹을 게 없어 죽게 생겼다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매일 만나를 우박처럼 내려 그걸 거두어 먹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새벽에 거둬다 하루 동안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나는 해가 뜨면 벌레 먹어 못 먹고 하루가 지나도 벌레가 생겨 못먹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일 새벽에 나가 만나를 거둬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6일에는 7일 안식일 분까지 이틀 분을 거두어 먹게 했습니다. 이 때는 만나가 이틀이 돼도 벌레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욕심을 내고 평일에 더 거두기도 했는데 결국 벌레 먹어 못먹었습니다. 또 7일 안식일에도 만나를 거두러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날엔 만나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직후 그쳤습니다. 광야는 직접 농사를 짓거나 해서 먹고 살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공급해주신 것이고 가나안에 들어간 후엔 농사도 짓고 과일 열매도 거두고 양떼도 치고 자급해서 먹고 살수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나를 내려주지 않았습니다. 공짜로 얻어 먹다가 갑자가 만나가 그쳤을 때 불평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냉정하게 만나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그 대신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만 의존할 때보다 더 풍성한 식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태어난 직후부터 잡을 얻고 돈을 벌어 살기까지 부모나 국가가 내려주는 만나로 삽니다. 그러다가 취업하면 공짜로 먹던 만나는 중단되고 자립해야죠. 그게 인생입니다. 만나 대신 토지 소산에 복을 내려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나가 일해서 복을 받게 해주십니다. 일을 해야 하나님의 약속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일하지 아니하면 결국 누군가 공급하는 만나로 살아야 하는데, 사실 만나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이 복주시는 토지의 소산으로 사는 게 더 윤택합니다. 

안식일 이야기 하다가 만나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안식일에 일하다 들켜서 처형을 받은 사례도 성경에 나옵니다. 민수기15장 32절 이하를 보면,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산에 올라가 나무하다가 들켰습니다. 들켰다는 말은 남의 눈을 피해 모르게 하다가 적발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무하러 갔다는 것이죠. 얼마나 처지가 곤궁했으면, 안식일에 땔감이 없어서 , 그랬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사람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이 사람을 붙잡아가지고 모세와 아론 앞에 데려왔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법관의 역할도 할 때이니까, 벌주라는 뜻으로 데려왔을 겁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만 있지 처벌 규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물어봤는데, 하나님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이되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치라고 모세에게 명령 하셨습니다. 

예상 밖으로 엄중한 처벌에 모세도 당황했을 것입니다. 살인자도 아니고, 간통한 자도 아니고 도적질한 자도 아니고 , 산에 가서 나무좀 하려던 것인데 그게 돌 맞아 죽을  만큼 나쁜 죄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걸 일깨워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돌을 던져  처벌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안식일을 범했다고 붙잡아 온사람들도 이렇게 까지 될 줄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돌로 쳐 죽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안식일을 범하면 내가 저 사람처럼 되겠구나 두려운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범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브는 선악과를 따 먹는다고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저주 받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것은 물론 남편의 사랑을 잃고 작은 아들은 형에게 살해되고 큰 아들인 살인자가 되어 추방당했습니다. 과일 하나 따 먹은 대가 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행위가 어떤 것이든 문제는 하나님이 정한 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한 번 하신 말씀을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시지 않습니다. 한 번 선포한 법은 영원합니다. 율법의 일점 일획도 폐지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 지키신 것을 믿음으로 내가 지킨 것처럼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는 해도 율법 그 자체가 폐지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규약의 율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시대라고 율법 자체가 폐지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그랬다면 예수 믿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도 있을 수 없고, 그러면 죄 용서받기 위해 예수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 안믿고도 천국 갈 수 있겠죠. 하지만 사실은 예수 안 믿으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로 죽어야 합니다. 지옥가야 합니다. 율법이 살아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입니다.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안식일에 관한 오늘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고 일요일에 교회 나와 예배하는 주일을 지키고 있으니까 , 주일이 안식일을 대신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안식일 지키듯 주일을 지키려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성수라는 말도 사용하고 , 주일에 가게 가서 물건 사는 것은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고, 주일 예배를 빠지고 친척 결혼식에 참여한다고 하면 비난하고 그러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안식일과 주일을 혼동해서 생긴 오해 때문입니다.  주일과 안식일 문제는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사도총회의 결정사항과 절기와 날에 대한 바울의 말씀에서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안디옥교회 등지에서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온 이방인들에게 예수 믿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할례도 받고 안식일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유대인들이 계속 반발하자 예루살렘교회 사도들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야고보 사도가 주재하는 교회총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내린 결론은 우리들도(유대인) 감당하지 못한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지우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10,11절). 그러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고,  피와 목메어 죽인 것을 금하고, 음행을 피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율법적 금지규정이 아니고 권고사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방인들에게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그런 강제 규정은 부과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면 유대인들도 안식일의 수 많은 엄격한 규정대로 다 지키지 못해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짓곤했는데, 그걸 이방인에게 지우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본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바울은 골로새서2장 16,7절에서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것이나, 명절이나 초하루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의 말에 얽매이지 말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보여 주려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예배하는 우리는 안식일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율법을 성취하시고 마침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차원에서 볼 때 주 안에서 모든 율법을 성취했습니다. 안식일은 율법 가운데 하나임으로 우리는 주 안에서 안식일 계명도 온전하게 성취한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가 개별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기쁘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 소망을 가지고 주일 예배드리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안식일과 주일은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주일이 안식일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기에 주일에다 안식일 규정을 적용해서 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일예배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 모여 감사 찬양을 드리며 교제하던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도행전20장 7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을 때 바울이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주일에 모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전16장 2절을 보면, “바울은 매 주일 첫날에 수입 중 일부를 저축해 내가 갈 때에 연보하지 않아도 되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1장 10절에 처음으로 “주의 날”이 등장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안식일은 하나님과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사인이요 언약이었습니다. 예수 믿음으로 언약의 백성이 되는 우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디옥 이방 그리스도인들처럼  안식일이든 할례든 그것을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종파는 지금도 안식일이 영원한 언약의 징표라고 생각해서 토요일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 그런다고 우리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요 마침이 되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예수님을 믿고 부활하신 주의 날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복음의 정신에 더 합당하고 복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