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사도행전1:4-9

사람의 몸은 성령의 집이 될 수도 있고 무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거듭나 성령이 들어와 거하는 사람의 몸을 성령의 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고전3:16). 반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마23:27)에 비유했습니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려고 꾸미지만 속은 죽은 사람 시체로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있다는 걸 지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는 지 이걸 좀 심각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년 초에 Jim Cymbala(Brooklyn Tabernacle)목사님 Fresh Power 책을 읽었습니다. 설교가 교인들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올 한해 동안 무엇보다 성령의 능력이 부어지도록 기도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베드로 사도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설교 내용을 보면 그 자체로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의 주제나 형식에서 서론, 본론, 결론이 명확한 것도 아니고 멋진 문장으로 잘 작성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 믿기로 결단했습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제가 해를 더해갈수록 성령이 아니고는 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더욱 깨닫게 됩니다. 뭔가 나아지는 듯 보여서 기대가 되면 얼마 못 가서 주저 앉고 무너지는 모습들을 봅니다. 목회도 성령의 능력으로 아니하고는 열매가 없고 신앙생활도 성령의 능력으로 아니하고는 사단의 유혹과 육신의 욕망과 개으름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변하려면 복음이 우리 심령을 파고들어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 깨뜨려져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화된 죄악들과 세속화된 생활방식은 숨기고 변명하는 대신에 하나님 보시기에 멸망당할 죄악임을 인정하고 돌아서기 위해 몸부림쳐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죄악을 숨기려는 사람들을 눈치보며 감싸주기만 해서는 새롭게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물질적 탐욕과 방탕한 생활과 우상숭배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거룩한 소명을 떠나 방황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일꾼으로 쓰임받기에 충분한 재능과 능력이 있는 교인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주저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지배하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연구가인 조지 바나에 따르면, 정상적인 교회 참석자들이 일반 대중과 여러 면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1) 지난 주에 복권을 산 사람: 비기독교인 27%, 기독교인 23%
  2) 지난 3개월 간 성인영화 본 사람: 비기독인87%, 기독인 76%
  3) 이혼율: 비기독교인 23%, 기독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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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능력 있는 남은 자로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할 사람들과 교회가 세속적 가치관에 오염되어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구별되지 않아서 생활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원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불신자들이 안디옥교인들을 보고 붙여준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 곧 ‘예수쟁이’란 말입니다. 교인들이 교회 밖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되게 살기 때문에 예수쟁이라는 말을 듣지도 못합니다.

어쩌다가 교회가 이렇게 됐는지 반성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무얼 어떻게 살았기에 소금의 맛을 다 잃어버렸는가 하는 겁니다. 어디서 뭘 하다가 영적 신경체계가 마비되어 멸망의 길로 가면서도 감각이 없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 각자는 물론 교회 차원에서도 주님의 몸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는 죄악된 요소들을 찾아내 버려야 합니다. 암덩어리가 커져 다른 부위로 전이되기 전에 제거해야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걸 괜찮다고 위로하며 은폐하면 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겁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순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에게 성경을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그들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일에 힘써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항상 기대에 못 미쳐 실망이 컸습니다. 그 때마다 내가 좀더 철저하게 하지 못해서 그런 줄 알고 나 자신부터 다그치며 다시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좀 나아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번엔 믿었던 사람들까지 주저 앉는 걸 봐왔습니다. 뭐가 문젠가? 요즘에도 그런 현상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머리로 안다고 그대로 살 수 있는 능력까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고는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당분간 제가 집중할 방향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자’(행1:4)는 것입니다.

간혹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면서 이상한 모습들을 보여줘서 성령까지 경계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어 돈을 거두는 일에 더 관심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기도 하고 성령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이상한 행동들도 봐왔습니다. 성령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편하게 하는 현상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것들을 피하고도 얼마든지 인격적인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죄를 회개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아픈 심령을 위로해주고 고쳐주며 장래일을 깨닫게 해는 많은 성령의 역사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성령의 역사와 능력을 힘입어야 교회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적어도 3년 동안 예수님으로부터 천국 복음에 대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은 다 배웠습니다. 제자들은 신학교 3년의 책상물림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실습하며 복음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왜 그들에게 아직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뭘 더 기다리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원수 사단의 세력을 대적하기엔 복음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기 전에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주님이 주신 과업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장 나가 내 증인이 되라고 말하지 않고 “성령이 임한 후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라”(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 말씀이 당시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도 먼저 성령받지 않으면 사단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잘 알아도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영적 전투에서 사단을 이기지 못합니다. 성경을 잘 아는 교인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넘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때는 저 자신도 성경을 잘 알면 그 말씀대로 다 잘 순종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목회하면서 점점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내 자신의 경험에서 그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성경을 통해 주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어떤 때는 엉뚱한 짓을 합니다. 저만 그런가요? 성경을 어느 정도 알만한 교인들도 보면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니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끌려다니며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교묘하게 둘러대는 걸 자주 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직접 성령님을 체험하고 능력받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성령에 대해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성령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이전과 달라질 게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소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없이는 감동이 없는 공허한 예배로 끝날 것입니다.  성령이 없이는 심성을 파고들지 못하는 지루한 설교로 마칠 것입니다. 성령을 경험하지 못하는 기도회나 교회 모임은 활력을 잃고 우리 심성은 냉랭해지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죄악이 번성하기 좋은 밭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칩니까? 먼저 예수님의 지침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성령입니다. 요한복음 14,16장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몇 번에 걸쳐서 아버지께 가면 아버지 하나님게 부탁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요14:16;16:7). 그리고 승천하기 직후에 이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습니다(행1:4).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행1:14). 그러다 오순절이 되었는데 그 날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는 게 보이고 갑자기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이상한 말이 입에서 터져나왔습니다. 이 말을 말하는 사람은 그 뜻을 모르는데 듣는 사람 중에는 무슨 뜻인지 아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운적이 없는 외국어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파했습니다.

우리가 회중에게 친근한 교회를 만들어 사람들을 교회로 나오고 머물게 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셀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친절하게 대우하는 것만으로 언제까지 좋은 관계를 지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문제가 터져 서로 관계가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그곳을 피하게 됩니다. 거기엔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이 없을 때는 다 잘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터지면 그것으로 끝장나는 게 성령의 능력도 말씀의 권위도 없는 교회의 운명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라진 교회들이 세워지는 교회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심발라 목사님이 “많은 설교가 쇼처럼 멋있어 보이지만 비겁하고, 사람들에게 죄의 타락성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어 은혜를 깨닫게 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향한 진심과 열정이 결어되어 있고 성령의 증거가 희박한 그냥 종교의 한 의식일 뿐이다. 많은 설교가 회중을 즐겁게 하려는 데 몰두한 나머지 사도적 설교와는 정반대 성향을 띤다”고 지적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으로 대신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설교하는 사람이 성령을 알지 못하면 그렇게 될 위험이 높습니다. 이것은 저 자신과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 늘푸른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집사도 목자도 교회당 건물도 넉넉한 재정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다행한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을 믿고 기다리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성령받고 능력얻는 것은 믿고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의 은혜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매주일마다 집중적으로 성령이 임하시고 능력얻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성령받고 능력얻기 원하는 사람들은 금요기도회에 나오기 바랍니다. 당분간 금요기도회는 성령체험하고 능력받기를 기다리는 모임이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승리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령님입니다. 우리 중에 어느 사람으로부터 먼저 성령체험의 증거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사람이 통로가 되어 불이 번져가듯 성령의 역사가 늘푸른교회에서 시애틀로 한국으로 번져갈 날을 바라보며 기도합시다.

주여! 성령으로 심령의 부흥이 우리 안에서, 우리 강단에서, 우리 교회에서 시작되게 하옵소서. 무기력한 우리 모습을 회개하며 다시 한번 성령으로 불타오르기를 간구합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시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성령받고 능력받아 승리하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