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의식과 견고한 진

고후10:4

지난 주일 육에 속한 사람의 특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The man without the Spirit,고전2:14). 오늘은 잠재의식 속의 부정적 신념들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 사단의 요새가 되고 있는 사실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영역에서는 예수 믿고 거듭난 후에도 육에 속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단이 활동할 수 있는 약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견고한 진’이라고 합니다(고후10:4).

그리스도인에게 ‘견고한 진’은 마음 속에서 내적 전투가 벌어지는 약점들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고 거듭난 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잔존하는 쓰레기 같은 옛 습관들로, 종종 정욕, 자존심, 쓴 뿌리,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불만, 질투, 탐심, 미움, 그리고 이와 비슷한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 약점들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요새로 이용합니다.

주님을 닮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습관이나 죄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 견고한 진이 잠재의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차리고 의식하고 있을 때는 피해가는데 조금 방심하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곤 합니다. 견고한 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재의식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에는 잠재의식(subconsciousness)이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안에 기억력이 존재합니다. 기억력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과 그에 대한 정보는 물론 그 때 경험한 감정까지 저축해 놓은 정보은행과 같습니다. 기억력은 지성과 감성을 동원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두 기록해 놓습니다. 혀끝에 맴돌며 생각이 안 나는 경우, 당장 의식으로 불러내지 못할 뿐 그 정보는 기억력에 저장되어 있답니다.

잠재의식을 뜻하는 영어 subconsciousness에서 sub은 ‘-의 밑에’라는 뜻입니다. 의식의 밑에서 일어난다는 뜻인데 잠재의식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학자들은 두뇌에서 일어나는 정신활동의 85~90%가 잠재의식에서 일어난다고 추정하고 있답니다. 이것은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에 잠재의식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잠재의식은 활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지쳐서 쉬지도 않습니다. 잠을 잘 때 우리 의식은 닫히지만 잠재의식은 아무 통제도 받지 않고 ‘와 신난다. 꿈이다’ 외치며 돌아다닙니다. 이런 이유로 성령님은 꿈을 통해 인간의 지성이나 의지의 저항없이 좀더 쉽게 말씀하시는 것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비몽사몽 간에 환상이나 계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그것은 의식의 방해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열린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잠재의식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들을 모두 흡수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답니다. 소리, 색깔, 느낌, 반응, 등 모든 것을 저장합니다. 우리 눈을 스쳐가는 장면이나 귀에 흘려 들은 소리까지 모두 입력해 놓는답니다. 카네기 멜론 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의 로봇공학연구소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에 의하면 두뇌는 1초에 100조나 되는 많은 지시사항을 처리할 수 있답니다. 우리 두뇌의 정보 저장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잠재의식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만 하는 게 아닙니다. 잠재의식에 저장된 정보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잠재의식은 저장된 정보를 이용해 기술을 습득하게 해줍니다. 처음 컴퓨터 자판을 배울 때 생각납니까? 알파벳 위치가 어디에 있는 지 그걸 보면서 각 손가락에 맞는 배열을 생각하며 하나 하나 쳐내려갔습니다. 지금은 자판을 보지 않아도 손아 알아서 움직입니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 T자 크랭크 일렬주차 하나 하나 구분동작으로 조작했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익숙해지면 차를 마시고 전화를 받으면서도 차선을 바꾸며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엔 의식이 주도하지만 익숙해진 후엔 잠재의식으로 넘어갑니다. 몸의 일부처럼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잠재의식의 기능 때문입니다.

잠재의식은 신념과 사고체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잠재의식은 지각, 사고, 감정, 그에 따른 반응에 작용합니다. 잠재의식에 저장된 정보가 성격, 습관, 행동과 반응을 통제하는 방법 등을 결정한답니다. 정보를 모아 마음 속에 이미지를 만들어 신념 체계를 세웁니다. 이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여러분이 나름대로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있는 정보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잠재의식 속의 정보가 모두 진실에 근거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틀린 것을 옳다고 생각하여 잠재의식에 저장된 정보들도 신념과 패러다임 형성에 기여한다는 것이죠. 인간의 행동은 먼저 패러다임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후 실행됩니다. 사람마다 일정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업운영, 인종문제, 영성, 결혼, 사랑, 하나님에 대해 ‘이것은 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패러다임입니다. 이런 사고의 틀은 우리 기억력 저장고에 들어 있는 내용에 따라 모양새가 결정됩니다.

기억력 저장고에 들어있는 정보들은 얼마나 자주 듣고, 얼마나 자주 반복적으로 행동하며 그 때마다 어떤 감정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신념(지배적인 기억)이 되거나 아니면 단순한 정보로 남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과 애정 어린 포옹을 계속 경험한 어린이는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반면에 형편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학대받고 거절당하는 경험을 반복해서 겪은 어린이는 스스로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충격적인 사건들은 한 한번의 경험으로도 혼에 각인되어 지배적인 기억으로 남습니다. 강간, 낙태, 실연, 이혼, 배신, 납치, 테러, 사별 같은 경험이나 버려진 아이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은 되풀이 해서 경험하지 않아도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이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쌓이면서 부정적인 신념체계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거듭난 후에도‘견고한 진’이 되어 괴롭힙니다.

바울은 우리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말할 때 ‘견고한 진’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고린도후서10장 4절을 보면,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견고한 진’으로 번역된  헬라어 오쿠로마  (οχυρωμα) 는 ‘산성, 요새, 피난처’ 또는 ‘고수하다, 집착하다’는 뜻입니다. 피난처나 요새는 긍정적인 의미지만 여기서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의식과 잠재의식을 포함하는 신념체계가 우리를 포로로 붙잡아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이 견고한 진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냅니다. 사단과 악령은 마음에 요새를 만들도록 인간을 기만합니다. 사탄은 우리 잠재의식에 들어오는 생각과 느낌에 자신의 해석을 불어넣어 사람들이 거짓된 신념을 갖도록 부추깁니다. 사단이 이브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고 선악을 알게 된다고 속삭인 것이 좋은 예가 될 겁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우리 생각 속에서 실재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요새를 만듭니다.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 속에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나고 그것이 신념체계에 영향을 주어 요새를 만들어냅니다. 우리 신념이 만들고 선택한 잠재의식 속의 이미지들이 실제라고 속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의식 속에는 실재가 되어버린 거짓 주장들이 많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진실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니다. 배신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진실된 친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종종 가정폭력과 비극이 이런 사람들을 통해 일어나곤 합니다. 가족을 모두 쏴 죽이고 자살한 가장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받았던 이 남자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품고 살았습니다. 성인이 된 후 남편이나 아버지로서 실패자라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다 자살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사람 앞에서 발표하다 창피를 당한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가 말하는데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른이 되어 이제 그런 일을 기억속에서 사라질 때도 되었건만 사람들 앞에서면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음성이 떨리고 생각이 잘 안납니다. 잠재의식 속에 저장된 부정적 이미지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잠재의식에서 믿는 대로 행동에 나타납니다. 생각과 달리 왜 자꾸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잠재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견고한 진 때문입니다.

잠재의식은 신념을 형성하는 토대가 됩니다. 그래서 잠재의식은 가치관 형성에도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잠재의식에 저장된 기억에 화폐처럼 가치를 붙여두기도 합니다. 어떤 이미지는 1달러, 어떤 이미지는 10달러 이런 식입니다.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지성보다 미모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자는 우선 얼굴이 이쁘고 몸매가 잘 빠져야 한다”. 형제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물론 개인에 따라 이미지의 가치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데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잠재의식 속의 이 가치가 바뀌기 전에는 설교를 들어도 별로 변하지 않습니다.

성격이나 습관을 바꾸기 어려운 것도 이 잠재의식 때문입니다. 어떤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굳게 마음 먹고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동안에는 잠시 달라진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평상심으로 돌아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옛 습관이 살아납니다. 두뇌활동의 상당수가 잠재의식에서 일어나고 잠재의식이 가치와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재의식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사람이 변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된 습관이나 생각을 고치려고 노력해도 잘 안돼서 고민하는 분들은 오늘 그 이유를 잘 이해하기 바랍니다. 분노를 폭발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 속에서 마음 속의 민감한 부분이 건드려지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감정을 터뜨리고 맙니다.

우리가 의식을 통해 외부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으면 그것은 잠재의식으로 넘어가 과거의 아픈기억이나 상처를 통과한 후 다시 우리 의식으로 돌아옵니다. 그때서야 의식은 이 정보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이 정보에 대한 생각과 가치는 잠재의식을 통과할 이미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이 평소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과 다른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실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잠재의식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 행동과 삶을 결정합니다. 인간은 어리섞게도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잠재의식이 사실로 믿는 정보를 받아가지고 신념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거짓도 진리라고 믿으면 거짓이 그 사람의 인생을 지배합니다. 심리학자나 최면술사들은 인식의 힘만으로 자신만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뱀을 두려워 하는 사람에게 뱀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무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피부에 부착된 감지기는 땀이 나는 걸 확인했습니다. 최면술사가 최면에 걸린 사람의 손 위에 얼음조각을 올려놓고 불타는 석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최면에 빠진 실험자는 즉시 얼음조각을 떨어뜨렸고 잠시 후 그 손바닥에 화상으로 물집이 생겼습니다. 잠재의식이 얼음을 불타는 석탄덩어리로 믿어 화상을 입은 것입니다. 잠재의식은 불덩이에 닫았을 때 일어나는 고통의 파일을 찾아내고 신경자동시스템을 가동시켜 물집이 생기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잠재의식의 거짓 정보와 힘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믿으면 그대로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최면은 의식을 뛰어넘어 잠재의식에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인간을 조종할 수 있고 악령의 힘을 우리 혼에 심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잠재의식의 기능과 힘을 바로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잠재의식 속에 만들어진 견고한 진을 사단이 이용해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견고한 진이 우리가 세운 것이든, 외부의 억압과 폭력에 노출되어 생긴 것이든, 이것을 깨뜨려야 새롭게 변할 수 있습니다. 엉망인 사람에게 ‘좀더 잘 하라!”고, 격려하든 야단치든 효과가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잠재의식의 요새를 무너뜨릴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해결책은 타락하기 전 아담에게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담이 성령의 인도아래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을 때 잠재의식의 방해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과 화평했고 매일 매일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서 회복시켜 주시려는 관계입니다. 다음 주에는 견고한 진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