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거리두기

야고보서4:1-10

지난 주일에 말을 조심하자고 말씀드렸는데 말 실수로 감정이 상하거나 가족간에 혹은 친구나 직장 동료 간에 사소한 말다툼은 없었습니까? 아무든 말을 조심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헛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말실수 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당분간 계속 말 조심해서 좋게 말하는 습관이 몸에 베기 바랍니다.

오늘은 '세상과 거리두기'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야고보는"세상과 벗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세상적 가치, 세상적 즐거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살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결과적으로 마귀를 따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동의합니까? 아니면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본다는 느낌이 듭니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본문 1절에서 야고보는 세상 모든 다툼이 정욕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놀 때 보면 잘 지내다가 다툽니다. 다투는 이유는 대개 욕심 때문이죠. 장난감이든 인형이든 서로 원하는 걸 가지려고 다툽니다. 어른들도 다투는 이유는 결국 같습니다. 정욕과 욕망 때문이죠.  최근 인터넷조선일보 보니 민주당 대변인을 지낸 어떤 여성의 친자확인소송 사건과 군산 여인실종사건이 사회면 톱에 올라있습니다.

차* 여인이 조** 전 국민일보회장의 아들을 낳았다며 친자확인 및 양육비와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장에 따르면, 이 여성은 김대중 정부시절 문화관광비서관으로 청와대에 근무할 때 청와대 만찬에서 조씨를 만났답니다. 이 때 두 사람은 모두 배우자가 있었는데도 눈이 맞아 서로 사귀기 시작했고, 각자 배우자와는 이혼하고 동거에 들어가 2006년 아들을 낳았는데 얼마 후에 조 씨가 양육 책임을 지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아 차 씨는 전남편과 재결합을 했는데, 최근에 조씨를 용서할 수 없다고 여자로서 창피하지만 소송을 냈다고 합니다.

군산 이모 여인 (39세) 실종사건은 배후로 의심받던 군산경찰서 소속 정모 경사(40세)가 도주했다가 잡히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데, 이모 여인은 이혼상태고 정모 경사는 배우자가 있는 상태로 소개로 만나 사귀는 사이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이모 여인이 정경사를 찾아와 헤어지는 대가로 돈을 요구해 화가 난 정 경사가 차 안에서 이 여인을 목졸라 죽였다는 것입니다. 수사 중이라 자세한 내막이 곧 그러나겠죠. 아무든 이 두 사건에서도 보듯 정욕 때문에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생겨 인생을 망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심심찮게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 또한 욕심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파벌이 생겨 교인들이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베드로 편이다 그러고 서로 다투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이러고 서로 싸웠습니다(고전1:11,12). 그 소식을 들을 바울 사도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어찌 그 모양이냐고 책망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고전3:1-3).

교회에서든 세상 밖에서든 다툼과 싸움은 대부분은 욕심과 정욕 때문에 일어납니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부모 형제들이 다투고 소송을 하고 서로 원수처럼 지냅니다. 남녀 간에 정욕 때문에 부부가 싸우고 이혼하고 소송하고 살인까지 가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닌 것이 앞서 조 모씨는 그 유명하다는 목사님 장남 아닙니까? 저는 목사니 제가 아는 주변 사람들도 거의 그리스도인인데 기혼자 중에서도 남녀 문제로 다투는 사람들이 적잖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놓고 매일 싸웁니다. 이미 지난 일까지 들춰가면서 막말을 하면서 권력에 대한 욕심을 보이면서도 국민을 위해 그런다는 식이죠.

우리는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선 먼저 달려가 차지하는 게 임자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전쟁처럼 삽니다. 급성장을 이룬 한국 사람들은 직장생활도 전쟁처럼 하고 비즈니스도 전쟁처럼 합니다. 물론 우리만 그런 건 아니겠죠. 삼성과 애플이 소송전을 벌이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하는 걸 보면 전투같습니다. 좋게 말해서 경쟁이고 나쁘게 말하면 욕심을 위해 싸우는 것인데 세상 논리론 어쩔 수 없다 이렇게 갑니다.

욕심을 따라 이렇게 싸우는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디까지 경쟁해야 하는지 쉽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필요한 게 있을 때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합니다. 기도할 때 정욕을 위해 잘 못 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동기가 순수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정욕을 위해 세상 사람들과 다툴 게 아니라 욕심을 자제하고 정당하게 필요한 것이면 하나님이 공급해주실 것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만 하고 가만 있으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도 다니고 비즈니스도 하면서 필요한 것을 얻되 정욕을 위해, 사치스럽게 살려고 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않고 부자로 호화스럽게 권세도 가지고 살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그렇게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1%도 안될 겁니다. 성경의 예를 들면 애굽의 총리된 요셉, 다윗왕, 바사제국의 총리가 된 다니엘 정도가 여기에 해당할 겁니다. 재물과 권세를 얻는 과정에서 믿음의 도리를 저버려 하나님 눈 밖에 나거나 재물과 권세의 맛에 빠져 세속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롯의 처, 솔로몬왕, 헤롯왕가, 대제사장 등 종교지도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교우 여러분, 믿음이나 인품이 보통 수준이라면 믿음 하나 잘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세속에 물드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재물이 있으면 하나님보다 재물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권세가 있으면 봉사하기 보다 그걸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야고보는 재물과 권세를 탐하는 것을 세상과 벗하는 것이라고 표현했고 그것은 간음과 같아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좀 심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심하게 말해야 경각심을 좀 가질까요?

저는 교우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서 얻은 수입으로 좀더 좋은 환경, 예컨데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여유롭게 산다고 무조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재물을 의지하며 정욕을 위해 살면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열심을 내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데는 인색해지는 것을 경계할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재물이 넉넉하고 세상 사는 재미가 좋으면 사실 천국의 소망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는 세속적인 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 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말로 좋게 권면하는 정도니까 제 눈치는 보지 말고 양심껏 바로 하면서 자유함을 누리기 바랍니다.

끝으로 재물과 육신의 쾌락은 마귀가 그리스도인을 타락시키는 대표적인 수단이요 전략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7절에서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정욕과 교만의 문제를 말하다가 갑자기 마귀를 들고 나왔습니다. 정욕을 따라 세상에 빠져 사는 배후엔 마귀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헛된 세상에서 육신의 쾌락을 위해 살라고 부추깁니다. 간음과 간통과 방탕함과 교만함의 배후엔 악한 영들이 역사합니다. 탐욕과 교만과 음란한 생각은 마귀로부터 옵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명령하기 바랍니다. 그게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재물과 이성 앞에 일반 그리스도인은 물론 목사님들도 넘어지고 신부님들도 넘어지고 대통령도 넘어지고 국세청장도 넘어지고 정보원장도 넘어지고 장관들도 넘어지고 그러니 유혹 받으면 넘어진다는 것을 알고 늘 조심하는 게 최선입니다. 자만심 금물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데 그게 뭐겠습니까? 항상 말씀 붙들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공식적인 모임에 빠지지 말고 참석해서 은혜 받는 겁니다. 혼자 신앙생활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자만하지 말고 만사를 제쳐 놓고 주일과 금요일엔 교회 나와 예배하고 기도하고 그러면서 살아야 손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성결해질 수 있습니다.

돈벌이든, 집이든, 자동차든, 뭐 이런 것들로 즐거워하며 웃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남편의 영혼이 지쳐있고 아내의 영혼이 다 죽어가고 자식들에게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고 그런 상황이라면 슬퍼하며 애통하고 울어야 합니다. 롯의 처가 그랬듯이 세간 살이에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볼 때가 아닙니다. 야고보의 말씀이 어찌 소아시아에 흩어져있던 유다인들에게만 해당된다고 하겠습니까?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밖에 못사는 우리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무쪼록 재물과 육신의 쾌락과 이 세상 즐거움에 빠져 주님께 멀어지지 않게 심령을 잘 지킬 책임이 여러분 자신에게 있다는 걸 유념하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까지 한 주 동안 마음 속에 일어나는 욕심을 잘 다스리고 하나님 뜻에 굴복하여 주님을 기쁘게 하며 평안을 누리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