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라는 씨

마가복음4:26~29

지난 주엔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씨앗은 밭이 좋아야 100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목회도 좋은 마음의 밭을 찾아 그곳에 씨를 뿌려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목장 사역에 잘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스토리를 봅시다.

비유의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어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렸습니다. 씨를 뿌린 후 농부가 먹고 자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씨는 땅에서 양분을 공급받아 싹을 내고 그 다음은 이삭이 나오고 그 이삭이 충실하게 여물어 추수 때가 되어 거둬들였습니다. 농부가 자고 깨는 사이에 씨가 스스로 자라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뭐가 같다는 것인지, 그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이 강조하는 것은 씨가 어떻게 자라느냐는 것입니다. 씨는 밭에서 양분을 얻어 스스로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농부가 씨를 자라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린이 그림 동화책 Frog and Toad Together를 알고 있습니까? 아놀드 로벨이 쓴 동화책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를 보면, 개구리와 두꺼비는 함께 용기, 의지, 인내심, 계획성 등을 배워 나갑니다. 아이들이 일상 생활에서 부딪치는 일들을 현명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그림동화책입니다. 이 동화책 속에는 씨를 뿌려 정원을 만드는 두꺼비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Frog and Toad Together 그림사진)
 
개구리는 정원을 만들어 가꾸었습니다. 두꺼비는 개구리의 멋진 정원에 감탄하면서 자기도 정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음, 멋지긴 하지, 하지만 너무 힘든 일이야” 개구리가 대꾸했습니다. 개구리는 친구 두꺼비에게 씨앗 봉투를 주면서 씨앗을 뿌리면 금세 아름다운 정원으로 자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빨리?” 두꺼비의 물음에 개구리는 “꽤 빨리”라고만 대답해줬습니다.

씨앗을 뿌린 두꺼비는 씨앗을 향해 “자라라” 말하고 그 자리에서 싹트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자 좀더 큰 소리로 “자라라”고 외쳤습니다. 고함소리에 놀란 개구리가 울타리 넘어로 들여다보며 웬 소리이냐고 물었습니다. 두꺼비가 말하기”를 “내 씨앗이 자라질 않아.” 개구리는 “네가 너무 크게 소리를 치니까 그렇지. 불쌍한 씨앗이 자라기를 무서워하잖아.” “내 씨앗이 자라기를 무서워한다고?” “며칠만 그냥 둬봐. 햇빛을 쪼고 비를 맞으면 씨앗이 금세 자라기 시작할 거야.”

그날 밤 늦게 두꺼비는 기대하며 다시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제기랄, 아직도 자라지 않았어. 씨앗이 어둠을 뭐서워하는 게 틀림없어. 내가 이야기를 읽어줘야지. 그럼 두려움이 사라질 거야.” 며칠동안 두꺼비는 씨앗에게 이야기를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빗속에서 춤도 춰줬습니다. 바이올린도 연주해줬지만 씨앗은 ‘두꺼비의 시간표’대로 자라주질 않았습니다.

어느날 지칠대로 지친 두꺼비는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이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겁이 많은 씨앗인가 봐.” 며칠 내내 씨앗을 즐겁게 해주느라 지친 두꺼비는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다음날 두꺼비는 개구리의 환호성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두꺼비야 두꺼비야, 얼른 일어나! 니 정원을 봐봐.” “우와 드디어 내 씨앗이 두려움을 떨쳐버렸구나.” “이제 너도 멋진 정원을 갖게 되었구나.” “응, 그런데 개구리야. 네 말이 맞았어. 정말 힘든 작업이었어.” 두꺼비는 이미의 땀을 훔치며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두꺼비가 정원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우리 대부분은 인생에서나 교회 사역에나 두꺼비처럼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공이나 성장을 만들어 내려고 쓸대없는 수고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이나 목회에서 교회성장을 너무 힘들고 고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고통스럽고 목회가 힘든 까닭은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 원리를 모르거나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4장 26~29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리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뭐가 같다는 겁니까?. 씨 뿌린 농부가 밤낮 자고 깨는 사이에 씨는 자라나지만 농부는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모릅니다.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는 농부가 씨를 자라게 한 게 아닙니다.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이 표현은 씨가 자라도록 농부가 한 게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좋은 땅에 제대로 된 씨앗을 뿌려 놓으면 스스로 자랍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이 성장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목회자 역시 이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들이 두꺼비처럼 조바심을 내며 힘든 인생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싹이 나오나 곁에서서 지켜볼 필요도 없고, 조급해져 씨앗을 향해 노래부르거나 바이올린을 켤 필요도 없습니다. 농부가 해야할 일은 씨를 뿌리는 것, 익은 열매를 추수해 거둬 들이는 것입니다. 씨를 자라게 하는 것은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라게 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린 후에 할 일은 자라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풍성한 추수를 기대하며 감사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꺼비처럼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성공을 위해 너무 노심초사합니다. 그런 사람은 오늘 비유에서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씨가 어떻게 자라나는 지 생각해보세요. 씨는 땅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 자랍니다. 농부가 씨를 자라게 하지는 못합니다. 목회적 차원에서 말하면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두꺼비처럼 명령하고 애원하고 달래며 조바심을 내더라도 소용없습니다. 헛수고로 목회가 힘들어질 뿐입니다. 여러분 인생 경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원리를 거슬러 살고 있습니다. 씨뿌리는 일은 열심을 내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든 빨리 싹이 나고 자라게 만들어 수확하고 성공하려고 온갖 애를 쓰며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길 가, 돌밭, 가시떨기에서 진을 빼며 헛수고를 한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성장을 만들어 내려고 열정과 자원을 낭비합니다.  아무리 경험 많은 유능한 농부라도 씨앗을 자라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씨앗이 스스로 자라주지 않는다면 농사 짓는 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 따르면 성장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씨를 뿌린 사람이 자고 깨는 사이에 씨가 스스로 자랍니다. 교회성장이 이런 식으로 되는 것이면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고 안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라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니 우리가 해야할 일, 씨뿌리는 일에 힘쓰다가 때가 되어 곡식을 거둬 들이면 그만입니다.

목회에 대해 한 수 가르쳐주려는 전문가들이 참 많습니다. 이들이 강조하는 요지는 이렇게 저렇게 하면 빨리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부흥시킨 강사들의 말은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점에는 교회성장에 대해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플랜과 전략들로 넘쳐납니다. 교회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단계보다 성장단계에 대부분의 자원을 쏟어 넣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특성상 신비와 기적으로 역사해야 할 자리가 조바심을 내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프로그램으로 체워졌습니다.

성장의 원리를 모르면 두꺼비처럼 되기 쉽습니다. 빨리 성장하도록 방방 뛰고 고함지르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나 좀처럼 자라지 않습니다. 노력이 부족한 줄 알고 더 열심히 합니다. 그래도 별로 성과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성장을 이루려고 애써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은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3장 6,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면 하나님보다 담임목사들이 유명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세계적인 교회가 되자 조용기 목사님은 예수님보다 유명해졌습니다. 윌로우크릭커뮤니티가 세상에 알려지자 Bill Hybels 목사님이 유명해졌습니다. 새들백교회가 뜨자 Rick Warren 목사님 이름이 오르 내렸습니다. 교회 성장에 목마른 목회자들이 개척부터 교회를 부흥시킨 분들께 열광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이해할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만이 자라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성장을 경험하려면 모험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성장의 전 과정을 간섭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면 불안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기관이 고장난 배를 타고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어디로 흘러갈지 불안할 것입니다. 교회도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면 목회자들은 불안감을 느낄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자기 손에서 통제가 가능해져야 목회자들이 안심할 수 있습니다. 교회 성장을 하나님 손에 맡겨두고 가만 기다리는 건 뭔가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불안합니다. 그래서 모험이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에서 배운 ‘하나님만 자라게 하신다’는 중요한 원리를 여러분 인생과 교회 사역에서 실험해봅시다. 씨가 자라서 추수하기까지 씨를 뿌리는 단계, 성장단계, 그리고 추수단계 이렇게 3단계가 있습니다. 이 중에 씨뿌리는 일, 추수하는 일은 하나님의 종인 우리들의 몫이지만 자라게 하는 일만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풍성한 수확은 성장과정에 좌우됩니다. 직장생활이나 사업, 교회목회 역시 성장을 좌우하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오늘부터 성공이나 성장에 대한 조바심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안식을 누립시다. 조바심내며 열심히 한다고 자라는 게 아니고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공부나 진학이나 인생 성공에 너무 집착해서 스트레스 받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해주시면 감사하게 받고 안해주시면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종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래야 성공보다 더 중요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에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저는 첫째로 추수할 것이 많도록 씨뿌리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는 곡식이 익어 거둘 때까지 교회성장의 부담을 떨쳐버리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목회자의 인생을 즐기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 동역하면 인생도 목회도 어려운 게 아니라 밤낮 자고 깨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교훈을 마음에 새기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