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선악을 알게 되었는가?

창세기3:1-13  
어떻게 선악을 알게 되었는가? 

오늘은 창세기 3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내용에서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중엔 뱀의 유혹으로 이브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해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어기는 죄를 범하여 처벌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신 것인지,어떻게 한갓 나무 열매로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왜 선악과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성경에 그 이유가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문맥을 통해 유추해봐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선악과는 아담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인지  생각해보는게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 외에는 거기 있는 모든 나무 열매를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고 허용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는 아담이 먹고 싶어도 맘대로 할 수 없는 금지사항이 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여 아담은 에덴 동산의 모든 피조물에게 마치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은 창조주가 아니지만 맘대로 하다보면 마치 자기가 창조주라도 된 것처럼 착각할지도 모릅니다.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을 보면, 아담이 그런 착각을 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 금지령을 하나 만들어 아담으로 하여금 관리자의 분수를 지키며 창조주의 뜻을 잘 받들며 허용해주신 질서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바라신 것 같습니다. 

사탄이 왜 저주 받은 자가 되었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기 때문 아닙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도 권세 있는 천사장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타락하기 전에도 인간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사탄처럼 분수를 넘어 대적하지 못하게 미리 선악과를 통해 자기 한계를 일깨워주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활한 뱀이 이것을 악용해서 이브를 사기쳐 오히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게 만드는 지렛대로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브는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될 줄로 착각하고 먹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 그 나무 열매가 어떻게 아담에게 선악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먼저 사용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혹은 어떤 상황에서 그 나무는 선과 악을 알게 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금지하신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금지명령에 순종해서 악을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기를 바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와는 반대로 아담과 이브가 금지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악을 범하고 처벌받음으로 결국 그 나무 열매로 인해 선과 악이 어떤 것인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엔 선악과가 특별한 과목이든지, 그냥 보통 과일 나무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악과가 특별한 것은 하나님이 그 나무를 지정해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기능을 부여하고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나무 열매는 어떻게 사람에게 선악을 알려준다는 것인지 그걸 좀더 설명하겠습니다. 동산 중앙의 그 나무 열매가 어떻게 선과 악을 알려주는지 본문 속에 자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앞뒤를 살펴보고 이리 저리 뒤집어 생각하면서 영적 이해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알게 되는가부터 생각해봅시다. 율법과 죄의 깨달음의 관계에 대한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고 합니다. 율법 아래 정죄되고 처벌받는 행동도 그 율법이 만들어지기 전엔 죄도 아니고 처형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율법이 생기고 그걸 범했을 때 처벌을 받고 그런 과정을 거쳐 악이 뭔지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로 선악과의 선악을 알게 하는 기능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걸 아담에게 허용하고 단지 선악과만 따먹지 말라고 금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완벽하게 율법 한 조항이 생긴 것입니다. 이걸 지키면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존재로 살아갑니다. 이걸 범하면 아담과 이브는 악을 범한 죄인이 되어 죽어야 합니다. 이제 선악과가 어떻게 선악을 알게 해준다는 것인지 감이 옵니까?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 아담과 이브는 악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 있습니다. 악을 모르기 때문에 사실 선의 개념도 모릅니다. 그냥 선한 상태로 살아갈 뿐입니다. 말하자면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을 모른 체 그냥 선한 상태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창조직후부터 지금까지 누군가 금지령을 위반하고 처벌받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악이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기전까지 아담과 이브는 한 번도 금지령을 위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죄악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당연이 뭐가 죄악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비로소 죄악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이 죄악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금지령을 위반한 자에게 따르는 처벌을 통해 아담과 이브는 죄악의 실상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죄악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들은 그 전의 상태 선이 뭔지도 저절로 알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악이 없으면 선도 없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되는 악의 상태가 규정되지 않고서 어떻게 선의 상태를 규정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담과 이브는 선의 상태에 거하면서도 선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이 존재하기 전에 어떻게  악이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죄악을 경험하면서 선악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 처럼 선험적으로, 쉽게 말해 경험하기도 전에 악이 뭔지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부모 품에서 이것 저것 경험하며 알아갑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성인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범죄하기 전에 아담과 이브에겐 선이 뭔지 악이 뭔지 그런 개념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다며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하는 말에 이브는 너무 쉽게 넘어간 게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너무 순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나를 유혹하는 건 언제나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남편이 아내를 유혹하고,  아내가 남편을 유혹합니다. 부모형제, 자녀,  친구들이 유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셨는데, 뱀은, 영적으로 보면 사탄인데, 절대로 죽지 않고 하나님 처럼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럴 경우 누구 말이 옳은지 생각하고 결정해야 겠다고 하면 말려듭니다. 지금 다 이해가 안돼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자 그래야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배고플 때 빵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6절 보면, 이브가 선악과 따먹을 때 아담이 함께 있었던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랬다면 아담이 이브를 만류했어야 마땅한 게 아닙니까? 미처 말리기 전에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면 하나님께 데라고 가서 용서를 구해야죠. 그런데 아담은 그러질 못하고 아내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먹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고통 속에 죽어야 했습니다. 성경엔 배우자를 가리켜 영생의 유업을 함께 받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배우자가 하나님 말씀과 다른 주장을 하고 다르게 나가면 제동을 거세요. 그래야 둘 다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2:17)는 경고만 하셨는데, 사탄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지고”라고 말했습니다(3:5). 눈이 밝아진다는 말은 듣기는 좋습니다. 정말로 선악과를 먹은 후 두 사람의 눈이 밝아졌다고 합니다(3:7).  그런데 눈이 밝아져 새로 보게 된 것이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이었습니다. 창세기2장 25절을 보면,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엔 서로 부끄럽다고 느꼈습니다.  죄가 부부의 순수한 성적 사랑을 육욕으로 타락시킨 것 같습니다. 

죄의 타락은 단지 벗은 몸을 의식하는 성적타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관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 숨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아담은 이브 핑계를 대며 비난했습니다.  의식주 생활, 자녀 출산과 양육 모든 것이 고통스런 짐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인생은  천국에서 지옥같이 변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땀흘리며 수고하다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숨는다는 것은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인간의 본능 같습니다. 아담과 이브도 하나님이 기척이 들리자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낌새가 이상한 걸 아시고 “네가 어디 있느냐”고 아담을 불렀습니다. 아담은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누가 너에게 벗은 몸이라고 일러주더냐, 내가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 열매를 먹은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그렇게 된다는 걸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먹었느냐고 물으실 때 아담은 하나님이 함께 살라고 짝지어준 그 여자가 먹으라고 갖다 줘서 먹었다고 치졸한 핑계를 댔습니다(12절). 이브를 처음 보았을 때 아담은 이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라면서 사랑고백을 했는데, 이제 와선 자기 잘못을 덮어 씌우며 내 대신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선악과 이야기는 또한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범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은 피조물인 우리 몫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하시면 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먹이를 찾아 울부짓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사탄은 친구처럼 가장하고 찾아와서 기회가 오면 맹수처럼 목덜미를 물려고 달려듭니다. 틈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한번 유혹을 받아 넘어진 후엔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탄은 우울한 감정에 빠졌을 때 마리화나를 피우라고 속삭입니다. 그렇게 빠져들기 시작하면 끊어버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리화나가 중독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심각하게 손상시킨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도박에 빠지는 것, 불륜에 빠지는 것, 쇼핑중독에 빠지는 것, 등등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욕망의 유혹을 경계하기 바랍니다. 

끝으로 악은 모를 수록 좋습니다. 세상 모든 죄를 다 지어보고 그러다 예수 믿고 돌아오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 더 좋을 것 같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죄를 지은 경험은 죄책감과 상처를 남깁니다. 내면적 차원이든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든 뭐든 해롭게 합니다.예수 안에서 용서받았어도 어떤 것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루게 만듭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한 죄는 용서 받았지만,  그로 인해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버리고 도망가야 했고, 자식이 아비 후궁을 범하는 그런 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멀리하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 유혹을 이겨내며 말씀으로 승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