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시편146:7-10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복음주의 교회들이 카톨릭이나 진보적인 교회들보다 정치나 사회적 책임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복음적인 교회들이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을 우선시했기 때문인데, 복음전파는 물론 사회 정의를 세우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요즘 한국에선 ‘공정한 사회’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공정한 사회를 외치며 공평한 분배가 되도록 대기업 총수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는데 보기 좋습니다. 공정은 ‘공평(公平)하고 옳바름’이란 뜻입니다. 공평은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각자 노력한 만큼 정당한 자기 몫을 받고 사람 차별 없이 공평하게 법이 적용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에 대기업은 호황인데도 중소기업이나 서민은 나아진 게 없다고 불평입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법을 어기고도 무사하고 힘없는 백성들만 처벌받는 게 아니냐는 불만의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공평한 분배와 평등한 법 적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권력과 관련되고 정치와도 연결됩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높여주시는 분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나그네를 보호하시고 고아와 과부들을 돌봐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들이 꾸미는 음모를 좌절시키는 분입니다.

억압당하는 자를 공의로 판단하는 것은 법원이 하는 일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복지 단체들이 하는 일입니다. 갇혀 있는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정치와 행정이 하는 일입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병원이 하는 일입니다. 사회 약자들을 돌보는 것은 권력이 나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악당의 음모를 좌절시키는 것은 경찰과 검찰이 해야 할 입니다. 이 모든 것이 국가의 일이고 사회 정의를 세우는 것인데,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이런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적극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야곱의 12아들에게서 나온 후손으로 구성된 형제들의 나라였습니다. 우리도 단일 민족을 자랑하지만, 유다와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한 핏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의 책망하는 소리로 보건데 이스라엘 사회는 그렇게 정의롭지 못했습니다. 부정, 부패, 억압, 폭력으로 얼룩져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책망했습니다(암5:24).

세상에서 교회의 역할을 빛과 소금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세상이 어둠고 사회가 부패한 상당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William Temple(1881-1944)은 “교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비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활동 두 영역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주로 교회를 무대로 주님을 섬기도록 부름받았습니다. 풀타임 사역자들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믿는 무리들이 생기면 그들과 더불어 믿음의 공동체인 지역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도록 격려합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풀타임 사역자로 부름받는 사람이 생기면 저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대부분은 세상에 나가 전문 직업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주님을 섬기도록 부름받게 될 것입니다.

 존 칼빈은 어떤 직업이든 (단 불의하고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면)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직업소명론’ 입니다. 16세기 인물인 William Perkins(1558-1602)는 “만인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어떤 삶 또는 부름” 을 ‘소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소명이 특정한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가 되길 바랍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앞으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진로를 선택하길 바랍니다.

제가 가끔 주은이에게 신학교에 가는 건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며칠전 와이프 말이 주은이가 전공을 바꿨다는 겁니다. 그래서 뭘하려느냐고 물으니 social worker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옵션이 하나 더 있다고 했습니다. Social worker도 아니면 신학교를 가라고 했는데, 소명이길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미 computer engineer가 되어 Microsoft나 Amazon.com에서 일하는 분들, Boeing에서 일하분, 간호사와 간호학을 공부하는 분들, 은행에서 일하는 분, 개인 비즈니스를 하는 분이 있습니다. 또한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분, 약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분,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분, 법을 공부하려는 분, 비즈니스맨이 되려는 분, social worker가 되려는 분 등 다양합니다. 현재 직장에 다니거나 준비하는 교우들 모두 직장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곳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소명을 받드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직장이나 사회생활이 차원이 달라질 것입니다.

전에 어떤 목사님이 직장은 단지 생계를 위해 생활비를 버는 곳으로 만족하고 남은 시간은 교회를 섬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으라고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또 남편 수입이 왠만하면 자매들은 직장을 그만 두고 자녀 양육에 힘쓰다가 자녀들이 자라면 교회에서 목자로 섬기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오해하진 않습니다. 교인들이 세상에서 출세해보려고 직장에 너무 얽매여 제대로 교회를 섬기지 못하고 주일 예배도 방해받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직장을 단지 돈버는 곳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사역의 장소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지금 여러분이 속한 직장을 본다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여기서 뭘 하기 원하는지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소명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직장이라고 생각되면 거기서 인생 대부분을 보내기 전에 소명있는 곳을 찾아나서는 게 좋습니다. 간증집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핵물리학을 공부하고 나사에 들어가 원자폭탄 만드는 분야에서 일하게 된 형제가 있었습니다. 직접 무기를 제조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죽이는 무기 만드는 일을 돕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가 NASA보다 못한 직장으로 옮겼습니다. 수입만 보고 직장을 선택하지 말고 소명과 사명을 고려하기 바랍니다.

종교개혁시대에 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는 성직자의 도움 없이도 직접 하나님께 나가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만인 제사장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풀타임 사역자는 교회에서 여러분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병자를 돌보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문안하고, 외국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켜주며 성차별,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활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사회적 불의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까지 세상은 악해지겠지만,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사회적 불의에 저항해야 합니다. 신문을 보고, 뉴스를 들으며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참여하여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살면 은혜롭고 편할 수 있지만,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 들어가 소금과 빛의 소임을 다하기 바랍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져야 할 곳입니다.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세상정부에 대한 교회의 섬김이자 정치행위이기도 합니다. 조찬기도회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성경적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요즘은 어떤 분야든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분야에서 주를 섬기려면 공부가 필요합니다. 관련서적을 많이 읽고 전문가들의 토론도 시청하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정당이나 후보자의 정책을 살펴보고 기독교신앙으로 용납되는 후보를 지지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공평과 정의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세상에 나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목회자든, 공무원이든, 기업인이든, 직장인이든, 비즈니스맨이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도록 부름받은 종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의식을 가지고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부정부패가 확산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등지고 교회에서 개인적 헌신만 한다면 그것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교회당 안에서만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교회 밖 세상 속에서 주님을 따르며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