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대신 세워줍시다

로마서14:1-12

오늘은 “믿음이 약한 형제나 자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런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약한 형제의 부족한 면을 볼 때 그것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대신에 그 사람을 용납하고 믿음으로 나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본문1절에서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의 특징은 아직 옛 사람의 습관에 따라 살면서 자기 생각에 따라 판단하고 시비를 가리려고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다르면 성경의 가르침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경우, 음주나 흡연이나 이성교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번 기독교방송인가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음주는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는 걸 봤습니다. 개신교 청년 사역자와 가톨릭 사제가 나와서 대담을 하는데 한 분은 음주는 피하는 게 좋다고 하고 한 분은 불신자 전도를 위해서도 친교 자리에서 실수 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볍게 마시는 것은 해로울 게 없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일단 술을 마시거나 흡연을 하는 사람이 교회 모임에 참여했을 때 음주나 흡연에 대해 비판하며 잘못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더라도 주 안에서 용납하고 그 형제나 자매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성경말씀을 분별해서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그냥 용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술 담배를 해본 적 없는 교인들은 거부감이 있겠지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납하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잘못이며 죄로 판단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정죄할 권리는 없습니다.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외의 다른 사람과 성적 관계나 미혼 남녀의 성적 관계는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소 관대하기도 하고 엄격하기도 하지만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죄의 목록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 불미스런 일에 연루된 사람이 교회에 나왔을 경우라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병원에서 병을 고치는 게 목적인 것처럼 교회는 죄인들이 나와서 구원얻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엔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권유하지도 금하지도 않는 불분명한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는 없었거나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현대 사회에선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민주주의 같은 이념문제, 노사문제, 인종차별문제, 성차별문제, 환경문제, 복지문제, 재태크문제, 세대간의 갈등, 동성결혼 등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엔 별 문제가 되지 않던 주제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주요한 사회 이슈가 되어 교회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그리스도인이 취할 지침은 크게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남자들도 머리를 길게 할 수도 있고, 짧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들도 치마를 입을 수도 있고 래깅스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라도 의상이나 용모를 가지고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정죄할 권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 안에서 자유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내 자유로운 행동이 하나님도 기뻐하실까 생각하면 더 덕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 원리는 나의 자유로 믿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믿음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 자유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시험에 빠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방종과 같은 것입니다. 매우 보수적인 마마 마요 라는 할머니 한 분이 자기 목사님이 반바지 차림으로 있는 것을 보고 다음 주일에 목사님을 외면하다가 하는 말이 “앞으로는 목사님 설교를 다시는 안 듣게 될 것 같습니다. 나는 감히 나의 목사님이 대중 앞에서 그런 차림으로 있는 것을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랬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마마 마요,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마마 마요 앞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바닷가에 도착한 후에만 반바지를 입는데 신경을 썼답니다.

셀그룹에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입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면 아직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는 사람을 밀어내게 됩니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것은 그 사람이 나와 같이 성경적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되었을 때 다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영혼을 용납하고 주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런 목적으로 믿음이 연약한 사람의 태도와 주장을 받아주고 믿음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 믿음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 자유가 비방을 받지 않도록 행동을 삼가하고 남의 이목도 신경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위선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즉 전도와 교회 세우는 일이 방해 받지 않고 잘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겐 고기도 먹고 포도주도 마실 자유가 있습니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체가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포도주를 마실 때 떳떳한 마음으로 마셔도 됩니다. 하지만 어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오해하여 시험에 들 수 있는 상황이면 안 마시는 게 좋습니다. 그것은 위선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사람의 양심을 지켜주기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사나 죽으나 다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하고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방해 받지 않도록 하며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특별히 삼가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에 유념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