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가 복받는다

창26:12-29

오늘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한 이삭의 순종을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은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른 신(월신)을 섬기던 가정에서 성장한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후 믿음을 개척한 인물입니다. 반면에 이삭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함께 한 인물이고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면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이삭의 출생 배경에 대해서는 지난 주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험을 말씀할 때 자세히 살펴봤기 때문에 오늘은 생략하고 이삭과 관련된 부분만 살펴보겠습니다. 이삭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소돔성이 멸망한 후 아브라함이 헤브론 서남쪽에 위치한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했다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랄 왕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안 후 돌려보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랄 도성을 떠나 브엘세바 근처로 옮겼는데(창22:19), 여기서 이삭이 태어났을 것입니다(ppt 지도참고).

유년기 이삭에 대한 기록도 별로 없습니다. 이삭이 젖을 뗄 때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열었다는 것, 이복형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다가 쫓겨난 사건 정도가 언급된 후 핵심적 사건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기록이 나옵니다(창22장). 이 부분도 지난주 살펴봤기 때문에 오늘은 이삭의 반응에 대해서만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에서 중심 인물은 이삭이 아니고 아브라함입니다. 서두에 언급된 것어럼 아들 이삭을 가지고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보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아버지는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올려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했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잡으려 했다는 말은 희생제물로 드리기 위해 죽이려 했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결박하고 죽이려 할 때 이삭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합니다. 이삭의 반응에 대해선 자세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상해볼 수 있는 이삭의 반응은, 격렬하게 저항하다 도망가는 것, 격력하게 저항했지만 아버지의 완력을 당하지 못하고 결박당해 버둥거리는 것, 아버지가 지시대로 순종하는 것 등입니다. 그런데 9절의 결과를 놓고 볼 때 가능성은 저항하다 묶여있거나 순순히 묶여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모리아 산에 거의 다왔을 때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산에 오르게 한 걸 보면, 이삭은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는 나이로 15세에서 20세 사이였을 것 같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이삭의 나이에 100세가 추가되겠죠. 그 나이면 아브라함은 사실 노인이죠. 아들은 막힘이 솟는 청(소)년, 아버지는 기력이 쇠해가는 노인이었으니 이삭이 강렬하게 저항하고 도망치려고 했다면 이삭을 묶어 번제단에 올리는 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버지가 하자는 데로 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첫 걸음은 물론 믿음입니다. 믿음 없이 순종은 불가능하겠죠. 이삭이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께 순종한 것도 자신의 출생 스토리와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과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축적되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시작이지만 그 믿음을
꽃피워 열매 맺게 하는 것은 순종의 삶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랑과 헌신을 고백하고서는 정작 자신을 드려야 할 때 싫다고 도망가면 그 고백은 거짓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삭은 도망가지 않고 아버지 뜻에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이 모습은 꼭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만일 이삭이 저항하다 아버지 힘에 굴복당해 번제로 드려지는 상황이었다면 이 사건은 이삭이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남기고 부자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졌을 것입니다. 아버지 마음이 어떠하든지 당한 이삭은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자고 하나님께서 부자 관계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도 아셨지만 이삭의 순종도 미리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야 말이 됩니다.

번제 사건이 있은 지 10여년이 흐른 후 어머니 사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이삭은 장성한 청년이었지만 어머니가 안 계신 허전함이 컸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그런 아들을 위해 배필을 구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의 불레셋이나 헷 족속의 이방여인이 며느리 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늙은 종을 고향 땅 우르로 보내 거기서 이삭의 배필을 찾아오도록 보냈습니다. 창세기11장 26절에서 보는 것처럼, 아브라함에겐 나홀과 하란 형제들이 있었고 그들은 고향 메소보타미아에서 결혼해 자녀를 낳고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나홀은 여덟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 중에 브두엘이 있었는데 그는 이삭의 아내 될 리브가를 낳았습니다(창22:20-23).

헤브론 브엘세바를 떠난 종은 메소보타미아 나홀의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우물가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우물가에 섰다가 처녀가 와서 항아리에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가려고 할 때 항아리의 물을 조금 마시자고 요청할 것이고 그 때 그 여인이 물을 마시게 할 뿐 아니라 지친 약대를 위해서도 물을 길러 먹게 하겠다고 하는 여인이 있으면 그 여인을 하나님이 이삭의 아내로 예비한 줄 알겠노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늙은 종은 마음씨 좋은 여인을 얻기 위해 좀 얌체 짓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물은 매우 깊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매마르고 거칠어 사실 아무 곳이나 물이 나오지도 않고 물을 얻기 위해서는 매우 깊게 파야 했습니다. 그러니 물을 퍼올리는 것은 힘든 일이죠. 힘들게 퍼올린 물을 먹겠다고 할 때 고맙다고 줄 여인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자청해서 약대까지도 먹이겠다는 그런 여인이 흔하겠습니까? 우리 교회 자매들 중에서 찾으면 몇이나 될까요? 리브가는 노인의 요청대로 물을 먹게 하고 약대에게도 물을 퍼서 먹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하나님이 준비한 여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특별한 집안이 아니면 부모가 자녀 배우자를 골라 정해주는 시대는 아닙니다. 보통은 당사자들이 교제하면서 좋으면 부모의 동의를 얻어 결혼합니다. 부모 입장에선 자식들이 좋다고 하는데 말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청년 여러분들이 마음씨 좋고 인정 넘치는 배우자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얼굴이 먼저 보이니까 외모 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마음도 보고 성격보 보고 믿음도 보고 그러길 바랍니다. 

리브가는 아버지와 오빠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나섰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사건을 떠올립니다. 그 시아버지에 그 며느리인 셈이죠. 리브가의 용기는 아브라함에 비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선택의 배후엔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한다고 봅니다 이삭이 누굽니까? 언약의 아들이 아닙니까? 리브가는 남편으로 이삭을 따르기로 결단함으로써 언약의 가문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예수 믿는 결단을 내림으로 기업의 후사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맞이할 때 40세였다고 나옵니다. 결혼한지 20년이 흘렀을 때도 리브가는 잉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리브가에게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그런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삭이 참 잘한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가 잉태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쌍둥이이였고 그들이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복중에 두 국민이 들어 있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죽을 때까지도 큰 아들 에서가 장자로서의 권리를 계승하길 바랐습니다. 이삭은 세상 떠날 날이 가까운 줄 알고 늦기 전에 큰 아들 에서를 축복해줄 생각이었습니다. 족장 시대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는 것은 그들의 문화였습니다. 이삭은 기분좋게 축복하기 위해 에서에게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오게 했습니다. 리브가는 큰 아들 에서가 사냥간 틈을 이용해 염소새끼로 별미를 만들어 야곱을 에서로 위장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한 것은 인간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흉년이 들어 그랄로 내려갔을 때 이삭은 아버지와 같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리브가 역시 미모가 뛰어나 아내를 빼았고자 해코지를 할까봐 그랄 사람들에게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어느날 그랄 왕 아비멜렉이 창문으로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걸 보고 이삭을 불러 왜 아내를 누이라고 해서 백성 중에 누구든 네 아내를 취하는 죄를 범할 뻔 하게 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이 일로 이삭은 그랄 도성을 나와 평지에 나와 살아야 했지만, 하나님이 복주시어 그 해 농사는 100배나 수확을 거둬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거부가 되자 시기하는 무리들이 생겨나 그랄 왕은 이삭에게 떠나도록 종용했습니다. 이삭은 그랄 평지를 떠나 골짜기로 가서 장막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그랄 목자들이 자기네 땅에 있는 우물이니 자기들 것이라고 빼앗아갔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그랄 목자들이 또 와서 빼앗아갔습니다. 이삭은 또 다른 곳에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이삭은 일곱번이나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기본적으로 언약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어디서든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복을 내려주시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후덕한 여인을 아내로 얻었고 기도로 자식들도 생기고 농사지어 거부가 되고 우물을 파는 곳마다 물을 얻었습니다. 족장 시대에 가나안 땅에선 우물이 곧 생명의 근원이었습니다. 오아시스는 이미 불레셋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는터라 우물을 얻어야만 농사도 짓고 가축도 먹이며 살 수 있습니다.  수십 곳을 파도 우물 하나 얻기 어려운데 이삭은 파는 곳마다 우물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이삭이 형통하는 걸 보고 그랄 왕이 군대장관을 대동하고 와서 이삭에게 서로 해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자고 청했습니다. 당시는 그랄 아비멜렉의 세력이 더 강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걸 보고 훗날이 염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장성한 후엔 야곱이 중심인물로 등장하면서 노력의 이삭과 리브가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창35장 27절 이하에 이삭은 말년에 헤브론 지역 기럇아르바의 마므레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지역은 아모리족 마므레의 주거지로 아버지 아브라함이 마므레와 그의 형제인 에스골, 아넬과 동맹을 맺은 적이 있어 말년에 이삭은 그랄 지역을 떠나 헤브론에 머물다 1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삭은 한 평생동안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만나기 전에 아버지를 떠나 브엘 라해로이에 가서 살았습니다. 브엘 라해로이는 브엘세바보다 더 남쪽 지역입니다. 거기서 리브가를 맞이해 결혼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거주지를 옮겨야 했습니다. 이 때 이삭은 애굽으로 갈 생각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애굽으로는 가지 말라고 지시하여 그랄로 올라가 머문 것 같습니다. 그랄에 거하는 동안 이삭은 거부가 되었다고 나옵니다. 그러자 시기하는 무리들이 생겨 이삭은 그랄 평지에서 골짜기로 골짜기에서 브엘세바로 옮겼다가 말년은 헤브론으로 올라가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서 살든 하나님 나라 바라보며 예수 잘 믿고 교회 잘 섬기며 살면 그만이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는 가나안 땅이 중심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준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족장 시대는 가나안 땅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땅에 거하는 것이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고 그 땅에 살아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데서나 잘 먹고 잘 사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서 사는 게 중요합니다. 잠시 애굽에 내려가 살고 그랄에도 머물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은 가나안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대하는 무리들로 이삭이 그랄에 안주하지 못하고 결국 가나안 땅 헤브론으로 옮겨가게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인물을 연구하다보면 누구든 예외없이 그 마지막은 열조에게 돌아가 장사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지위가 얼마나 높게 올라갔느냐 그런 건 별 관심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그걸 추적합니다. 인생은 여러 과정을 거쳐갑니다. 학업과 취업, 연애와 결혼, 자녀출산과 양육, 일을 통한 사회적 성취 등 그 과정에선 그게 전부같습니다. 잘 안될 때는 인생이 무너지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정거장 같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못갔다고 실패한 게 아닙니다. 연인과 헤여졌다고 인생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 말고도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고 거기서 우리는 또 삶의 의미를 찾고 하나님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삭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아래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복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삭처럼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