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 교회

마태5:14-16

당분간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소경이 코끼리 만져보는 수준 밖에 안되는 건 아닌가 반성됩니다. 오늘은 교회가 처한 영적 현실을 돌아보고 교회가 왜 무력해져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교회 갱신을 연구하는 조지 바나의 책 중에 A frog in the kettle 이 있습니다. 개구리를 솥에 넣고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게 끓이면 온도가 올라가는데도 개구리는 피부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 삶아져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가 잘못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교회당 안에 갇혀 우리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해주는 것 같습니다.

Stanley Jones 선교재단 회장인 Reonardo Sweet 박사는 지금은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죽은 시대’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예수 믿어야 천국간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겁내고 예수 믿겠다고 할 사람들이 세상에 더 이상 없습니다. 교회가 정말 전도하기 원하면, 교회당 안에서 목사노릇하고 교인노릇하는 것을 잠시 그만 두고 길건너 교회 저쪽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가라고 충고합니다.

도시의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선교하는 ‘일깨우는 교회’의 창립자이며 미국내외에서 700개 이상의교회를 일으킨 교회증식협회 대표인 Neil Cole은 그의 책 Organic Church에서 “이 세상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싶다면 담배 연기 자욱한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영혼을 사랑하는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커피숍, 대학 캠퍼스, 직장, 가정, 주차장, 식당과 술집 등 우리의 삶이 있는 곳 어디서나 교회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영화 Matrix 다 알죠? 매트릭스는 기계에 의해 인간이 양육되는 22세기 말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액션/SF 영화입니다. 네오(Neo)라는 가명으로 해커로 취미 생활을 하던 평범한 회사원 앤더슨은 전설적인 해커 모피어스(Morpheus)를 찾아다니다 우연히 어떤 여자와 접촉합니다. 다음날 토머스는 회사에서 매트릭스를 유지시키는 요원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앤더슨은 전에 만났던 여자, 모피어스의 부하 트리니티를 통해 그가 찾던 해커 모피어스를 만나게 됩니다. 앤더슨은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지금은 22세기말이며 자신이 지금까지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에서 살아왔고 사람들이 이것을 모른체 거짓의 감옥에서 기계의 조종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앤더슨은 모피어스를 통해 자신이 메트릭스에 갇혀 조종받는 인류를 구원할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매트릭스 밖으로 빠져나와 인류를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영화 속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보는 것만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네오가 꿈 속에 있기 때문이랍니다. 모피어스는 조그만 은상자에서 알약 두개를 꺼냅니다. 파란색 알약과 빨간 알약. 빨간 약은 꿈에서 깨어나 진실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네오는 빨간 약을 삼키며 모험이 시작됩니다. 잠에서 깬 네오는 지금까지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에 속아 살아온 것을 발견합니다. 그가 사실로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이 진실을 가리는 가면 같은 것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거짓의 감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매트릭스(The Matrix),1999년) 영화 속엔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할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 왕국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우리 눈을 열어주는 빨간 알약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말씀이 바로 빨간 알약입니다. 성경의 빨간 알약을 제대로 먹는 사람은 영적 세계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릴 것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매트릭스 세계 속에 갇혀 하나님 나라의 진실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엔 마귀가 조종하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이런 사람들이 거듭남이 없이 밀려들어오면서 교회도 영적 시력을 잃고 하늘나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수천명의 목사님들이 Mel Gibson 주연의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개봉전에 관람했답니다. 그분들은 영화를 보고 이 영화가 수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게 될 것이라고 좋아했답니다.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습니다. 전세계적으로 6억달러 이상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미국 교회의 출석률은 조금도 늘지 않았답니다. 

Reggie McNeal은 The Present Future: Six Tough Questions for the Church에서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려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목회자들이 출석률을 높이려고 회중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동안 진짜 복음에 목마른 사람들은 교회 밖으로 꼴을 찾고 있는거죠. 교회는 소금 같아서 맛을 잃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는 본래 주어진 빛과 맛을 잃지 않고 버티기만 해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역교회 때문에 그 지역사회의 갈등이 해소되고 범죄율이 줄어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뉴스는 듣기 어렵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수천명이 출석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지역 사회에서 하나의 등불이 되어 자기 주위를 비춘다면 세상은 훨씬 밝아질 것입니다.

목회자 입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출석하는 교회와 멋진 교회당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멋진 건물이나 좌석을 가득체우고 있는 출석수로 좋은교회라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주님도 그러실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별로 영향력 없는 교회당 안의 교회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문화 속에 동화되어 관념적인 신앙을 가지고 주일 교회당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위험을 피하고 편하게 살려고 죄악과 투쟁하는 것을 회피하면서부터 이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신약성경의 모본을 따르지 않고 그 때 그 때 잔꾀를 낸 결과 본래 교회에 주어진 영적 능력을 잃고 세상에 자꾸 밀려나는 게 아닌가 반성됩니다.

교회가 잔치를 열어 놓고 즐기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숫자를 늘리는 재미를 본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루고 있습니다. 예배를 service라고 합니다. 문제가 있는 표현입니다. 요즘 예배는 service 받고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목사님이 코메디언보다 더 웃긴다고 인기를 얻어 부흥된 교회도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면 돈을 주겠다고 광고하는 교회도 있답니다. 웃찾사보다 재밌는 예배를 즐기는 관객이 더 많은 교회는 언젠가는 영적인 힘을 잃게 됩되고 교인들도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교회마다 교인수가 줄어드는 것과 이전의 이런 분위기와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선교사 가족이 휴식차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첫 주일 어느 대형교회를 찾았습니다. 교회는 조명과 음향시설을 점검하고 악기를 조율하느라 부산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선교사 두 자녀 중에 큰 아이가 “엄마 쇼가 열리나요?” 물었습니다. 엄마는 예배 준비 중이란다 대답했습니다. 어쩜 그 아이의 말이 맞을 지도 모릅니다.

멋진 시설과 장비를 갖춘 대형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퀄리티 높은 음악 속에 멋드러진 예배의식을 진행합니다. 그 가운데 참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새로운 차원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것을 즐기는 교인들은 정말 좋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주중에 세상 속에서 그들의 삶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어둠 속의 교회 예배는 전투에 참가하기 직전에 비장한 마음으로 전의를 다지는 전사들의 축제와 같은 측면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감동을 받고 영성이 고양되었다면 적진에 뛰어 들어 성령의 검을 휘둘러 원수마귀를 물리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 회중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충성심과 희생정신을 잃어버린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예배를 즐기는 것으로, 설교를 위로하는 말로 전락시킨 대가를 목회자들은 치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인들이 많은 교회도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일꾼들이 부족해서 곤란을 겪습니다. 불신자들을 배려한 구도자 중심의 예배를 기성 교인들까지 관객처럼 즐기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향해 “우리에게 와서 들어라”고 해도 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교회에 냉담합니다. 교회에 가서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맘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만, 목사에 실망해서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싫어서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불신자들을 교회로 데려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우리가 세상으로 들어가 그들과 어울리며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닐 콜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온다는 핑계로 교회로 끌고 오지 말고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라고 조언합니다. 저도 늘푸른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주중에 캠퍼스나 커피숍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교회를 생각했습니다. 셀목회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에도 몇 번 여러분들에게 캠퍼스나 카페에 전도소그룹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 깃발을 드는 사람이 나오길 기도하자고 강조했습니다. 교회당에 사람을 데려오는 것보다 여러분의 학교나 직장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는 일에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닐 콜 목사님은 이미 오래전에 이런 식으로 식당, 사무실, 가정, 대학캠퍼스, 고등학교 교내, 바닷가, 공원 커피샵, 라커룸 등지에서 모이는 교회를 만들었답니다. 그는 미국내 32개주와 해외 23개 국에서 700여개의 교회 네크웤을 구축했습니다. “모든 크리스쳔은 교회를 심는 일꾼, 모든 집은 교회, 모든 교회 건물은 훈련 센터” 이것이 그들의 표어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조언합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람들 삶 속으로 들어가라고. 교회는 관계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나야 한답니다.

예수님 덕분에 겨우 진흙탕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들어가라고?  안돼! 그렇습니다. 말이 안됩니다. 거룩한 성도가 담배연기 자욱한 술집에 가서 친구를 만난다는 건 말이 안되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로 알면 말이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 진흙탕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에 세리가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와 대우를 받았는지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세리는 사람들로부터 도둑놈, 죄인 취급받고 외면당했습니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세리를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가 친구가 되고 그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눴습니다. 그 결과 세리와 죄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본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전도방법이 여러분의 전도방법이 되길 바랍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손과 발과 눈과 입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지체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이라는 사실, 주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시다는 이 진리에 우리는 눈을 떠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얻고 또 그들을 교회로 불렀습니다.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에 들어가 사람들을 얻고 교회를 세우도록 파송된 사역자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Walter Moberly는 그의 책 The Crisis in the University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을 들고 대학 캠퍼스로 들어가 증거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당신이 믿는 것의 10분의 1만 진실이라도 당신은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열정을 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크리스쳔이 아닌 사람이 우리의 메시지를 듣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말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최근에 교우들이 전도에 대한 열심을 회복하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져 살아움직이는 신앙으로 바꿔지도록 눈물로 기도합시다.

주님이 선언하신 것처럼,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세상에는 음부의 권세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피해 교회당 안에 숨어 안전을 도모하면 사단은 안방까지 허물려고 할 것입니다. 교회는 숙명적으로 사단과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에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을 이용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친구가 되어 편하고 안락하게 부유하게 살려고 한다면 사단의 유혹에 걸려들 것입니다. 죽을 각오로 싸우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Peter Jackson은 영화 The Lord of Rings 에서 중간계를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반지의 제왕은 중간계의 몇몇 자유인들이 어마어마한 열세를 무릅쓰고 구름처럼 많은 적들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 영웅들의 대 서사시입니다. 중간계는 마법사, 요정, 난쟁이, 용, 오크, 고블린으로 가득찬 가상 세계입니다. 여기엔 전원에서 소박하게 사는 난장이 종족 호빗도 있습니다. 수 세기전에 이 세계의 사악하고 어두운 제왕 사우론은 자신의 사악한 힘을 모두 담아 반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 반지를 한 때 사라졌다가 프로도 베긴스라는 호빗의 수중에 흘러들어갑니다. 중간계의 영웅들은 사우론의 힘이 담긴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위험한 모험을 떠납니다.

반지의 제왕 2부에 보면 영웅들은 민첩하고 용감한 기병대로 유명한 국가 로한과 연합합니다. 그러자 사악한 고블린 군대가 로한의 백성을 모조리 말살하려고 몰려옵니다. 영웅들은 로한 왕 세오덴의 알현실에 모였습니다. 영웅들은 세오덴 왕에게 말을 타고 나가 싸우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왕은 전쟁 중에 백성들이 희생당할 것을 염려해서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전략을 선택합니다. 그후부터 영화속에서는 사람들이 악의 무리에게 공격당해 패퇴하고 물러나는 장면이 전개됩니다. 요새 안에서 방어하면 안전할 줄 알았지만 어느 새 성벽이 파괴되도 결국에는 적들이 작은 방 하나만 빼고 요새를 장악해버립니다.

그 때 용감한 전사 아라곤은 세오덴 왕에게 다시 조언합니다. ”저와 함께 말을 타고 나가 싸웁시다” 더 이상 뒤로 도망갈 곳도 없이 몰려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나가 싸운다고 이기리라는 희망도 없습니다. 세오덴 왕은 이제는 영광스런 죽음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소, 죽음과 영광을 위하여!”. 그러자 용사 아라곤은 “폐하의 백성을 위하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둘 다 말에 올라 정면으로 적을 맞으로 나갑니다. 전사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입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나오자 적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 순간 지원군이 도착하고 전투는 승리로 끝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교회가 직면하는 현실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 세상을 파괴하려고 사단의 세력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사단을 상대로 과감하게 진군해야 할 교회가 세상 구경에 잠시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적들이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는 뒤로 밀려나고 있는 형세입니다. 언젠가 사단의 세력이 완전히 파멸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과 달리 현실에서는 교회가 밀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건물, 프로그램, 크리스쳔 비즈니스 등에 신경쓰면서 사단과의 직접 전투에 방심하는 동안 교회는 사단에게 밀려나 주도권을 내주고 세상에서 도망쳐 교회당이라는 요새에 숨어 안전을 탐색하는 소심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적이 세상의 문화와 사회를 다 집어 삼키는데도 요새가 파괴되지 않는 것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십니까?

오늘 본문에 주님은 교회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어둠이라고 표현합니다. 세상 속의 교회는 곧 어둠 속에 교회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어둠은 교회의 빛이 얼마나 밝은가에 달려있습니다. 교회의 빛이 밝게 빛나면 세상의 어둠은 물러갈 것입니다. 교회가 빛을 잃으면 세상은 물론 교회도 어둠 속에 빠져 방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교회 등불을 산 위에 밝혀 온 동네를 비추게 하는 것이 교회도 살고 세상도 살리는 길입니다. 이것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 말인지 생각하며 한 주를 보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