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의 만남

8/9/13 금요예배 - 강병완 목자

(요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을 연구하고 문자 그대로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만, 그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종교생활이라는 덫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yet you refuse to come to me to have life”
생명은 예수님을 만나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은 어디에 있는것일까요?

바리새인들은 성경은 많이 봤지만 그들의 눈 앞에서 동시대를 살았던 예수님을 몰라봤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나요? 교회도 가고 셀모임도 가고 성경도 펴보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고백은 자신있게 하지 못하시나요? 혹시 이미 만난적이 있더라도 매일 주님과 동행한다는 표현은 추상적으로 느껴지시나요?

요한복음이 쓰여진 목적은 바로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구원" 과 “생명"은 어떤 고차원적인 “개념" 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체가 생명이고 구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다”는 고백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요한복음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4복음서 중 마태/마가/누가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요 1:1,2,14) 요한복음 1장을 통해 만나보겠습니다.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2,14 절을 통해 우리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인격"이고 살아계신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6절: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8절: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님이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심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어두웠던 세상을 밝히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9절 말씀처럼 “각 사람"에게 찾아오신 것 이기도 합니다. 벌써 7년정도 지난것 같은데요, 제가 처음 주님앞에 인격적으로 죄인임을 깨달았을때 바로 “빛 되신 주"라는 찬양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는것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신 빛.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하신 그 빛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비추길 원합니다.

그리고 4절 말씀처럼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이 “생명"이라는 단어가 제 삶에 새롭게 다가왔는데요,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이 “생명"으로 인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너무 많은 고민, 실패, 좌절을 하고 또 어쩌면 아예 망각하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반댓말은 “죽음" 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쉽고 어렵고 가볍고 무겁고를 떠나서 생명이냐 죽음이냐 차원의 문제 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 과 “생명" 보다 좀 더 나은 무언가를 고민하고 기대하고 있다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기 원합니다.

(요 1:35-42) 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침례요한은 자기 제자들 중 두 명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본 요한은
36절: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절: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두 제자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초청하십니다. 와서 보라.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밤을 보냅니다. 다음날 두 사람 중 하나인 안드레는
40절: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절: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예수님은 그 두 제자들을 초청하셨고 함께 삶을 나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방법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로 불러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생활을 통해 경험적으로 알아가는 것. 개인적인 예를 들자면, 대학교 1학년때 늘푸른교회를 처음 나오게 됐습니다. 교회 가족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수님의 몸을 경험했습니다. 겨울 수양회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수 밖에 없었고, 시애틀로 돌아오자마자 친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고.

본문에서 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시몬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42절: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님은 시몬을 보시고 베드로/반석 같은 사람이 될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를 보고 농장이나 과수원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빛으로 찾아 오셔서 주님과의 관계로 초정하셨습니다. 구원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 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때는 적당히 신앙생활 아닌 신앙생활을 하라고 초청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늘푸른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