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킵시다.

잠언4:23 / 마음을 지킵시다. 

인생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고들 합니다. 특히 잠언에 마음과 관련된 교훈이 많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은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음 상태에 따라서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마음이 중요한 이유는 마음은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전쟁터란 보통 생사가 갈리는 곳 아닙니까? 

마음 속의 전쟁이 당장 생사를 결정하지는 않더라도 오늘 하루의 행복은 좌우합니다. 여러분 중에 아침부터 기분 상한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특히 마음을 잘 지켜서 남은 하루 즐겁게 지내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장 삶의 조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마음을 정직하게, 혹은 너그럽고 단순하게 가지면  하나님과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속을 모르겠다는 사람보다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마음은 창고와 같습니다. 창고는 보물을 넣어두면 보석창고가 되고 폐기물를 넣어두면 쓰레기장이 됩니다. 마음도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서 천국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증오와 원한을 담아 두면 악마처럼 되고 사랑과 용서를 담고 살면 천사처럼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 쉽게 짜증이 나서 말꼬리 잡고 다투기 쉬운 때이니 마음을 잘 지켜서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은 세상과 육신의 욕망, 인간의 영과 성령, 그리고 마귀와 악령까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6장 12절을 보면,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는 악한 영들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으로 나옵니다. 사람의 마음은 외부 환경은 물론 우리의 영과 성령, 심지어 악한 영들의 영향도 받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지키려면 마음에 영향을 주는 영의 작용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 23절에서 바울은 “너희 온 영(spirit)과 혼(soul)과 몸(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엔 영혼 한 단어로 표현된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42편 2절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이 구절에 영혼이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한글로 번역할 때 우리 언어 습관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이 히브리어 성경엔 혼을 의미하는 ’ 네페쉬’가 사용되었고 NIV 영어성경에도  soul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영은 ‘루아흐’라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인간이 영적 존재가 된 것은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하나님이 숨이 불어 넣어졌기 때문입니다. 창세기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되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생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혼을 의미하는 네페쉬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이부분이 NIV에는 a living being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KJV에는 a living soul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코에 하나님이 숨이 들어가 살아 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혼은 지,정,의 인격체를 의미합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에서 인간이 죄로 인해 영이 죽었다고 해서 영이 죽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엡2장 1절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이 육체처럼 죽었다 살았다 이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죽었다, 살았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회복되었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로 죽은 사람의 영도 존재 자체가 소멸된 게 아니라 신자든 불신자든 인간은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영은 영적으로 죽음 상태에 있을때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영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은 다른 사람의 영과 연결될 수 있고, 이런 연유로 점과 강신술에 영향을 받으며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양심과 직관은 인간의 영에서 마음으로 들려오는 소리랍니다. 양심은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혹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불신자의 양심의 소리와 예수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소리는 하나님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많이 다릅니다. 로마서1장 21절 이하를 보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 생각이 허망해져서 지각없는 마음이 어두워지고 부끄러운 욕망을 추구하며 욕정에 빠져 살고 악행과 탐욕과 분쟁과 시기를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오만 불손하고 악을 도모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신의도 없고 무자비한 자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양심이 옳바르게 작동한다면 이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들의 영은 하나님께 대해 죽은 상태로 마귀와 육신의 욕망에만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6장 16절은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든지 순종하게 되면 그 순종함을 받는 그 사람의 종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조폭세계를 생각해봅시다. 협박에 끌려 가든지 자원해서 가입하든지 형님! 형님! 하면서 굴복하고 똘마니 노릇하면 어떻게 됩니까? 어느 순간 굴복하는 게 체질이 되고 그 형님은 당연히 아랫것들을 맘대로 부리게 됩니다. 좋게 말하면 순종이 권위를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고 죄가 권세를 가지고 죄 짓는 사람을 지배하여 사망으로 끌고 갈 것이고 반대로 의에 순종하면 의의 종, 곧 주님이 나에 대한 권세를 행사하여 생명의 길로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만 할 게 아니라 주님 말씀에 순종해야 주님의 권위와 권세가 나에게 나타납니다. 자꾸 순종하다보면 어느 샌가 주님말씀이 나를 지배하고 나는 주님의 말씀을 어길 생각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알았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지속적으로 순종의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확실하게 지배하시게 됩니다. 항상 거역하는 자에겐 마치 주님이 무기력하신 것처럼 별로 영향력을 발휘하실 수 없습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성령과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 영의 영향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감정이나 욕망에 끌려가면 내가 마음을 지키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마음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 요소는 영적 차원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생각과 감정으로 나타납니다.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할 때 모든 감정을 다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굶주린 고아를 볼 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도와줍니다. 그 때 불쌍하게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입니다. 이런 감정은 선을 베풀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찬양하며 감동받고 눈물을 흘릴 때 역시 감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감사하며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좋은 감정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증오와 같은 악한 감정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악한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과 악한 감정은 육신의 욕망과 악령으로부터 나옵니다. 앞서 순종하면 순종을 받는 자가 주인처럼 나를 지배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악한 생각과 악한 감정이 생길 때 순종하면 악한 생각과 악한 감정이 나를 지배합니다. 악한 생각과 악한 감정의 배후에 악령이 있기 때문에 그 영향도 받게 됩니다. 이런 이치를 생각하며 여러분이 지금 어떤 생각, 어떤 감정에 붙잡혀 있는 지 돌아보고 그것이 주님 말씀에 합당한 것인지 분별해서 주님 말씀과 반대되는 것이면 온 힘을 다해 그 생각과 감정을 거부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