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주길 바라느냐?

마가10:46-52

오늘은 구체적인 간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께 뭔가 달라고 하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분명한 대상과 목표를 정해놓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목회한지 얼마 안 되는 아주 궁색한 때 였답니다. 결혼 전이라 조그만 방에 책상은 물론 의자와 침대도 없이 마룻바닥에 그냥 먹고 자며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은혜가 넘쳐 몇 십 리 씩 걸어 다니며 심방하고 전도할 때 였는데,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절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게 뭐냐면, 요한 복음 14장 14절인데,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조 전도사님은 요한복음1장 12절에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만 왕의 왕, 만주의 주 되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는데 어째서 제게는 책상도 없고 의자도 없고 침대도 없습니까? 더구나 자전거 하나 없이 매일 몇 십 리씩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녀야 합니까? 적어도 조그만 책상이나 앉을 만한 의자, 심방할 때 타고 다닐 자전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에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주십시오”(p.26)

조 전도사님은 그 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한 물건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 세 달, 네 달, 무려 여섯 달이 지나도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에 조 전도사님이 너무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은 먹을 것도 없어서 배고프고 지쳐서 하나님께 하염없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는 여러 달 전부터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놓고 기도했는데 아직 하나도 응답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가난한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주님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저 자신도 체험하지 못한 믿음이나 기도응답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이렇게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 지경인데 저들에게 어떻게 인생이 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저는 지금 너무나 낙심되어서 아무 의욕도 없습니다. 저의 이번 기도가 왜 응답되지 않는지를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시간이 지나면 다 응답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래 전에 드린 기도가 언제 어떻게 응답되는지를 지금 당장 분명히 확신할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합니다. 만일 제가 죽고 난 다음에 응답하시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왕 응답하시려면 지금 저의 형편을 보시고 제발 좀 빨리 응답해 주시옵소서”

눈물을 펑펑흘리며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 때 성령의 음성이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나는 오래 전에 너의 기도를 들었다” 그러자 조 목사님이 “그러면 제 책상과 의자, 자전거는 다 어디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비롯한 내 자녀들이 온갖 부탁과 요구를 하지만 그들은 내가 응답하기에 합당치 않은 막연한 말로 달라고만 하는구나. 너도 마찬가지이다. 너는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 종류가 수십 종이 되는 걸 모르느냐? 네가 언제 내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에 대한 분명한 종류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있느냐? 단지 막연하게 달라고만 하지 않았느냐?”

조 전도사님은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그 후부터 기도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책상 종류는 필리핀제 마호가니에 크기도 이 정도,  의자는 철로 테를 두른 것에 바퀴가 달려 책상 주위를 밀고 다닐 수 있는 것으로, 자전거는 튼튼한 게 좋으니 기어가 달린 미국제를 달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늦은 밤에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기도회를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는데 어제 밤과는 달리 왠지 가슴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전날 저녁엔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믿음이 있었는데 자고 나니 그 믿음은 새 처럼 날아가버리고 텅 빈 마룻바닥에 내던져진 느낌 밖에 남은 게 없었습니다.  한 순간 믿음으로 충만해지는 것과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믿음을 간직하고 가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 겁니다.

공허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이리 저리 찾던 중에 로마서 4장 17절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이 구절을 보면서 조 전도사님은 생각하기를 “그렇다 나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다. 벌써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새벽기도회 인도하러 천막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 17절로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필리핀제 마호가니 책상과 바퀴 달린 쇠태 두른 의자와 기어 달린 미제 자전거를 제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다 받았습니다.” 교인들이 깜짝 놀라 어리둥절 했습니다. 교인들도 다 어렵긴 마찬가지라 누가 그걸 사드릴 사람도 없었고, 전도사님 형편도 어떤지 다 아는지라 그걸 다 받았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던 겁니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는데 세 명의 청년들이 호기심에 찬 얼굴로 따라왔습니다. “전도사님, 전도사님이 자랑하신 자전거와 책상 좀 보여주세요” 그 말에 전도사님이 무척 당황했습니다. 믿음을 고백한 것 뿐인데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괜히 전도사가 물건 욕심에 거짓말 한 것으로 오해하면 천막 개척교회가 잘 될 리 없습니다. 고민스러워 마음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여 처음부터 이번 일은 제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한 건 당신 탓입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단지 순종하여 이미 응답 받은 것처럼 말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곤란한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설명해야 됩니까? 항상 도와 주셨으니 제발 지금도 좀 도와 주세요” 그러자 성령께서 지혜로운 한 생각을 떠오르게 했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모두 내 방으로 가봅시다”

방에 따라 들어온 두 청년은 자전거랑 책상이랑 의자랑 찾느라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들에게 조 전도사는 엉뚱한 질문을 했습니다. “ 박 형제, 내 질문에 답하면 그 물건을 보여줄께. 박 형제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얼마 동안 어머니 뱃속에 있었지?” 그러자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 청년은 “음 아홉달요” / “그러면 아홉달 동안 거기서 뭐하고 있었을까?” / “그야 자라고 있었죠/ “그러나 아무도 너를 보지 못했잖니?”/ “어머니 뱃속에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거죠”/ “맞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보여도 여러분들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까지 분명히 어머니 뱃속에 있어. 지금 눈에 안보여도 자전거랑 책상이랑 의자가 믿음으로 내 마음 속에 자라고 있어. 이제 때가 되면 보게 될 거야”

이 말을 듣고 세 청년은 배를 잡고 뒹굴며 웃었답니다. “ 전도사님 아무리 그렇지만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임신한 남자는 처음 봅니다.” 그들은 방을 뛰어나간 후 온 마을에 “남자 전도사님이 의자, 책상, 자전거를 임신했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그 일 후로 동네 꼬마들은 전도사님 배를 만지며 얼마나 자랐는지 보자고 놀려댔답니다. 이렇게 웃음꺼리가 됐지만 조전도사는 기 죽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기도한 물건들이 믿음으로 자라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속 기도하며 이미 받은 줄로 알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을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마호가니 책상에 의자는 일본 미쯔비시에서 만든 바퀴달린 것, 그리고 자전거는 미국 선교사님 아들이 쓰던 것이지만 기어 달린 튼튼한 것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했기에 그게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 기도응답이란 걸 알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 전도사님은 놀라운 진리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 전까진 막연한 말로 기도했는데 그 후부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소경으로 거지 생활을 하던 디매오의 아들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군중들을 헤치고 나와 도와 달라고 요청하여 눈을 뜨게 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경: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군중: “이런 더러운 거지아냐? 시끄러 조용히 해!”
소경:(더욱 큰 소리로)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예수: “웬 소란이냐?”
제자1: “어떤 소경이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저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 “가서 불러 오너라”
제자2: (소경에게 달려가) “안심하고 일어나요. 당신을 가까이 오라고 부르셨소”
소경: (겉옷을 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로 나간다)
예수: “네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소경: “선생님,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소경: (보게 되어 좋아라 춤추며 예수를 따라감)

예수님은 이 소경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뭘 해주길 바라는 지 물었습니다. 소경은 보기를 원한다고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소경이 보게 되었습니다. 소경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눈 뜨는 것이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기도할 때 막연하게 “도와주세요. 믿습니다. 제가 필요한 거 아시지요” 이러지만 말고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한 기도제목, 구체적인 목표, 자세한 얻기 원하는 것을 가지고 주님께 달라고 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남자친구나 여자 친구 달라고 하면 도대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데 좋다는 걸 어떻게 판별합니까? 이런 식으로 기도하면 하나님 보시기엔 좋은 사람이라 붙여줘도 자기 맘에 안 들어 거절하는 경우도 생길 겁니다. 그러니 키는 몇 cm, 학력은 어느 정도, 성격, 취미, 가정배경, 직장, 뭐 이런 걸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저런 사람을 원한다고 해야 그런 사람이 주위에 나타나면 그게 기도응답인 줄 알고 붙잡을 게 아닙니까? 다른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 일겁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수님이 무엇을 해주길 바랍니까?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은 주님이 응답하시기에 충분할 만큼 목표와 대상을 구체화시켜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주님께 간청할 목표와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은 먼저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뭔지 기도제목과 대상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그 순간 합당하다면 임신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눈에 안보여도 임신기간을 거쳐 출산할 때까지 믿음으로 견디길 바랍니다. 앞으로 1년 내에 기도응답의 간증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