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

로마서11:34-36

오늘부터 3월 한달동안 기독교세계관을 주제로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오늘은 기독교세계관의 기본 틀이 되는 자연과 초자연적 영적 두 세계의 존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독교는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주장을 진리로 믿는 사람도 있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안 믿어지는 데 억지로 믿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저는 기독교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성경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설명하려고 합니다

1. 세계관(世界觀)
기독교 세계관을 말하기 전에 ‘세계관’이 뭔지 생각해봅시다. James Sire는 “세계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무엇으로 되어 있나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가정들”을 세계관( world-view)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제가 볼 때 세계관이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결정해주는 신념체계입니다. 사람마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처럼 이 세상에는 여러 세계관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 나름대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립적인 것은 없습니다. 여러 세계관들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나름대로 해답을 주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궁극적 실재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기독교인과 무신론자의 생각이 다릅니다.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신의 존재를 믿으면 유신론적 세계관,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무신론적 세계관인데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과 인간을 서로 다르게 이해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세상을 다스린다고 믿습니다. 반면에 무신론자들은 그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최정점에 서 있는 존재로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이해합니다.

세계관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해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고 그 해석을 내 삶에 적용하며 살게 만듭니다. 사람의 인격, 사상, 가치관 형성은 다 세계관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계관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개인적 선택, 결정, 인생의 방향에 영향을 줍니다. 세계관은 가정, 직업, 대인관계, 생활 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관은 우리의 미래까지 결정하게 됩니다.

세계관이 다른 부부가 얼마나 조화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아내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을 갖고 살기 원합니다. 주일이면 교회나가 예배드리며 위안을 얻고 행복해합니다. 반면에 남편은 신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일요일엔 산과 들로 놀러다니거나 집에서 TV나 오락을 즐기며 한잔하면서 피로를 풀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안믿으면서 아내 따라 교회 나오는 남편들은 정말 대단한 겁니다.

이처럼 생활방식의 차이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무신론적 자연주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서 갈등없이 행복하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종교는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하자 그럴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 부부는 정신적 세계, 영적 세계에서는 남보다 못한 관계 속에 살아야 할 겁니다.

2. 기독교 세계관
지금부터는 기독교 세계관의 특징 몇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첫번째 특징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고 다스린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성경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창세기1장과 2장을 보면, 하나님은 6일 동안 1.빛(light), 2.궁창(firmament>expanse), 3.바다,땅,식물, 4.해와 달과 별, 5.조류와 어류, 6.동물과 사람 순서로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길레 인간과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가 궁금할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스스로 알아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논리적으로나 포함관계를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창조주는 피조물보다 먼저 존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풀어보면, 태초에 즉 창조전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만든 분과 피조물 중에 누가 큽니까? 당연히 만든 분이죠.

하나님은 누가 만든 게 아니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건축공사에 동원되어 고통을 당할 때 고통중에 하나님께 부르짓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킬 생각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겠다는 하나님께 변명하다가 백성들이 물으면 하나님 이름을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야훼) 고 대답해주셨습니다.

두번째 특징은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기 전에 어디 계셨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면 이 세상과 인간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상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HEAVEN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그 다음 인간이 거하는 땅과 하늘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 하늘은 SKY입니다. 그런데 성경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계시록12장 7절부터 12절을 보면, “7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2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이 구절을 영어 성경으로 읽어보면 뜻이 더 분명합니다. 7절에 “하늘에”는 in heaven으로 되어 있고,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에서 ‘사자들’은 angel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곳이 한 군데 더 있는데 12절에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에서 한글성경은 단순히 하늘로 되어 있지만 이 단어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엔 heavens and you who dwell in them 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무슨 차이냐면 지금 우리가 보는 sky하늘 말고도 그 위에 heaves 하늘이 최소한 둘 이상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기록대로라면 우리 눈에 보이는 sky하늘 외에도 하나님과 사탄이 거하는 영적 세계인 하늘들(heavens/ expance)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정확히 몇 층으로 구성되었는지 모르지만, 성경 여러곳에 하늘과 하늘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신10:14;왕상8:27;시68:33). 이 구절들에서 하늘은 우리가 보는 물질세계의 하늘이고 하늘들은 영적 세계로 사단이 떨어진 공중(expanse)이 있고 그 위에 heaves하늘들이 있는데 최상위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꼭 맞는 말이 아닐지 모르지만, 바울 사도도 고린도후서12장 2절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고 고백한 것을 참고할 때 영적 세계의 하늘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3. 사단과 악령의 세계
영적 세계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부리는 천사들, 그리고 사단과 사단을 따르는 악령들이 있습니다. 사단에 대해서는 성경 여기 저기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그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단과 관련된 성경구절에 대한 전통적인 성경해석에 근거해 사단의 정체를 설명하겠습니다.

계시록12장 9절을 다시한 번 봅시다. 9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 여기서 사탄은 옛 뱀, 또 마귀로도 불립니다. 마귀는 헬라어 Διαβολος를 한자어로 번역한 것인데 영어로는 The Devil(악한귀신)입니다. 마귀를 옛 뱀으로 부른 것은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이브를 유혹한 뱀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탄이 뱀 속에 들어가 이브를 유혹했습니다. 그 후로 뱀은 사탄과 연관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미가엘 천사부대 용 악령부대가 싸웠습니다. 미가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장이고 ‘용’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는 사탄(온천하는 꾀는자)이었습니다. 사탄이라는 말은 ‘온천하는 꾀는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하나님을 대적한 천사장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마귀와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패하여 heaven에서 땅으로 내쫓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즉 세상에 활동한다는 말이지만 실제로 사탄은 영적 존재라 공중 즉 중간영적세계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을 따르는 타락한 천사들 즉 귀신들이 이 땅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천사들도 이 땅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천사나 귀신들은 모두 영적 존재이기 보통은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다가 영안이 열리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럼 하늘의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봅시다. 이사야14장 12절부터 14절을 보면,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얻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여기에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벨론왕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그런데 230년에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계명성, 즉 새벽에 빛나는 별, 라틴어로는 Lucifer인데, 이것을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10장 18절,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어울려 사탄을 묘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한 이유는 13,14절에 묘사된 것처럼,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마음, 즉 교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없다는 사람들도 사는 걸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아무것도 없다고 그래 놓고도 제사는 꼭지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으면 그만인데 자손들만 귀찮게 뭐하러 제사는 지내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믿지 않으면서 죽게 생기면 하나님도 무심하다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에게 무슨 마음이 있다고 그런답니까? 차를 샀다고 북어 대가리 올려놓고 고사지내는 사람도 봤습니다. 심지어 영화감독과 배우들도 촬영시작하기 전에 대박나게 해달라고 고사지낸다니 왜들 그럽니까? 뭔가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면 그게 바로 영적 세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무신론적 자연주의 세계관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하나님의 창조를 주장하고,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초자연적 영적 세계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과 동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 다음 sky 하늘을 넘어 공중에는 사탄과 귀신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최상층 하늘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부리는 천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들은 세 영역을 모두 넘나들며 활동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거하는 하늘은 침범하지 못하지만 인간이 거하는 세계는 넘나들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둘로 나뉩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다시 말해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연세계 밖에 보지 못하지만, 성령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 자연세계는 물론 영적인 세계 즉 하나님세계와 마귀의 세계를 다 경험합니다.

내가 보지 못하고 모른다고 없다고 해선 안됩니다. 모른다고 해야지 왜 없다고 합니까? 보지 못하면 없는 겁니까? 전자공학도들도 생각해보세요. 요즘 휴대폰 세계는 거의 마술의 경지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전화끼리 툭치면 명암이나 사진이 교환됩니다. 이게 다 전자파를 이용해서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전자파가 보입니까? 제가 안보인다고 없다고 우기면 속으로 목사님 정말 무식하네요 그럴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왜 하나님은 안보인다고 없다고 합니까? 성령과 교통하며 하나님을 믿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고 영적 세계가 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무조건 없다고만 하지 말고 이치적으로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기독교적 인간관과 구원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