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역은 모험이다

사도행전3:1-10

 지난 주에 하나님께서 믿는자에게 주신 4가지 권능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며 예수 믿는 사람에게 사죄를 선포하고 축복하는 권세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이 이 사실을 믿는다면 이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용하지 않으면 차의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은 치유사역에서 알아야 할  실제적인 교훈 4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치유사역은 단지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얻도록 인도하는 전인적인 목회사역입니다. 치유사역자들이 고백하기를 처음 치유를 위해 기도했을 때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치유를 위한 기도를 포기하고 싶은 좌절감과 두려움에 빠졌다고 합니다. 치유사역을 위해서는 이 초기 단계의 좌절감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치유를 위한 기도는 육체적 질병의 치유가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전인격적인 목회활동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2장에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붑벼 예수님께 접근하기 어렵자 지붕을 뜯어내고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고 중풍병자에겐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2:5). 이 경우 주님의 뜻은 단지 병을 고쳐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영혼이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단지 육신의 병만 고치고 싶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몸은 물론 마음과 영혼까지 고쳐주신 것입니다.
치유사역은 전인적인 목회의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육체의 질병이 낫기만을 구하지만,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물어야 합니다. 경험이 많은 사역자들은 지식의 말씀은사나 직관적으로 그 사람에게 질병과 관련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육체의 질병만 고쳐주실 때도 있지만 병낫기를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상처와 영혼의 죄를 고쳐주시기도 합니다.
 수족 냉증을 호소하며 기도를 부탁한 어떤 여인의 경우는 몇 차례 기도받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해소되고 자신을 용납하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만일 이 여인이 전처럼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분노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그런 증세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1년 가량 목구멍에 덩어리 같은 게 생겨 고통받던 어떤 사모님은 어떤 사람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성령께서 치유사역자를 통해 그것을 일깨워주자 울음을 터뜨리며 회개하자 증상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런 예화에서 보는 것처럼 치유사역은 단지 육체의 질병, 어떤 증상이 소멸되기만 바랄 게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그러기 단지 병낫기를 바라는 기도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도받기 원하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며 성령께서 뭔가 깨닫게 해주시는 게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한번 기도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경우는 한 번 더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과 우리가 구하는 것이 다를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지 병이 낫지 않았다고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병을 고쳐주시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뭔가 다른 일을 하시려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체의 병이 낫지 않았지만 내적 치유 즉,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영혼의 죄악을 회개하거나 하나님과 사람과 관계가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하실지는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둘째로 치유사역자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험을 해야합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옮겨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는 믿으면서 귀신들린 사람을 보고 겁내며 도망가면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귀신을 대적하고 아픈 사람을 붙잡고 기도해야 처음엔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지 모르지만, 귀신이 도망가고 병이 낫게 되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체험하고 나면 전보다 믿음이 더욱 커질 것 아닙니까?
 골리앗을 상대로 물리친 다윗을 생각해봅시다. 사무엘상17장에 나오는데, 사울왕 때 불레셋이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수를 앞세우고 이스라엘과 대결하며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사들은 거인 골리앗을 보고 겁에 질려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사울왕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고 했지만, 이스라엘의 장수든 병사든 누구도 골리앗을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양치기였던 다윗이 자원해 전쟁터에 나가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다윗의 용기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곰이나 사자가 양을 잡아 먹으려고 달려들 때 다윗이 곰과 사자를 상대로 싸워 물리쳤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양치기로서 체험이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 믿음이 골리앗 앞에 나서게 만든 것입니다.
 믿음의 행동은 모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달려들 때 무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가만 있었다면 저절로 갚절의 이익을 남길 수 있었겠습니까?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사업하고 투자해서 이득을 남긴 것이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든 어딘가에 투자하든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모험을 한 것입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모험도 하지 않았고 얻은 것도 없었습니다.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믿음의 모험입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다면 어떻게 하나?” 이런생각도 들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당혹스럽고 또 실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치유사역을 하려면 이런 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대개 치유 사역자들이 초기 단계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당혹스럽고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실패와 좌절감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축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세요.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병고치는 능력을 받았고 또 주님과 함께 하면서 숫한 병자들이 낫는 것을 봤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복음서를 통해서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믿는 것과 앉은뱅이를 보고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에게 병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오다가 불구자를 보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쉽게 말하진 못합니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모험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모험을 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로 경험적으로 볼 때 기도를 받는 모든 사람이 낫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병이 낫도록 기도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솔직히 왜 그런지 알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가장 많은 사람들을 낫게 한 목사님조차 낫은 사람보다 낫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치유사역자는 아픈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치유해주실 것처럼 약속하거나 또 암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치유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격려할 필요는 있지만 우리가 구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하는 게 좋습니다. 기도해주면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역사를 하시는지 지켜봅시다”라고 말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치유사역에서 종종 범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아픈 당사자의 믿음을 너무 강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치유에서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하인의 병을 고쳐주실 것을 간구하던 백부장에게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마8:13)라고 말씀하시자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병낫기를 기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치유와 믿음의 관계를 공식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거의 믿음이 없고, 기도받는 것조차 꺼려하던 사람이 낫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데도 낫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병낫는 여부가 그 사람의 믿음에 달려있는 것처럼 말하면 환자에게 부담만 주게 됩니다.
 안나실 목자가 허리가 아프게 되자 솔직히 치유에 대한 설교를 하는데 부담이 느껴졌습니다. 주님께서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고 설교하면서 아내가 아픈 것도 낫게 해주지 못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게 아닙니까? 그래서 치유 설교를 나중에 하고 다른 내용으로 설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냥 하길 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든 결과를 주님께 맡기고 치유에 관해 다음주에도 한번 더 할 겁니다. 아마 안나실 목자도 치유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부담을 좀 느낄 겁니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뭔가 주님 뜻이 있을 것이고 때가 되면 알게 될 겁니다.
 가끔 치유 은사집회에 참석해보면 강사들이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고쳐주실 것처럼 강조하면서 믿지 않기 때문에 낫지 않는것처럼 느껴지게 말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믿도록 강조하려고 그러는 걸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치유받지 못하고 실망해서 믿음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건 아닌가 염려됩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치유해 주시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하는게 정직한 자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에 좌우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치유되고 어떤 사람은 그냥 놔두시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사자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거나 사역자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같은 능력을 가진 목사님이 기도해서 어떤 분은 낫고 어떤 분은 더 간절히 기도해도 낫지 않잖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기도하고 결과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줄 사람에게 은혜주시고 고쳐줄 사람에게 치유의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보면 수 많은 환자를 고쳐주셨지만 모든 환자를 고쳐주신 것은 아닙니다. 베데스다 못가엔 병을 고쳐보려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예수님이 다가가서 병을 고쳐준 사람은 오직 38년된 불구자였습니다(요5:3,5). 저는 왜 예수님께서 거기 모든 사람을 다 고쳐주지 않고 이 환자 한 사람만 고쳐주신 것인지 의문입니다. 거기 모든 환자를 고쳐주시는 게 사랑의 관점에서나 형평성으로나 선교적 차원에서 볼 때 더 좋지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른 환자에게도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다면 그들 모두 “주여 낫기 원합니다”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날 거기선 오직 한 사람에게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모든 환자에게 치유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넷째로 치유사역자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지, 누구에게 기도를 해줘야 할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의 지시를 받는 길 밖에 없습니다. 물론 기도받기 원하는 사람에게 모두 기도해줘야 하겠지만, 사역자 입장에서 하나님이 치유해주기 원하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래서 치유사역자는 평소에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26절에서 “아버지께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한다”고 하셨고, 28절에선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께서 기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죠?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보면서 사역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면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뭔지 알려줘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 분이 너희에게(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16장 13절에 보면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해주실 것인데, 성령께서도 자기 맘대로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7절에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의화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쉽게 말해 성령받지 못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지만, 성령받은 사람은 성령께서 미리 다 알려준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음성으로 치유를 위해 기도해줄 사람이 누군지 알게 해주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길 원하는 사람에 대해서 평온한 느낌이 들게 해주셨답니다. 그분은 느낌을 보고 판단하는 거죠. 예를 들어 비행기 안에서 목발을 짚고 다가온 남자가 있었는데 챨스 크레프트가 하나님께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할까요? 여쭈어 보니 “그렇다”고 대답하는 음성을 들은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어떤 목사님은 마음 속에 떠로는 이미지, 즉 심상을 보면서 성령께서 오늘 어떤 환자를 고쳐주실지 알았다고 합니다. 신기하죠? 또 누굴 위해 기도할 것인가 분별하는데 당사자가 기꺼이 기도를 받으려고 하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치유나 귀신축출을 위해 기도사역을 할 때는 중보기도사역팀을 만들어 운영하는게 좋다고 합니다.우리도 치유와 귀신을 대적하는 중보기도사역팀을 구성할 계획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고 믿으면서 기도로 병고침 받은 체험이 있는 사람들이 사역팀에 합류하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은 김영자 권사님이 팀장을 맡고 김재범형제와 이지은 자매가 합류해서 안나실 목자가 낫도록 기도하면서 안나실 목자가 병고침받는 체험을 하면 또 합류면 좋을 것입니다. 제가 다 몰라서 그러니 혹시 병고침받은 체험과 믿음이 있는 분은 자원하기 바랍니다. 저도 물론 기도받기 원하는 교우들이 있으면 예배후에 안수기도 해주겠지만, 치유사역팀들은 아픈 교우들을 위해 병낫도록 수시로 기도해주기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귀신이 정체를 드러내면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쫓아내길 바랍니다.
(아픈 분들을 위한 기도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