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한 삶

누가복음12:15

오늘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검소한 삶(Simple Life)’를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얻은 사람은 새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에겐 어떤 삶이 적당하겠습니까? 그저 옛날처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도 괜찮겠습니까? 아니면 달라져야 합니까? 여러분이 목욕한 후 더러운 옷을 그냥 다시 입겠습니까? 깨끗한 새 옷을 꺼내 입겠습니까? 당연히 기분좋게 깨끗한 옷으로 바꿔 입을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의 기초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인간도 세상 만물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인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을 청지기(manager, steward)라고 합니다. 청지기는 양반집에서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며 집안 일을 보던 사람이었습니다. 청지기로 사는 사람은 자기 행동에 대해 주인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청지기가 일을 그만 둘때 주인과 결산하는 것처럼 청지기 인생 또한 세상을 떠날 때 결산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돈 많이 버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내용을 잘 살펴보면, 시험잘보고 좋은 직장 얻어 좀 더 많은 연봉을 받게 해달라는 그런 취지의 기도가 적잖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재물을 많이 모은 것에 대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고 갑시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주님이 부자를 칭찬했다는 이야기를 성경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일에 쓸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것까지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님보다 재물을 점점 더 의지하여 거짓 평안에 빠지고, 궁핍한 자들의 고통을 외면해 주님을 배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 각오를 해야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 6잘 18절에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사셨습니다.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어 자신의 가난으로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해주셨습니다(고후8:9). 바울도 예수님을 본받아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조금만 더 가난해질 각오를 하면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부요하게 될 것입니다.

오순절 이후 출현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나눔은 감동적입니다. 그들은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행4:32)고 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희생적인 나눔을 실천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교회가 시작될 때 성령충만한 제자들은 자기 소유를 팔아서 어려운 교인들과 나눔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성경 문맥을 보면 누가 시킨게 아니라 은혜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궁핍한 교우들과 재물을 나눠쓰는 것은 성령충만한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특징입니다. 성령충만한 교우들은 방언이나 예언보다 나눔의 섬김을 더 사모하면 좋겠습니다. 바울이 성찬식과 관련하여 고린도교회를 책망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형제 자매들이 굶주리고 있는데도 일부 부유한 교인들은 자랑하듯 음식을 교회에 가져와 너무 많이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그리스도의 몸을 욕되게 했습니다(고전11;20-27). 바울 사도께서 책망하자 반성하고 서로 나눠 먹기 시작했습니다.
 
나눔의 실천을 하려면 희생해야 합니다. 일상생활의 비용을 절략해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여러분이 현재 매달 쓰는 돈의 100분의 1을 줄이면 얼마나 됩니까? 사람마다, 가정마다 액수가 다르겠지만, 절약한 만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 하려고 맘을 먹는다면, 여행비, 음식비, 주거 생활비, 취미생활비에서 얼마라도 줄여 도울 수 있습니다. 적게는 몇 불에서 몇 십불이라도 여러 사람이 동참해 함께 모으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말뿐인 교회가 아니라 사랑의 나눔이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집사님들은 이런 일에 앞장서서 아이디어를 내고 솔선수범하길 바랍니다.

나눔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은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갖고 싶은 것 다 사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누굴 도와주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지구상의 인구가 대략 69억이라고 하는데, 이중 4분의 1은 풍요롭고, 4분의 1은 끔찍한 가난 속에 살고 있답니다. 매일 1만명 가량이 기아로 죽어간다니,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아닙니까?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이 군량미로 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래도 뭐든 나눠줘야 합니다. 여러분 생활수준을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줄여 그렇게 남은 것을 가지고 여러분이 직접 누군가를 돕든지, 구제헌금으로 드리든 하기바랍니다.

나눔의 실천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게 좋지만 저는 십일조의 십일조를 사랑의 헌금으로 드리자고 제안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교우가 있을 때마다 성의껏 사랑의 헌금을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매달 일정액을 교회에 드리고 교회 이름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게 하는 게 더 좋습니다. 소수의 교인들이 몇 백불, 몇 천불을 헌금하는 것보다 다수의 교인들이 자기 수입에 따라 몇 불부터 몇 십불까지 매달 헌금해 다같이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이 더 좋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평소에 매주 혹은 매달 나눔의 헌금을 드리는 것이 왜 더 좋은 지 알게 될 겁니다.
 
나눔의 삶을 위해 탐욕을 버리는 것은 물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너무 큰 집이나 고가의 가구나 차는 피하고 한 단계 낮춰 절약하고, 여유가 생기는 만큼 아낌 없이 누군가에게 나눠주면 좋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교인들이 크게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되는 것이라도 불필요한 지출을 삼가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몇몇 사람들은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그러는데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금보다 좀더 검소할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르바이트 해서 번 수입이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돈이든 절약해 쓰고 약간이라도 여분이 있다면 이웃과 나눌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돈 관리도 필요합니다. 미래의 소득을 예상해 집이나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넉넉치 못한 월급을 가지고 론을 받아 집을 구하면 돈에 얽매여 은행 좋은 일만 하고 말 것입니다. 아직 학생 여러분들은 새 차를 사고 싶은 욕구를 잘 다스리기 바랍니다. 새 차를 구입할 경우, 4, 5년 동안 3만불 가량 지출하고 내 손에 남는 건 1만 불도 안되는 중고차 뿐입니다.  아직은 적당한 중고차를 구해 타고 나니는 게 좋습니다.

멋지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유혹을 버려야 멋진 주님의 마음에 드는 제자로 살 수 있습니다. 수입이 많든 적든 물질적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사는 것은 서두에 말씀드린 새생명을 얻은 사람에게 합당한 새로운 삶이 아닙니다. 주님은 마음 속으로만 섬기고 삶은 세상을 따라가는 그런 천박한 교인이 되지 맙시다. 예수님 마음에 드는 제자로 사는 것은 결심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생활이 바쳐줘야죠.

지금 우리는 물질과 소비가 중심이 되어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 풍조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은 더욱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겉 모양보다 속 사람, 즉 마음을 연단해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거부하고 검소하게 살기 위해 가치관도 바뀌기 바랍니다. 속은 허영과 탐욕으로 차있고 겉모양만 멋지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추한 것입니다. 추한 것을 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영적인 안목을 갖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은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 저절로 생겨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의 참된 제자로 살려면 검소한 생활(Simple Life)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 인생은 생각만큼 길지 않습니다. 이 세상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삽시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간절해져야 세상의 욕심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님이 혹시 오늘 오실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그러면 죄와 헛된 욕망을 이겨내기 쉽습니다. 재림이 아니라도 결국 우리가 주님 곁으로 가게 될 것 아닙니까?

교우 여러분 섬기는 삶을 살면서 복을 받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친히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검소한 삶을 삽시다. 섬기는 삶이야말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특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