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말자

마태7:1-5

지난 한 주 동안 누구 말을 제일 많이 했습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저도 안나실목자와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훨씬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예빈이, 주은이, 함께 살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지만, 교우 여러분, 병원의사와 마사지사, 어떤 아는 분들 등등. 거의 남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이면 남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걱정돼서 시작한 말도 나중엔 비판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은 “비판하지 말자”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남을 비판하지 않으려면 먼저 판단부터 멈춰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7장 1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비판’이라는 말은 ‘판단', '재판'과 같은 뜻입니다. 영어 성경엔 judge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마 제자들끼리도 예수님 앞에서 남 이야기를 하면서 옳다 그르다 판단하고 정죄했나봅니다. 비판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에 대해 ‘옳다, 그르다’ 이런 판단을 그만 둬야 합니다. 판단하게 되면 칭찬을 하거나 비판을 하기 쉽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죄인의 특징입니다. 비판하는 마음의 중심엔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는 교만이 있습니다. 남의 허물은 잘 보입니다. 저도 제 허물은 잘 못보고, 여러분 허물은 잘봅니다. 내가 늦잠 자면 피곤해서 휴식하는 것이라 여기며 허물이라는 생각이 안듭니다. 그러나 남이 늦잠자면 게으르게 보입니다. 내가 집안을 어질러 놓고 청소를 안할 때는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지 싶은데, 남이 그런 걸 보면 불편해집니다. 내가 남말하는 것은 걱정해주는 것이고 남이 그러면 뒷 담화처럼 들립니다.

링컨은 “남의 비판을 받고 싶지 않다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고 하는데, 젊은 시절 링컨은 남의 허물을 못참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답니다. 링컨은 젊은 시절에 인디애나 주의 한적한 마을인 피존 크리크 벨리에서 살았습니다. 그 때 그는 곧잘 남의 허물을 들춰냈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람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시 혹은 편지를 써서 눈에 잘 띄는 길에 떨어뜨려 놓기도 했습니다.

1842년 가을, 링컨은 허세를 잘 부리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아하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인 제임스 쉴즈를 조롱하는 풍자문을 지어 스프링필드의 저널지에 익명으로 투고하였습니다. 그 글이 신문에 실리자 스프링필드 사람들은 모두들 쉴즈를 비웃었고, 자존심이 강한데다가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쉴즈는 불같이 화가 났습니다. 쉴즈는 자기를 비난하는 글을 쓴 사람이 링컨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결투를 신청하였습니다. 목숨을 건 결투를 시작하려는 그 순간, 쌍방의 입회인들의 중재로 결투는 벌어지지 않았답니다. 링컨은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남을 비판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하네요.

미국 동부 어떤 시골 마을은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려 사람들이 길을 분간할 수가 없어 길가의 도랑에 빠지는 일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되었는데, 높은 말뚝을 길과 양쪽 도랑 사이에 쭉 박아놓아 아무리 눈이 높게 쌓여도 길의 윤곽을 드러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후로 눈이 많이 내려 길의 흔적을 알 수 없어도 말뚝 때문에 도랑에 빠지지 않고 길 중앙으로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살면서 남을 비난하는 도랑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말뚝입니다

2. 남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나의 허물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비유로, 자기 눈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이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를 빼자고 나서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비판을 하려면 최소한 먼저 자신을 살펴보고 말할 자격이 있는 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남을 도둑놈이라고 몰아세울 수 있겠습니까? 음란물을 즐기며 바람피는 사람을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두고 모여든 사람들이 율법에 따라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렇다면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쳐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슬그머니 돌을 내려놓고 하나 둘씩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들 역시 간음한 사람, 도둑질한 사람 등 모두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만약 우리가 헤아리고 재고 분류하는 범주 안에서 산다면, 구원받지 못한 자임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나 실제로 완전히 의롭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비판하지 말아야 할 7가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중 마지막 일곱번째는 “우리 자신은 불완전하며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C S 루이스는 자시이 가르치는 어떤 대학원생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그 학생은 어떤 저명한 정치인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파티에서 그 정치인이 사람들 앞에서 그를 칭찬해주자, 그 다음부터는 그 정치인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죄가 드러나면 돌을 던지며 비난하기 쉽습니다. 얼마 전 한국축구대표팀이 중국에 지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감독을 비판하고 선수들을 비난했습니다. 접속이 폭주해 축구협회 홈페이지가 다운될 지경이었답니다. 그러다 며칠 후 일본 전에서 이기고 나자 금새 우호적인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악풀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악풀러의 비판 때문에 자살한 사람까지 나왔습니다

탈무드에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 비방하는 사람 자신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화제가 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좋은 의도라도 비판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 영혼을 구원하는 건 더욱 어렵습니다. 사실 남을 비판해도 좋을 만큼 우리가 온전하지도 못합니다.

요즘은 목사님들과 교인들까지 나서서 교회를 비판합니다. 잘못하는데도 비판에서 면제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면제되지도 않죠. 문제는 자신의 허물은 생각치 않고 상관 없는 남이야기하듯 비난하면서 자신은 의로운척 하는 게 더 나쁜 것입니다. 애정없는 비판자는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습니다. 잘못한 사람이라도 그가 처한 상황의 어려움과 고충을 헤아리며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줘야 합니다. 교회엔 비판자보다 사랑으로 감싸주고 회개하고 일어서도록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3. 비판대신 기도합시다.

비난하고 욕이라고 해주고 싶은 그런 사람이 보이면 기도해주기 바랍니다. 왜 그래야 하냐면, 이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생활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판단하고 비판하게 됩니다. 감정상으로는 당연한 반응같은데 주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가만 있으면 마음 속에서 이런 비판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즉시 기도말로 바꿔 복을 빌어주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교회다니면서도 사기치고 방탕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셀모임에서 그 형제를 걱정해서 한 마디씩 하더라도 그 사람의 잘못된 행실을 지적하고, 그래선 안된다는 비판 혹은 비난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잘못가는 지체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고 모른척 할 수는 없으니, 사람 앞에서 화제로 삼지 말고 기도제목으로 삼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말하는 대신에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게 좋습니다. 이게  중보기도입니다.

비판하자면 우리가 다 걸려들 겁니다. 놀러 다니느라 주일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숨어서 술 담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성교제가 다소 걱정 스런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없이 말을 해서 다른 지체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만하고 정작 쏙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비판적으로 본다면 면제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목회적 차원에서 볼 때 비판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도움이 안됩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잘못할 때 비난하지 말고 가슴에 품고 기도해줘야 바르게 자랍니다. 청소년시절 어거스틴은 방탕했지만 어머니 모니카 기도로 회심하여 4세기 기독교신앙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 감리교 운동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레도 어머니 수잔나 기도로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합니다.

비판은 의도와 달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비판은 듣는 사람에게 죄책감만 심어줘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비난하는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책망을 할 때는 먼저 품에 앉고 사랑을 고백하듯 해야 합니다. 화난 표정과 말투는 그 자체로 공격으로 받아들여져 방어하게 만듭니다. 성경공부나 셀모임에선 토론이나 비판보다는 격려와 기도가 더 유익합니다.

늘푸른교회 교우 여러분!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지 맙시다. 가족이나 친구나 직장 동료 중에 허물이 보여도 판단하고 비판하지 말고 복을 빌어주기 바랍니다. 누군가 고치고 싶으면 먼저 자신부터 고쳐야 합니다. 피차 허물이 보이면 비판하는 대신에 붙잡고 간절하게 기도해줍시다. 그러면 언젠가 변화될 것입니다.

남보다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분들은 더욱 말을 삼가해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단하고 평가하고 비판하기 쉽습니다. 비판적인 사람은 외톨이가 되기 쉽습니다. 다가가기 겁나는 사람은 주님께 쓰임받기도 어렵습니다. 따뜻한 마음, 감싸주는 아량으로 사람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비판적인 사람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이 됩시다. 가정이나 교회, 학교나 직장에서 잘못하는 사람이 보일 때 비판하는 대신 사랑으로 감싸며 기도해주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