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손이 함께하는 교회

사도행전11:19-26

오늘은 안디옥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강조된 ‘주의 손’을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먼저 주의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 왜 교회에 주의 손이 필요한 것인지 깨닫고 우리 늘푸른교회에 주의 손이 함께 하시기를 사모하며 기도하기 바랍니다.

19절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란 때문에 흩어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6장과 7장 보면, 예루살렘교회가 숫적으로 급성장하면서 구제하는 일을 담당하도록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생각되는 일곱사람을 일꾼으로 뽑았습니다. 스데반은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시기하는 무리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거짓증인을 내세워 스데반을 모함했습니다. 그래서 붙잡혀 공회 앞에 선 스데반은 그 자리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거슬려 행한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스데반의 말에 기분이 상한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공회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어 사도 외에 모든 교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행8:1).

안디옥 교회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의 손’, 즉 성령의 역사입니다.  21절을 보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셨다는 표현은 구약에도 신약에도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의 손은 초자연적 역사들이 일어났을 때 쓰는 표현이었습니다. 안디옥에서 전도할 때 그런 초자연적 역사가 일어나 많은 이방인들이 일부 유대인들만 믿던 예수를 자기들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복음은 사람이 전하지만 믿고 돌아오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손은 교회가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23절에는,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은혜를 느낀다, 경험한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럴 경우 내적 경험에 대한 주관적인 고백입니다. 하지만 본다고 할 때는 가시적으로 일어난 어떤 현상에 대한 객관적 표현입니다.  바나바가 본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시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러면 바나바는 뭘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고 한 겁니까?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24절). 바나바는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보았습니다(26절). 바나바는 안디옥교인들이 자기들 형편에 비해 과할 정도로 헌금하고 어려운 형제들을 돕는 데 적극 참여하는 것도 보았습니다(행11:29).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서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서로 형제들로 잘 지내는 걸 보았습니다 (행13:1). 적어도 안디옥교회 안에서는 종교적 사회적 차별의 장벽이 해소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행13:1-3).

교회를 다닌다고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어야 마음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삶이 변합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마음을 곱게 먹고 싶어도 잘 안됩니다. 욕심과 정욕과 시기심 이런 것들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싶어도 안됩니다. 죄에 물든 옛 사람이 죽고 예수님을 본받는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경험해본 사실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예수 믿고 돌아온 과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겁니다. 처음엔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깁니다.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죄악이라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회개하며 용서받겠다고 예수 믿는 게 그냥 저절로 될 수는 없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고 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보여야 합니다. 불신자가 예수 믿고 돌아오고, 갓 예수 믿은 사람들이 기쁨 속에 예배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조롱 받으면서도 전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며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도와주는 그런 교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납니다. 그럼 우리는 늘푸른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보여지고 있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은혜가 보이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소멸될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하나님의 은혜가 보여지고 있다면 교회는 성장할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보여야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아무리 크게 성장한 교회라도 쇠퇴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한 사건은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고린도전서 1장 12절을 보면, 어떤 교인들은 바울을 추종하고, 어떤 교인들은 아볼로를 따르고, 어떤 교인들은 베드로 편이라고 주장하며 대립했습니다(고전1:12). 이렇게 분쟁하는 원인은 교인들이 예수님보다 자기들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더 의지하고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엔 바울을 추종하는 무리들도 있었지만, 바울은 모두 다 책망했습니다. 예수님보다 자기 리더를 더 추종하면서 교인들이 다투는 것은 어떤 육신에 속한 행동이지 신령한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고전3:1~3).

목자가 중심이 되는 셀교회가 여러 면에서 좋지만 파당의 위험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은혜가 넘치는 좋은 교회라고 생각한 셀교회가 있었습니다. 담임하던 목사님이 적당한 시기에 사임하고 목자들 중에서 후임 목회자를 택하여 책임을 맡길 생각으로 목자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어떤 형제를 후보로 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누군가 후보가 된 목자에게 당신이 담당 목회자가 되면 자녀들을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협박 메일을 보낸 것입니다. 그 일로 충격을 받아 담임목사는 예정보다 빨리 사임하고 후보자로 선정된 목자도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해프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후임 목회자가 되길 바란 목자와 그 목자가 인도하는 목장원 중에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능력 있고 리더쉽을 발휘하는 사람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까진 괜찮습니다. 예수님보다 성령님보다 그 사람이 중심이 되고 교인들이 그 사람 말을 무조건 추종하고 지지하고 그렇게 되면 잘못입니다.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주님도 성령님도 무시되는 교회는 계속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래 가지 못해 분쟁과 분열과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인수도 늘어나고 장로,집사,목자 등 일꾼들을 더 세우고 그러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일꾼들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몸을 낮추면 오래도록 귀한 봉사자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고전3:5~7). 목사든 목자든 장로든 우리는 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일 뿐이며 교회를 성장시키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여리고 성과 아이성의 전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줍니다. 당시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민병대가상대하기엔 너무 강한 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전투에 나갈 사람을 모두 모아 6일 동안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고, 제7일째 되는 날에는 제사장 일곱 명이 법궤 앞에 나팔 불며 일곱 번 다 돈 후에 함성을 지르면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했습니다. 자기들 힘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계획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여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런데 아이성 전투에서는 형편없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아이성은 여리고 성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작은 성이라 소수의 군사만 보내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참패였습니다(수7:3,5). 실패한 이유는 인간의 힘을 믿은 것입니다.

교회 차원이든 목장 차원이든 우리 힘이 약하더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우리가 할 수 없었던 큰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재정이 부족하다, 일꾼이 부족하다, 교회당이 없다, 위치가 안 좋다 이런 말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성령이 역사하면 장소나 재정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환경과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이 작동하는 통로이지, 능력 그 자체는 아닙니다. 전선을 전기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전선설비가 아무리 잘 돼 있어도 전기가 나가면 소용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적용할 것은 하나님이 쓸 수 있게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하고 은혜의 초자연적 역사가 모든 목장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교회가 부흥할 때 나타나는 몇 가지 가시적 현상들이 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교인들이 생깁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이 생깁니다. 소원해진 교인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씁니다. 교인들이 서로 관심을 갖고 돌봅니다. 소명을 받은 평신도들이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전에는 시간과 재물을 바쳐서 헌신합니다. 이런 모든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성령께서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목자들은 양보고 왜 안 하냐고 할 게 아니라 양이 은혜 받고 변하게 도와줘야 합니다. 은혜 받고 변하면 자발적으로 주님을 위해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 늘푸른교회에도 이런 변화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기도할 때마다 교회에 주의 손이 함께 하여 초자연적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간구합시다. 기도는 교회를 섬기는 사역입니다. 어디를 가서 누굴 만나든 혹시 전도할 대상자가 아닌지 살펴보고 찾기 바랍니다. 계속 전도하면 믿는 사람이 반드시 나옵니다. 목장 모임에 빠지지 말고 참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주 안에서 건강하게 자랍시다. 기존 교인들이 은혜 받고 자라야 교회가 부흥됩니다. 정기적으로 수입이 있는 교우들은 십일조와 사랑의 헌금에 동참합시다. 그 헌금은 사랑과 구원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 주를 섬길 기회가 주어질 때 순종합시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전도하며 교회를 섬기는 게 그리스도인입니다. 먼저 주의 일에 힘쓰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가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십니다. 믿고 순종하는 교우들에게 주의 손이 함께 하여 추수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