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무엇인가

마4:17

오늘은 회개의 뜻과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회개라고 하면 잘못한 행동을 반성하고 고치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런 뜻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사용되는 회개라는 말은 그 이상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뭔지 잘 이해하기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은 회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 처음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마4:17).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미리 준비하는 사명을 가지고 활동한 침례 요한도 사람들에게 제일 강조한 말씀이 회개였습니다(마3:2). 침례 요한은 회개의 표식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을 때 베드로 사도가 제일 먼저 요구한 것도 회개였습니다(행2:

침례 요한과 예수님은 회개를 천국과 연결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4:17). 이 구절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천국을 대비해, 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회개하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이 어떤 것인지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하기 바랍니다. 어떤 해석이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면 먼저 회개해라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이제 회개의 의미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겠습니다. ‘회개하라’는 헬라어 ‘Μετανοειτε’를 번역한 것인데, 명사형은 Μετανονια입니다. 성경엔 동사형으로 나오는데, 메타노에이테의 뜻은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침례 요한, 예수님, 그리고 베드로 모두 돌아오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돌아오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은 지금 떠나 있는 상태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먼저 돌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상관없었던 사람이라면 돌아오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습니다. 함께 하다가 떠난 사람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남편을 떠난 아내에게 돌아오라고 합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보고 돌아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또 탕자의 비유에서 보는 것처럼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집을 나간 작은 아들에게 돌아왔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 말 성경엔 ‘돌아오라’는 뜻의 메타노에이테를 ‘회개하라’로 번역해놨습니다. 제 생각엔 회개하라는 말보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로 번역하면 뜻이 더 분명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고 싶은 데로 살다보면, 잘못도 저지르고 그럴 수 있습니다. 뭔가 잘못하고 있을 때 회개하라는 말을 들으면 잘못된 행동을 고치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강조하는 회개는 단지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행동을 바르게 고치는 것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상관없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 죄로 여기는 행동을 고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행동을 고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친구와 어울리며 도박하고 바람피고 그렇게 살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허랑방탕하게 살아온 것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합시다. 그 자체로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불신자 중에서도 이렇게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적잖을 것입니다.

돌아온다는 의미의 회개를 잘 보여주는 것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집을 떠나 타국에 가서 자기 맘대로 방탕하게 살다가 돈이 떨어지고 굶어 죽을 지경이 되자  아버지께 돌아가기 전에 먼저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돌아왔습니다. 성경엔 아들이 얼만큼 잘못을 반성했느냐 하는 것보다 아버지께 돌아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냥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교회에서도 회개라는 단어를 너무 도덕적 차원에서 행위중심적으로 사용해 온 게 아닌가 반성이 됩니다. 회개가 하나님게 돌아온다는 뜻보다 먼저 잘못된 행실을 고친다는 것이 더 강조되면 본래의 의도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회개를 말할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왔느냐를 생각하기 보다 예수 믿기 전에, 혹은 교회 나오기 전에 잘못된 행실을 지금은 고쳤느냐, 또는 버렸느냐에 너무 치중하면 생명을 살려야 할 교회가 생명을 죽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어떤 잘못된 행실은 내 의지만으로 잘 안돼 성령의 도우심과 교회 가족의 배려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으면서 병을 고치는 경우와 같은 것이죠.

회개를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의미로 이해할 때는 행동보다 마음이 우선합니다. 연인에게서 떠날 때 마음이 먼저 떠나고 그 다음 몸이 떠납니다. 마음이 떠나지 않으면 몸이 떠나 있어도 연애는 지속됩니다. 한 집에 살아도 마음이 떠나면 관계는 끝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게 문제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떠나 외국으로 간 게 아닙니다. 마음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말라기서 끝부분, 4장 5,6절을 보면, 그 날에 선지 엘리야를 보내,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아키게 하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엘리야가 바로 침례 요한이었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세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잘못을 지적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자 일부 유대인들이 잘못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서 나사렛 청년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로 믿으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어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증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먼저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공경하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천국을 준비하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