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주도하는 교회사역

사도행전8:14-17; 19:1-7

오늘은 교회에서 성령님의 사역을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님을 빼놓고 교회 사역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모르고도 교회생활을 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큰일입니다. 어느 한국인 목사가 미국에 왔다가 돌아가는 날 느낀점을 이렇게 말했답니다. “미국인들이 성령님 없이 해내는 일들을 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A.W.Tozer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성령님이 교회를 떠나셔도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주일 예배에 출석한다”(Organic Church, P.95).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에 예수믿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와서 보니 그들에게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도는 저희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도 선교 여행중이던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베드로사도나 바울사도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은 물론 성령받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교회는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는데 그치지 말고 성령받았는지 확인하고 성령받도록 안수기도하는 운동을 전개할 생각입니다. 오늘은 예수 믿음과 동시에 성령을 받는지, 예수 믿고 난 후에 성령을 받게 되는지 등과 관련된 교리적 설명을 할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받았는지 돌아보고 아직 성령받지 못했다면 오늘 성령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직후에 성령 받은 분들과 함께 성령받기 원하는 분들을 위해 안수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 믿을 때 성령받았습니까?

바울은 에베소에서 만난 어떤 제자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제자들은 “성령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본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적도 없는데 어찌 받습니까?’ 이런 뜻 같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들은 스승 요한으로부터 회개의 침례는 받았지만, 예수 믿고 신앙고백으로 받는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아직 성령받지 못한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예수 믿는 사람에게 적용해서 예수 믿었지만 성령받지 못할 수도 있고 나중에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바울은 제자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아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같습니다. 바울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스승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이 누구신지 설명해주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또 침례를 받았습니다. 정확한 의미에서 제자들은 이 때 비로소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겁니다. 그리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방언과 예언을 말하는 것을 보고 성령이 임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을 때 성령받았습니까? 지금도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과 체험적 증거가 있습니까?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열매가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예수 믿을 때 동시에 성령을 받는다고 배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는 말씀이나 로마서8장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4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런 말씀을 볼 때 예수믿는 사람은 당연히 성령도 받는다고 믿습니다.

바울 사도를 대신해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늘푸른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이 질문에 뭐라 답할 지 주저되거나 불편한 느낌이 드는 분이 있습니까? 그럼 왜 성령에 대해 말씀할 때 기쁜 마음대신 어딘가 불편해질까요? 성경을 보면 성령님을 떠나서는 그리스도인도 교회도 존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맞다면 성령님에 대해 거부감을 가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제 성령님은 누구신지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2.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삼위의 인격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을 힘이나 능력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연예인 중에 강호동의 힘을 당할 자가 없습니다. 최근에 체육관을 운영하는 이훈이 강호동과 팔씨름을 했다가 쪽도 못썼다는 뭐 그런 글을 읽었는데요. 강호동 하면 힘이죠. 그러나 힘이 강호동은 아닙니다. 강호동에게 힘이 있는거죠. 강호동은 한 인간으로서 인격체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께 귀신을 몰아내는 힘과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지만 힘과 능력을 성령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같이 육신은 갖지 않았지만 인격이십니다.   

지난 금요일에 성령님은 삼위일체 삼위의 인격이기 때문에 ‘받는다’는 표현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받는다는 표현은 인격적인 성령님의 임재를 능력이나 은사를 받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를 남겨둡니다. ‘받는다’는 말은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성령을 주세요, 성령을 받으라’ 이런 표현보다. ‘성령님 저와 함께 해주세요,. 성령님과 동행하세요’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3. 성령충만, 성령훼방, 성령소멸은 무슨 뜻입니까?

성령님과 관련해 성경에 사용된 표현 중에 성령충만(엡5:18), 성령 훼방(마태12:31-32), 성령소멸(살전5:19)이란 말도 있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이것들이 무슨 뜻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을 보면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령충만’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성령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여 성령의 인도아래 마치 하나님의 포로처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어떤 일을 하실려고 할 때 전적으로 순종하면 여러분에게 능력도 나타나고 이적도 일어나고 전도의 열매도 맺게 됩니다. 성령충만은 이적과 능력보다 성령님께 순종하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성령충만해도 이적이나 능력이 아직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을 보면, 성령을 훼방하고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령님이 인격이시기 때문에 사람에 의해 훼방받고 사람이 성령을 거역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마태복음 12장 문맥에 잘 나와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도움으로 벙어리를 고쳤다고 성령이 하신 일을 부정하고 사단의 역사로 돌렸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인간이 성령을 소멸시킬 수도 있는가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소멸’이라는 말은 ‘불을 끄다’, ‘억누르다’로 해석하는 것이 원문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소멸한다는 표현은 성령님의 존재 자체를 멸망시키는 게 아니라 성령님을 억누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감동을 억누르거나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면 성령이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이 여러분에게 어떤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은 있지만 성령의 활동이나 역사는 없게 됩니다.

4. 성령님의 교회사역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시고 성령님이 성장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교회 사역은 모두 성령님이 주도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선교와 전도활동에서부터, 교회를 개척하고, 일꾼을 세우고, 어떤 결정을 내리고, 교회를 운영하는 모든 과정에서 성령님은 지시하고 사도들과 교회 사역자들은 그 뜻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가롯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제비뽑기로 사도로 세우는 과정을 봅시다. 이것은 교회에 성령이 오시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직후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는데 모두 120명쯤 되었습니다. 기도 후에 베드로는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자고 제안했습니다. 베드로는 먼저 사도가 되기에 합당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행1:21,22). 회중들은 이에 합당한 두 사람, 요셉과 맛디아를 추천했습니다(23). 두 사람 중에 누가 돼도 상관없지만, 누가 주님보시기에 적합한지 알 수 없는게 문제였습니다. 제자들은 기도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로 결정했습니다.

맛디아를 뽑는 과정은 성령이 임하기 전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의 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자격 조건에 합당한 두 사람을 놓고 제비뽑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경우 누가 돼도 큰 문제가 안됩니다. 이처럼 성령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고 둘 중에 어느 쪽도 상관 없을 경우는 제비뽑기가 차선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후에는 이런 방식보다는 성령의 직접적인 지시를 따르거나 성령의 강동하심을 받는 사람들이 성령과 함께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곱집사를 세울 때 적합한 조건 중에 제일 먼저 성령이 충만한 증거가 있는 사람을 택했습니다(행6:3). 빌립집사님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찾아가 전도하는 과정(행8:29)나 베드로 사도께서 고넬료를 방문하여 전도하게 되는 경위를 보면(행10:19), 성령님이 직접 지시를 내리고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세울 때도(행13:2), 예루살렘교회회의에서 이방인에 대한 지침을 결정할 때도(행15:28), 바울이 선교지역을 결정할 때도(행16:6),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지시하고 결정했습니다. 선교활동이든 교회운영이든 모두 성령님이 지시하고 교회지도자들은 성령의 뜻을 받들어 시행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성령의 지시를 받지 못하거나 불순종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선 성령을 모르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목회자나 교인들이 성령이 있음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교회일을 처리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어떤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왕권을 행사합니다. 어떤 교회는 실세 장로님의 의견에 좌우 됩니다. 어떤 교회는 몇 개의 그룹으로 파가 갈려 다투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교회에서 성령이 무시되고 일부 사람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사결정은 기도하며 성령의 지시를 기다리고 성령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따라가는 게 최선입니다. 

성령님이 주도하는 교회가 되려면 목회자는 물론 교인들이 성령을 알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해야 합니다. 보통은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의 의중이 가장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목사님 주장이 너무 강하면 교회가 성령의 뜻을 따라가기 어렵게 됩니다. 교인들이 성령의 인도보다 목사님 눈치보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성령께서 목사님을 인도하시도록 늘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교인들이 많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성령의 지시를 받아 교인들에게 말해줘도 교인들이 그것을 분별할 수준이 못되면 사단이 교인들의 사심을 이용해 분열을 꾀합니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교회는 계속 어떤 결정을 내리고 뭔가를 하게 됩니다. 돌아보면 우리교회도 선택과 결정의 과정을 밟아왔습니다. 최초의 결정은 물론 늘푸른교회 이름으로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처소를 옮길 때마다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교회에 목자와 집사를 세울 때도 결정을 해야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늘푸른교회개척에 동참할지 이전 교회로 돌아갈지 결정해야 했을 것입니다. 최근에 늘푸른교회에 출석하는 교우들도 형제교회 같은 큰 교회로 갈것인지 선택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결정들은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예배처소를 옮기는 문제를 놓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목회자나 교인들보다 주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목회자도 교인들도 의견을 말하기 전에 성령의 지시를 받아 주님의 뜻이 뭔지 분명하게 깨닫도록 힘써야 합니다.

5. 성령강림을 위한 안수기도

본문 6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침례받고 난 제자들에게 안수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성령님이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받는데 안수가 얼만큼 결정적인 것인지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 사도께서 안수할 때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 사도를 본받아 성령체험한 분들이 교우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도록 믿음으로 안수기도해주는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