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뛰어 들자

요한복음20:21-23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전도하기 위해서는 불신자에게 열려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쉽게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해야 합니다. 또한 기꺼이 불신자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전도에 열려있는 삶이란 예수님과 함께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죄악을 피하는 것과 죄인들을 피하는 것은 다릅니다. 세상의 죄악된 모습을 피하려고 움추리면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합니다. 그러면 영혼을 구원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1. 전도를 위해 세상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이 모인 곳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아버지를 떠나 멸망하는 자식들을 살리려고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무도한 세상 사람들의 손에 잡혀 죽으라고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지고 조롱과 고통을 받으며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서 부활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죄인들이 구원얻을 길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보자면 예수님도 죄인을 구하려고 세상에 뛰어드는데 큰 부담을 느꼈을 것입니다. 천상에서 하나님의 수준으로 살던 분이 무도한 죄인들의 세상에 뛰어 들었으니 몸과 마음이 고달프고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무례한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신분에 맞는 사람들끼리 파티를 하고 결혼을 하고 어울려 지내잖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두가지 속성 사랑과 공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본질과 속성에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처럼 예수님 역시 죄악을 보고 간과하지 못하는 분이십니다. 죄악을 보면 의로운 분이 터져나와 가만 있을 수 없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속으로 뛰어 드는 위험을 감수하실 뿐아니라 기꺼이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선 죄인을 이해하는 친구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평신도들이 매일 불신자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살면서도 자신의 신앙은 비밀로 묻어두고 마음으로 불신자들에게서 고립된 체 살아가기 때문에 전도가 안된답니다.

바리새인 생활방식은 남을 전도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만 의롭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고 죄인취급하고 더 한심한 것은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성전 예배에 참석하는 것조차 막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에 대해 바리새인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좀 있습니다. 세상과 죄인들을 멀리하는 게 거룩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속엔 자기만 의로운줄 아는 교만과 무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다보니 결국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소외시켜버립니다. 주변에 어울릴 친구도 없고 찾아갈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의 생활방식과는 다르게 살아갑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생활방식을 찾아보면 예수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부적였습니다. 제자들에 둘러쌓여 사람들을 몰고 다녔습니다. 예수님 주변은 세리 죄인들 병자들로 항상 붐볐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멀리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주님을 따른 것입니다. 앞서 전도하기 위해서는 열려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예수님은 열려진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에 뛰어들고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불편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목사님들도 세상에 뛰어드는 게 겁나서 잘 못합니다. 저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전도에 대해 기도하면서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뛰어들었는데 제자들은 교회하부구조에 숨어서 안락함을 즐긴다면 이건 아닙니다.

어떤 분이 “Incarnational evangelism” 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용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 죄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인간이 되어 세상으로 뛰어든 희생과 위험을 함축하고 있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세계,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야 그들의 마음을 얻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인들의 세계로 내려가야 합니다.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지혜롭게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간섭하는 무례를 범해야 사람을 낚을 수 있습니다.

2. 전도를 위해 시대정신을 이해합시다.
전도자는 대상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가 증거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시대정신은 변하는데 초대교회나 중세 시대에 통하던 패러다임에서 사용되던 언어로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성령으로 기록된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 복음주의자들에게 기존의 기독교 신앙에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속 철학과 과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은 받아들이기 쉬운 게 아닙니다. 전도자는 어디서 기독교 신앙에 거부감이 생기는 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도자가 무식하면 복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누가 전하든 복음의 내용은 같지만 과학을 전공한 크리스쳔 교수가 말하면 신뢰도가 높아지잖습니까? 우리가 성경 밖에 모르면 무식해서 아직도 저런 걸 믿고 있다고 취급받기 쉽습니다. 전도하기 위해 최소한 종교개혁이후의 현대 철학과 과학에 대해 상식수준 이상의 기본지식을 습득해 대화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합니다. 사실 철학이든 과학이든 엄청난 지식이 축척되어 있어서 대충 기초적인 내용만 이해하려해도 쉬운 건 아닙니다. 영혼 구원하기 위해서 공부할 필요도 있습니다.

대학생 지성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과 오늘날 수정발전된 진화론, 역사철학적 관점에는 진화론적 사고방식 혹은 가치관 이런 걸 다소 알아야 할 것입니다. 대학생들은 학기가 끝나고 방학일 때 성경도 읽고 과학이나 철학서적도 읽어 둬야 합니다.  현대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몽주의,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에 대해 공부해두길 바랍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주로 헬라인들을 상대로 전도할 때는 존재하지도 않던 것이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시대의 사람들과 오늘 우리들의 정신 세계는 매우 다릅니다. 중세까지는 기독교세계관이 지배했습니다. 기독교세계관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 중심입니다.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 신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인간은 신이 보여주는 계시에 의존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뿐입니다. 중세카톨릭의 무리한 주장 일부를 부정하긴 했지만 종교개혁자들도 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의 이름으로 벌언 종교전쟁에서 기독교가 이교도에 의해 패배하고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던 완권에 도전해 시민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혁명이 일어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걸쳐 새로운 시대정신 혹은 사상풍조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계몽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교회의 권위에 의해 지탱되던 중세의 질서가 무너지자 정신적 공허함과 무질서가 생기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정신활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중세의 권위에 근거한 질서가 부정되는 상황에서 데카르트(1596-1650)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은 의심되지만 의심하는 사고의 주체인 인간의 자아는 의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려진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은 이런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데카르트에게서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로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가 되어 신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계시보다 인간의 이성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신이 인간의 마음에 새겨 넣어 준 도덕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활용하여 인류에게 더 자유롭고 행복하고 발전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생각한 것처럼 세상은 인류를 행복하게 발전되지 못했습니다. 합리성 추구, 과학우선, 객관성강조, 개인주의, 보편주의 같은 가치들이 예상과 달리 공동체를 파괴하고 개인을 더욱 소외시켰습니다. 인류의 행복을 가져올 것으로 믿었던 이성과 과학과 개인을 중시하는 현대적 가치들은 불가피하게 힘의 집중과 남용을 가져오고 가정과 지역공동체를 파괴하고 개인은 더욱 무기력해지는 억압의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왕정체제나 교회의 권위로부터 벗어났지만 대신 관료체제가 등장해 인간은 자유롭게 되기보다는 새로운 억압의 상황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현대 가치를 부정하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게 되는데 현대 이후의 정신사조라는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명명되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살펴볼 기회를 갖겠습니다.

3. 전도를 위해서 공부합시다.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크게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닮는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서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전도하고 양을 키우기 위해서 입니다. 교회에 목사와 목자와 교사를 세우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케하고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엡4:12). 목사의 일차적인 직무는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고 당부했습니다.

바울의 전도방법은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그들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행18:11). 3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서는 2년 3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했습니다(행19:8-10). 복음도 한두번 들어서 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듣는 중에 어느날 깨닫고 받아들입니다. 본인이 확신이 없으면 전도할 용기가 안나는 게 사실입니다. 사단은 전도는 커녕 자기 신앙도 못지키게 흔들고 있습니다. 나무가 그냥 흔들리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잘 나오던 사람이 괜히 핑계대며 빠지는 게 아닙니다. 그 뒤에는 마귀가 바람을 불어대니 흔들거리는 겁니다. 정욕은 피하면 되지만 사단은 피하면 따라다니며 괴롭힙니다. 말씀의 검을 휘둘러 쓰러뜨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검술부터 배워야 할 게 아닙니까? 성경공부는 검술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임기응변으로 넘겨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다양한 상황과 질문에 대해 대답할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전도하다가 ‘교회에 위선자가 많아서 교회 나가기 싫다’는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당황되고 움추려 듭니다. 실제로 교회나 교인들로부터 상처받아서 교회 다니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죠앤(뉴져지주 간사)은 이런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여러분 대학에도 위선자가 많아서 대학 다니기 힘들죠”
“우리 솔찍하게 말해봅시다. 여러분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항상 다 실천하며 사나요?”
“그래요. 위선자는 어디에나 있고 또 알고 보면 우리도 위선자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거구요”

4. 전도를 위해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귀신은 정말 귀신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평소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귀신같아 알아봅니다. 그걸 실감하게 만드는 곳은 전도현장입니다. 옛날엔 부흥집회할 때 귀신들린 사람들이 한 두 명씩 있었습니다. 찬송하고 설교 할 때까지도 별 일없다가 그 당시엔 주로 통성기도하면서 강사와 목사님들이 다니며 안수기도해주 곤 했는데 그럴 때 벌렁 넘어지거나 바싹 움추리고 괴성을 지르며 노려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귀신이 쫓겨날까 봐 겁을 먹고 발악하는 것인데도 그 당시엔 그 모습에 겁을 먹곤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밤 늦게 그런 일이 벌어져 새벽까지 계속된 적도 있었죠.

하루는 어떤 사람이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와 고쳐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귀신이 아이를 거꾸러뜨려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다 죽어가게 만들곤 했습니다. 간질병과 좀 비슷한 증세입니다. 이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탁했었지만 제자들이 귀신을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몰아내고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선생님께 왜 자기들을 할 수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제자들도 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적이 있었거든요(막6:13). 그러자 예수님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막9:29).

베드로 사도는 교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7,8). 사단과 관련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사단의 존재가 하나님을 대적하다 쫓겨난 타락한 천사와 그를 따르는 영적 존재들이라면 예수님 당시처럼 지금도 그들이 소멸되어 없어진 게 아니라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도 영적 전투에서 전략이라는 걸 갖고 있을 것이니 대응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영적 세계를 무시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사단은 숨어서 활동하기가 더 용이해졌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사단의 존재가 느껴지고 보이기도합니다.

영적 세계는 성령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영적 세계에서 보면 불신자들 위에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의 영이 역사한답니다(엡2:2). 그 영은 귀신들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마귀의 역사를 멸하기 위해 오셨다고 합니다(요일3:8).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알 것은 뱀도 밤꿈치를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단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사단과의 전투를 쉽게 생각하고 방심하면 안됩니다. 전도를 위해 기도합시다.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능력을 구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보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랍니다. 주님 말씀을 따라 한 주동안 세상으로 나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몰아내며 병든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하늘과 땅에서 통하는 영적인 권세가 들어있습니다. 그 권세가 세상에 역사하도록 만듭시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권세가 역사하게 만드는 인프라입니다. 우리도 백부장 같은 믿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갑시다.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병이 낫을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파송받은 사람이라는 믿음과 의식을 가지고 예수의 증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