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요한복음4:20-24

 오늘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배가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50%가 넘는다고 합니다. 사실상 우리 교회는 일주일에 주일예배가 유일한 예배입니다. 금요모임과 셀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은 주일 예배를 빠지거나 제대로 드리지 못하면 그 주간 신앙생활은 말 그대로 실패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만남입니다. 만남이니까 대화가 있고 인격적 관계가 생깁니다. 예배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대화는 말하고 듣는 두 요소가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예배자는 서로에게 말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고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하는 시간입니다. 설교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시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배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교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예배보러’ 간다는 말을 쓰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예배를 본다’는 말이 구경꾼 같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은 생각과 의식을 반영합니다. 예배의 경우 본다는 말보다는 드린다는 말이 더 좋은 표현입니다.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려면 가능한 예배순서에 참여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찬양팀에 들어가 예배 중에 찬양을 하고, 대표기도를 하고, 앞에 나와 간증을 하고, 예배 중에 헌금을 드리고, 촌극이나 드라마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러면 참여하는 예배가 됩니다.

예배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은혜받는 것이 예배의 목적이 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전에 어떤 청년이 주일 예배가 은혜가 안 된다고 불평하면서 교회를 옮기겠다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그 후로도 방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은혜는 예배자가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섬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은혜의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걸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요한복음4장 23,24절 보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는 헬라어성경, εν πνευματι και αληθεια를 번역한 것인데, NIV에는 ‘in spirit and in truth’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을 직역하면 ‘영 안에서’ 또는 ‘영으로’, ‘진리 안에서’ 또는 ‘진리로’ 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원문엔 영과 진리 이 두 단어가 전치사 εν 하나 속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과 진리를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로 묶어서 볼 수도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루살렘이냐, 사마리아냐 장소에 관심을 가질 때, 예수님은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고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하셨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이 아닌 영으로 예배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봅시다. 영이라고 하면 어떤 신비한 느낌 분위기 이런 걸 생각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런 신비스런 분위기 같은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거듭난 심령으로 하나님의 영을 만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으로 교통이 이뤄지는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는 예수 믿고 거듭난 후에 드릴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상태로는 예배에 참여해도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기도나 찬양이 소용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고넬료의 경우, 아직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구제하고 기도했습니다. 어느날 천사가 고넬료를 찾아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 기억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보내 고넬료가 복음을 듣고 예수 믿어 거듭나게 해주셨습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한 상태라고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간구를 하나님은 기억해주십니다. 다만 하나님께 영으로 예배 드리는 것은 거듭나야 가능하니 예수 믿고 거듭나게 해달라고 마음으로 구하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번역된 헬라어 ‘알레쎄이아’는 성경에서 보통 진리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말이 분명치 않아 진정으로 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진정이 뭐냐고 하면 또 진심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알레쎄이아는 우리의 태도에 해당하는 진정으로가 아니라 진리로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진리가 구체척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구체적 언급이 없어서 성경에서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포괄적 용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물론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진리가 성령을 가리킨다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영이 성령의 인도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에 참석했다고 해서 모두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성공적으로 드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예배는 소용이 없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 아래 우리 몸을 구별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그렇게 되어 하나님이 받으시고 은혜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미리 예배를 위한 마음 준비를 하면 좋겠습니다.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가서 보고 오면 되지만, 선수들은 미리 준비해서 이 한 게임에 전력투구를 합니다. 예배는 관중이 아니라 선수처럼 드려야 합니다. 관중은 예배를 드리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배시간에 여러분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렸습니까? 매 주일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최상의 제물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성별해서 드립시다. 말라기를 보면, 그 당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잘 되는 게 뭐냐고 불평하면서 희생제물로 눈멀고 저는 것을 드리고 식을 떡을 제단 위에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기 싫으니 제단 문턱을 넘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중에 함부로 살면서 주일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눈멀고 저는 것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삽시다. 이것이 성별해서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불신자 전도를 목적으로 구도자의 예배나 열린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예배라기 보다는 전도를 위한 집회라고 해야 맞습니다. 불신자가 예배드린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예배는 성령안에서 우리 영과 하나님의 영의 만남인데 어떻게 영이 죽어 있는 불신자가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는 예배는 속죄 희생의 피가 없는 제사와 같습니다. 전도를 위한 것이라도 예배의 본질과 목적을 훼손하면 안됩니다. John F. MacArthur는 “불신자를 기쁘게 하는 예배 이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배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시고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은혜와 기도 응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에게 내려 주시는 선물입니다. 선물이 예배의 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주일예배가 은혜가 안 된다고 불평하다가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봤습니다. 은혜 받고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되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헌신하는 것보다 자기 필요를 먼저 채우려는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보다 자기 유익을 먼저 구하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이사예배, 개업예배, 회갑예배, 등 예배 앞에 어떤 이름을 붙여서 예배드린다고 하는 경우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예배가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업의 성공을 기원하는 자리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예배라고 하기 보다는 개업식, 회갑축하연으로 부르고 축복기도와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나누는 정도가 무난합니다. 그러나 안수예배, 임명예배, 파송예배는 가능합니다. 사명을 받고 헌신하고 서원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예배는 거듭난 우리 심령이 성령 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두 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참여하는 것으로 다 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도록 유념하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주일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오기 바랍니다. 예배 보는 구경꾼보다 찬양, 간증, 헌금 등 참여자가 되길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 매주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자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