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버림받은 이유

이사야2:5-11

오늘 본문 내용 중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사랑하는 유다 백성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복 받으며 살려면 우리도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지적에 따르면, 유다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배가 없었고, 그 당시 유다는 사회적으로, 군사적으로 풍요로워 안일함과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런 타락한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징계의 심판을 통해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의 운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만들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했습니다.

지금부터 주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5절에 ‘여호와의 빛 가운데 행하자”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자는 뜻입니다. 주의 말씀은 구약의 배경에서 보면 율법과 예언서이고 그 핵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사나 절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죄악에서 떠나 공의를 구하며 사랑을 베풀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없이 형식적으로 예배가 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여러분 각자에게 있습니다. 마음 준비는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당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무거운 짐’ 으로 느껴지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찬양할 때 감동의 기쁨을 못 느끼고 설교들을 때 은혜가 안돼 졸리고 그러는 것은 위험신호입니다. 뭔가 영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인이니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돌아보고 첫 사랑을 회복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놓고 말할 때 목사인 저와 운영위원들과 목자들은 죄악을 멀리하며 자기 신앙생활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인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교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해야 합니다. 구원은 아무 공로 없이 은혜를 통해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교우들에게 덕이 되는 신앙생활은 스스로 삼가하고 노력하면서 해야 합니다. 운영위원과 목자들은 자기 신앙관리는 물론 교회 가족들에게 선을 행하고 어려운 교인들을 찾아서 도와주고 억울한 사람을 변호해주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6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야곱의 집안 사람들을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6절 중반부터 9절까지 다섯 가지 정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1)유다 백성들이 동방풍속을 따른 것, 2)블레셋 사람 같이 마술을 부린 것,  3)이방인과 손을 잡고 언약한 것, 4) 재물과 군사력을 의지한 것(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5)우상을 용납하고 숭배한 것, 등입니다. 요약하면 유다 백성들이 버림당하게 된 이유는 첫째는 우상숭배하며 이방인과 어울려 산 것, 둘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과 칼을 믿고 산 것입니다.

동방풍속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언급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동방은 시리아, 앗시리아, 바벨론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은 그들의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고대사회의 생활방식은 그들이 섬기는 신이나 우상 숭배 의식과 뒤섞여 있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종교는 문화의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문화권, 이슬람문화권, 불교문화권 이런 구분이 나왔습니다. 그런 것처럼 고대 근동사회는 우상숭배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가졌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우상숭배의 문화와 철저하게 구별되어 살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을 찾아가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신 가장 큰 이유는 우상숭배하는 그 땅과 그 문화와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갈 때까지 이 세상에서 살더라도 사단과 육신의 욕망을 섬기는 이 세상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도록 주님이 교회를 세우신 것도 같은 뜻입니다.

교회로 번역된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부름받아 나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에 물들어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매우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귀가 지배하는 타락한 세상에서 죄에 물들어 멸망당하지 않도록 하려고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 믿음으로 의롭게 해주고 거룩한 성령을 보내주어 하나님 자녀답게 구별되게 살라고 하시는데, 육체의 욕망과 탐욕을 추구하는 세상 풍속에 물들어 살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유다 백성이 육신의 욕망과 탐욕을 위해 동방의 풍속을 따라 산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풍속 즉 문화는 겉으로 들어나는 생활방식은 물론 우리 정신 세계, 더 나가 영혼까지 영향을 줍니다. 사단의 영들이 종교, 예술, 음악 속에 침투해있습니다. 심지어 사단은 과학까지도 이용해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을 물질적인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들 중에 영적인 것의 뿌리는 100%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사단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화는 각 시대에 따라 어떤 형태로 등장하든 간에 결국은 하나님 자리에 인간을 올려놓고 섬기다 결국 마귀에게 사로잡혀 멸망으로 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마귀를 섬기는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족속들을 남겨두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하신 것은 이방인들의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전염될 것을 미리 방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구제역을 어떻게 퇴치하는지 아십니까? 돼지 전염병의 일종인 구제역이 발생하면 사방 수km 이내에 있는 돼지는 무조건 매몰시킵니다.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극단적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항상 극단적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걸 유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상숭배로 더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멸망하지 않게 하려고 우상숭배에 물든 자들에게 극단적 조치를 취하시는 것입니다.

약물에 중독되면 정신과 육체가 망가지는 것처럼, 우상숭배에 빠지면 영혼이 망가집니다. 현대 인들에게 종교적 우상보다, 물질적 탐욕의 우상, 육체적 쾌락의 우상이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미신에 현혹되는 수준은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물질의 탐욕과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그 어느 시대보다 강합니다. 돈을 좋아하고 의지하는 것, 약물에 중독되는 것, 성적으로 방탕하게 사는 것, 이런 것들이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보다 더 위하면서 결국 우상숭배자처럼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늘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당한 야곱 족속이 누굽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사단이 노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손으로 파멸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우상숭배와 같은 죄악에 빠지도록 유혹해서 그 죄와 함께 멸망당하게 지금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 속에 함정을 팝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니까 죄를 지으며 돈을 벌도록 부추깁니다. 돈 버는 생각에 죄의 결과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일, 권세를 잡고 성공하는 일 이런 것들 속에 죄를 짓고 그걸 얻게 만드는 마귀의 올무가 숨어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나쁜 죄악입니다. 남편에게는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사랑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가장 화가 나는 일입니다.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할수록 화가 더 치밀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재앙을 면하고 복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께 구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복을 주고 화를 면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런데 마귀의 악한 영에게 속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악한 영들을 섬기며 복을 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그 다음 두번째 멸망의 원인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과 칼의 힘을 믿고 산 잘못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7절을 보면, 그 당시 유대는 주변 나라보다 강성했습니다.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했다고 합니다. 은금 보화는 경제력, 마필과 병거는 군사력, 즉 칼의 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께서 버리셨다고 선언한 시점은 분명치 않지만,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부강한 상태였던 요담왕(BC750-732) 통치기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담 때 유다가 비교적 강성했던 것은 아버지 웃시야왕이 52년 동안 통치하면서 블레셋, 암몬 등을 쳐서 조공을 받고 성곽을 수축하고 망대를 세우는 등 국경수비를 든든히 한 후 물 웅덩이를 많이 파서 농업과 육축과 과수원 경작으로 소출을 늘려 나라를 부강하게 한 덕입니다(대하26장). 요담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섭정의 자리에 올랐는데, 아버지 웃시야가 죽자 암몬이 유다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시도했습니다. 이 때 요담이 암몬을 쳐서 굴복시키고 3년 동안 매년마다 은 일백달란트, 밀 일만석, 보리 일만석을 조공으로 받아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요담시대 유다는 주변 나라보다 부강했습니다(대하27장)

우리는 여기서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살만큼 수입이 생겼을 때, 또는 세상적으로 자리를 잡고 걱정 없이 살 정도가 되었을 때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메달리며 기도하던 사람들도 재물과 권세가 생기면 하나님 대신 돈과 자기 힘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이걸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집안 사정이 좋아지면, 물질적 욕망이 커지고 세상 즐거움에 취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에 교회 다니던 분들은 새벽기도회에 참 열심을 냈습니다. 요즘은 그 시절보다 열심이 없습니다. 그 만큼 절박하지 않고, 또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좋은 직장 있고 돈을 잘 버는 분들은 절박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이며 내일을 위해 별로 기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잘 살든 못살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없는 것, 그래서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그것이 큰 잘못입니다.

이사야가 유다의 파멸을 예언한 때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되기 대략 150년 전이었습니다.  그 때 유다는 비교적 강성하여 주변에 겁낼 상대가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자기들을 충분히 지킬 만큼 강했습니다. 저 동쪽에 앗수르 세력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요담 치세 때는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무시했습니다. 지금 다 잘 되고 있는데, 뭐가 불만이라고 선지자라는 사람이 악담을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당한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호세아 왕 9년, BC722년에 앗수르왕이 군사를 이끌고 사마리아를 함락시켜 왕과 사마리아 거주민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왕하17장).  남왕국 유다도 136년 후, 시드기야왕 11년인 BC586년에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멸망했습니다. 도주하던 시드기야왕은 사로잡혀 목전에서 두 아들이 참수당하는 것을 본 후 두 눈이 뽑혀 쇠사슬로 결박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고관 대신들 백성들 상당수도 바벨론에 사로잡혀갔습니다(왕하25장).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하게 되는 복을 받게 해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나님께 복을 구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우상에게 복을 달라고 빌고, 하나님 대신 재물과 군사력을 믿고 사는 것은 하나님을 배시한 것과 같았습니다. 형편이 좀 나은 교우들은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기 바랍니다. 모아 놓은 재물도 있고 먹고 살만큼 수입도 생기면 절박한 마음도 없고 하나님보다 재물을 의지하며 살기 쉽습니다. 이런 마음 상태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유산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4장과 갈라디아서 3장에서 믿음의 차원에서는 예수를 믿고 의롭다함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아브라함에 하신 언약은 육신적 혈통인 유대인이 아니라 영적 혈통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택함받은 야곱의 족속과 같기 때무에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사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다고 방심해선 안될 일입니다. 온 맘 다해 여호와를 공경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