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믿을 만 한가?

요5:39-46

  기독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선악을 판단하며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믿고 따라야할 것이 무엇인지 분별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성경은 권위를 잃고 기독교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동안 기독교가 성경의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짓고 수정해왔는데 그 설계도가 엉터리라면 아무리 정성껏 집을 지었더라도 부실공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요한5장 39절에서 “예수님은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진실성을 믿을 수 없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증거능력이 부정될 것입니다. 성경의 진실성과 역사성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끝임없이 제기되어왔습니다. 일반 역사책속에선 발견되지 않는 사건이나 지명이 성경에 언급되는 것을 가지고 성경이 믿을 수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성경에만 언급된 사건이나 지명이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임을 보여줬습니다.

  성경 신,구약 원본은 기록되어진 후 1-2세기 어간에 모두 없어졌고, 현재는 원본을 베껴 쓴 필사본만이 수천 종 전해져 오는데 이것을 통칭 '사본'(寫本, Codex)이라 합니다. 신약성경은 수천종의 사본이 전해집니다. 이 사본들에 ‘고서검증법’(古書檢證法)을 적용해 정확성을 살펴보겠습니다. ‘고서검증법’에는 몇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로 사본의 수가 많을수록, 둘째로 원본과 사본의 시간적 간격이 짧을수록, 셋째 사본들간에 오류가 적을수록 원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다시 말해 더 정확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의 수 많은 고서 중에 가장 신빙성 있다고 알려진 책이 고대 그리스 역사문학가인 호머가 쓴 일리아드랍니다.

  그리스왕비 헬렌이 터키 해변에 있는 트로이왕국에 납치되어 그리스의 많은 군인들이 트로이에 가서 싸웠지만 안되자 나중에 오딧세이 장군이 제시한 목마전법으로 적진에 진입하여 결국 트로이 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의 대서사시입니다. 신약성경을 일리아드와 비교해 신약성경이 얼마나 정확한 지 보여주는 표가 있는데 그걸 요약하며 이렇습니다.

  일이아드의 사본 수는 643개, 최초의 사본은 500년 후인 BC400에 기록되었고 책과 책 사이의 오류는 5%정도입니다. 반면에 신약성경 사본은 무려 24,633권이나 되고 최초의 사본은 원본이 만들어진지(AD100년) 불과 25년 후인 AD125년에 기록되었고 사본 사이의 오류는 0.5%에 불과합니다. 이 검증법에 따르면 신약성경은 일리아드보다 8000배나 더 정확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는 0.5%의 오차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오차의 내용이 성경의 진정성을 부정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오차의 내용을 분석해보니, 오차의 80%, 즉 0.4% 오차는 철자의 잘못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교회에게 문안하노라”하는 내용이 “모든 고회에게 문안하노라” 이런 정도입니다.  나머지 20%의 오류는 접속사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예컨데 “A and B and C’라는 내용이 ‘A, B, C’ 이런 식으로 접속사가 생략된 정도입니다. 따라서 내용으로 보면 사실상 오류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 다음 구약성경의 신빙성을 살펴보겠습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현존하던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은 기원후 900년 경에 기록된 맛소라 사본 뿐이었습니다. 구약성경 마지막 책인 말라기가 BC40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맛소라사본은 그로부터 1300년이나 뒤에 쓰여진 사본이니 많은 오류가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의심받았습니다. 그런데 1945년 이스라엘 동부지역 사해바다 부근의 쿰란언덕에서 베드윈족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어떤 동굴 속에서 가죽 두루마리를 발견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구약학자가 연구해본 결과 BC125년 경에 기록된 구약성경, 사해사본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사해사본의 발견으로 원본과 사본의 간격이 1300년에서 270년 정도로 앞당겨졌습니다.

  사해사본과 맛소라사본을 비교해보았는데 놀랍게도 두 사본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맛소라사본은 사해사본으로부터 1100년 후에 기록되었는데 두 사본이 완전 동일했기 때문에 그 이전 성경의 원본과도 똑같았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은 모세와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과 내용이 똑 같은 성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고고학적 발굴결과를 참고해 구약성경이 과연 믿을 만한 지 살펴보겠습니다.

  갈대아 우르
  창세기 11장 31절을 보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가 하란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아브라함의 가족이 살았다는 ‘갈대아 우르’를 그져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쯤으로 생각하고 수천년을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1800년대 후반에 이르러 고고학자들은 지금의 이라크 땅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정말 ‘갈대아 우르’라는 지방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지도에서 보듯 메소포타미아는 메소(사이) 포타미아(강), 즉 강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그 끝 부분이 우르(UR)지역입니다(지도참고). 그곳에서 1800년대 중반부터 고고학자들이 탐사를 벌였습니다. 탐사결과 정밀한 수로를 만들어 농사를 위해 물관리를 한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점토 판에는 완벽한 지도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발견했습니다(발굴사진참고). 

  수메르 문명
  주택단지들을 파 들어가던 고고학자들은 깜짝 놀랐답니다. 갈대아 우르 지역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수메르문명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발굴 결과 건물 하나에 많게는 수백 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상당한 규 모의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던 유적이 나온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당시에 도자기로 구워만든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발굴사진참고).

  여기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됐다는 수메르 쐐기(Wedge)문자로 기록된 점토판들도 나왔습니다, 수메르 문자는 그 어순( 語順)이 서양이나 중동 사람 말이 아닌, 한국어와 제일 비슷하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문장이 주어+목적어+동사의 순이고요, --'가', --'을' 등의 토시를 붙여서 말을 구성하며,  '밭'을 '받'이라고 하고, '길'을 '길'이라고 하고, 아버지를 집에서는 '아바'라 하고, 남에게 말할 때는 '아비'라 하며, 높여 부를 때는 이름 뒤에 '님'자를 붙입니다. '하늘'을 '아눌'이라고 높여부를 때는 '아눌님', 혹은 '아누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귀하게 숭상하던 꽃이 'Rose of Sharon' 즉, '샤론의 장미'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꽃의 학명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ybiscus syriacus) 인데요,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의 학명과 동일합니다. 그 옛날 고토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바벨탑 사건 이후에 동방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된 언어와 생활문화와 그들이 사랑한 꽃을 가지고 동방으로 이주하면서 극동에 위치한 우리나라까지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라는 청년이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점토판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는데, '길가메시 에픽'에 관한 기록입니다.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노아 홍수 이야기와 거의 같답니다. 인류 최초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이 나온다는 것은 노아의 홍수 사건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란
  성경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가나안으로 가려고 우르를 떠난 후 중간에 하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창11:31). 하란 지역은 지금의 시리아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그 하란 지역에서 수메르 문명보다 몇 백년 앞선 문명을 발견했습니다.  그 문명을 세웠던 나라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에블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에블라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발굴된 점토판에 새겨진 기록을 분석해 보니 에블라 문명을 세운 왕의 이름이 '에벨'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발굴사진참고). 그들이 믿던 신의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야'였습니다. 아마도 '야훼' 하나님 이름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 아닌가 싶습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인'의 어원이 '에벨'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후손 '에벨'에서 기원원했다고 봅니다. 이 에벨이 큰 문명국가를 이루었고, '에블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정통 셈족의 국가였는데, 어떤 원인에 의해 수메르인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강 아래쪽의 더 강성한 국가 수메르의 사르곤 왕이 에블라를 멸망시킨 뒤 아브라함의 조상들을 우르 지역으로 끌고 갔는데 후에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태어났을 것입니다. 데라가 가나안까지 가지않고 도중에 하란에 머문 것은 자기 조상 에벨이 세웠던 찬란했던 나라 '에블라'를 알아본 건 아닐까요?

  헷 족속(힛타이트)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매장지로 헤브론 지역의 막벨라에 헷족속 에브론이 소유하고 있던 굴을 샀습니다 (창10:15). 이 밭을 아브라함에게 팔았던 사람들이 바로 헷족속(힛타이트)이라고 성경에 여러번 나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 이 힛타이트 족속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지금부터 100여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 수 천 년동안 사람들은 힛타이트 족속이라는 것은 하나의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그 때문에 성경이 허무맹랑한 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힛타이트 족속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헷족속이 발굴됨에 따라서 힛타이트 문명권이 규명되었는데, 오른 쪽에 터키 지도가 있습니다. 붉은 색을 칠해놓은 이곳이 힛타이트의 중심부입니다(지도참고). 힛타이트의 수도는 '핫투사'인데 터키의 현재 수도인 앙카라에서 동쪽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힛타이트는 터키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비옥한 초생달) 전체를 지배하고 심지어는 이집트까지도 점령하여 대제국을 형성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수도 ‘핫투사’에서 왕궁터와 거대한 신전 돌기둥이 발견되었습니다(사진참고).

  에돔족
  창세기 36장 9, 11절, 기타 여러 곳에 보면 에돔족속이 나옵니다. 에돔 족속의 최초의 조상은 이삭의 아들인 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서는 에돔이라고도 불리었고, 세일 산이라는 곳에 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어떻게 대를 이어 내려왔다는 것이 성경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에돔족속이라는 것도 성경에만 기록되어있었지 다른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천년간 성경이 허위라고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세일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탐사하다가, 에돔족속이라는 집단이 그곳에서 수천 년간 거주했다는 주거지가 발굴되었습니다. 붉은 바위로 된 협곡인데요, 그 바위를 뚫고 집도 짓고, 신전도 짓고, 무덤도 만들고 하면서 오랜 세월동안 여기에서 거하고 살았습니다. 에돔족속은 BC 3세기경에 동서양 무역사업으로 굉장한 부를 축적하고 유능한 석공들을 고용해 바위산을 조각해 페트라 폴리스를 건축했습니다(발굴사진참고).

  여리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장군의 인도로 팔레스틴 지역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에 있는 성중에 최초로 공격한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다른 성은 열심히 전쟁을 해서 빼앗았는데, 여리고 성은 저절로 무너져 내린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게 또 성경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여호수아 6장 15-17절을 보시면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입니까?

  여러 고고학자들과 대영 박물관 탐사팀 등등이 19세기부터 열심히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견을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이와 같은 사실이 발굴되었습니다. 고고학자 가스텡과 여러 학자들은 여리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방법으로 정복되었다는 증거들을 찾아낸 것입니다. 대영박물관의 탐사팀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여호수아시대에 강도 6.0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파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지질구조가 발굴되었습니다. 발굴된 성내에는 많은 식량들이 남아있었습니다(발굴사진참고). 고대의 전쟁은 오랫동안 성을 에워싸고 전쟁을 하기 때문에 식량이 바닥나게 됩니다. 그제서야 항복을 하고 전쟁이 끝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리고성은 식량이 그대로 남아있는 채로 정복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여리고 성의 함락은 성경이 설명하는데로 지진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에 대해서도 고고학적 발굴이 있었습니다. 성경엔 어린 소년 다윗이 불레  셋의 거인 장수를  물매를 들고 나가서 한 방에 정통으로 맞추어 골리앗을 쓰러뜨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믿기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1993년 5월에 고고학자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마에 돌이 박혀있는 거인의 해골을 발견했습니다(발굴사진참고). 이마 좌우거리를 측정하여 거인의 키를 계산해 본 결과 그 키가 2미터 90센티로 추정되고 BC 1000년경 다윗시대에 죽은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 해골의 주인은 골리앗의 유골이 확실시 된다고 발표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침공
  성경엔 북왕국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된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앗시리아의 침공시에 남 유다는 힘이 약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약 136년을 더 견뎌내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앗수르가 유다를 가만 놔 뒀다고 볼 수도 없고, 힘도 없는 유다가 앗수르 군대를 물리쳤다고 믿을 수도 없어 성경기록이 엉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 발굴된 실린더처럼 생긴 앗시리아의 비석에서 성경의 기록과 똑같은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앗시리아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러 갔다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오른 쪽 그림이 산헤립의 원통형 비문입니다(발굴사진참고).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점토판에서 발견된 놀라운 사실중의 하나는, 열왕기하 20장 20절에 보면 산헤립의 침공 때 히스기야왕이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서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것이 고고학적으로 그대로 발굴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곳이 예루살렘의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기혼샘에서 수로를 파서 물이 성안으로 들어오게 한 것이 바로 이 실로암이라는 인공 못입니다. 예수께서 맹인의 눈에 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해서 눈을 뜬 기적의 못이 바로 이곳이지요(자료사진참고). 지금도 눈병있는 사람들은 이 물 떠간다고 난리랍니다.

  바벨론과 다니엘
  다니엘서는 허무맹랑한 사실이 너무 많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는데요, 한 예를 들면 다니엘서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외국의 포로중의 일부를 잘 먹이고 갈대아 학문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는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너무나 악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포로를 잘 먹이고 가르쳤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후에 고대 바벨로니아 지역을 발굴하다가 특별한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비석에는 포로로 잡혀 온 왕족과 귀족에게 갈대아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된 건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잘 먹이고 가르쳤다는 성경의 기록이 실제로 증명된 것입니다.
 
  또한 금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고 다니엘의 세 친구를 용광로 불 속에 집어넣었다는 기록이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조사 결과 거대한 용광로가 발굴되었는데, 그 용광로의 용도에 대해 쓰여진 비석에 보면 바벨로니아의 신에게 절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화형 시키는데 사용되는 용광로라고 기록되어 있었답니다. 성경의 이야기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타는 용광로 속의 세 명의 히브리인의 이야기는 적어도 사실에 근거하였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또 성경에는 갑자기 느부갓네살왕이 미쳐서 이슬을 묻혀가면서 풀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제정신을 차려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벨로니아의 고고학적 발견 가운데 느부갓네살 왕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명각이 발견되었는데(자료사진), 거기에 다니엘서의 기록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답니다. 왕이 미친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을 차려 돌아온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메소포타미아 고고학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였던 W.F. Albright 박사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고고학에 의하면 구약전승의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와 19세기의 중요한 역사학자들은 성경에 대한 과다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 의심들은 지금도 종종 제기되고 있는데, 그러한 의심들이 점차 근거가 없는 것들임이 밝혀지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이 거듭되면 될 수록 성경의 내용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어서 역사적 사실로서의 성경은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오늘날 최고의 고고학자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팔레스틴의 고고학 전문가인 넬슨 글루엑 박사도 평생 성경고고학을 연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부인한 고고학적 발견은 전혀 없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물들이 성경의 역사적 진술들을 개괄적으로, 혹은 세세하게 확증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나는 30년 동안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삽을 들고 발굴 작업을 해오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 있어서 나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약성경은 물론 구약성경 역시 고고학적으로 검증된 믿을만한 책입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성서 고고학의 발굴은 성경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되었다는 것을 입증해 줄 것입니다.

  (자세한 설명과 사진 자료는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세요)
  http://www.aspire7.net/belief-1-4-b.html#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