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서로 섬깁시다

골로새서5:13-26

오늘은 교회에서, 목장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안에 대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르지만 인격적 차원에서 본다면 세상 사람들과 수준이 비슷합니다. 윤리나 도적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한 주 동안 살아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교회엔 크고 작은 분쟁과 다툼이 생깁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는 가난한 과부들을 도와주는 문제로 불만이 생겨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일이 생겼습니다(행6:1). 고린도교회에서는 교회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며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싸웠습니다(고전1:12). 갈라디아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교 개종자들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교인들이 서로 다투었습니다(갈4:10). 빌립보 교회에서도 리더쉽에 순종에 대해 문제가 생겨 원망과 시비가 일었습니다(빌2:12-14). 골로새교회에서도 교인들이 분과 악의와 훼방과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말에 서로 거짓말을 하고 그런 것으로 나옵니다(골3:8,9).

바울 사도는 교회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를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욕망이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갈5:16-17). 자기가 옳다고 생각해서 다투더라도 다툰다는 것은 결국 육신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예수님이 원하는 해결책은 서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한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먼저 손을 내 밀어 용납하고 피차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또는 목장에서 교인들이 다투고 갈등 상황을 만들고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옳다고 해도 이런 갈등을 만들면 결국 교회에 상처를 주게 되고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옳으냐 아니냐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는 그것이 주님께 죄를 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에스겔14장 1-5절을 보면,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에스겔 선지자를 찾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는 것 자체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음 속에 우상을 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 속에 우상을 품고 교회 나와 주의 음성을 들려달라고 한다면 그게 옳은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마음 속의 우상부터 깨뜨려야 할 겁니다.

우상은 우리 마음의 중심의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가로채가는 것입니다. 권력, 칭찬과 인정을 요구하는 자아, 자기를 높이는 교만, 재물, 지식과 명예 등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고 있지만, 마음 속에 ‘자아’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자기 영광을 추구한다면 자아 우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우상숭배자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기 생각에 맞을 경우, 자존심이 허락하는 정도, 손해보지 않는 범위에선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지만 그 반대 경우일 때는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나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일곱번씩 이른 번이라도 용서하고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죽어도 못하겠다고 한다면 주님보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더 높이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려고 하지만 감정이 상해서 잘 안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이래야 맞는 것이죠.

이 말씀 앞에서 우상숭배자라고 느껴진다면 지금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계속 그런 태도로 주님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진노아래 살겠습니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용서와 사랑을 결단하고 성령님께 상한 마음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까? 감정이 상했을 경우는 생각대로 잘 안될 수 있습니다. 남탓하고 비난의 말을 쏫아내고 싶어하는 자아를 부정하고 십자가에 못 밖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누구나 교만한 자아와 육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는 영적 전쟁을 치룹니다. 바울 사도는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전9:27), “나는 매일 죽노라”(고전15:32)고 했습니다. 죄에 물든 우리 자아의 교만함은 뼈속까지 스며있어서 눈물로 통곡하며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당하고 자존심 상하게 만든다고 느끼면 불 같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원한을 품습니다. 내가 아직도 이런 사람인가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입니다. 상한 감정이나 교만한 생각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불신자와 다를 것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말 겁니다. 그래서 매일 죽어야만 이걸 이겨낼 수 있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육의 자아를 죽이고 성령이 주도하게 하는 길 밖에 없다는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육’은 물질적인 뜻과 영적인 의미로 구분해서 사용됩니다. 물질적 개념으로 육(체)은 피부, 근육, 장기, 뼈를 가리킵니다. 영적 개념으로 육은 죄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부도덕한 자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말하는 육은 물질적인 몸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육인 자아입니다. 자아는 자신을 높이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시당하면 감정이 상하고 그런 사람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살면서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한 두 명쯤은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 컨텍스트를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를 무시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용서할 수 없다고 해도 잘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고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된 사람들은 그래선 안됩니다. 분쟁과 다툼은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주님의 몸을 나누어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누가 다투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때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기도 합니다. 모른척 할 수 없습니다. 손이 죄를 지면 결국 내가 죄에 빠지는 것처럼 우리가 모두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에 같은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그게 교회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갈5장 13절 이하에 보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합니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성취된다고 합니다. 자기를 옳다고 주장하며 다투는 것은 서로 멸망하는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원수 맺는 것, 분내는 것, 분리하는 것은 우상숭배, 이단, 음행과 똑같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옳다고 주장하며 다투는 것은 헛된 자아의 영광을 얻으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아를 부정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해야지 자아의 욕망에 굴복해서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며 다퉈서는 좋을 게 없습니다. 이게 얼마나 유치하고 부끄러운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다른 지체들이 그러고 있는 걸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자신의 모습이 보일 겁니다.

육체의 욕망을 이기는 길은 성령께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성령께 지배당하면 육체의 욕망이 소멸됩니다. 자아는 원래 욕망의 편이기 때문에 의지로 이겨내려고 해봐야 잘 안됩니다. 성령을 따라가는 표지는 사랑과 용서입니다. 상한 감정으로는 용서하기 힘들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용서할 힘이 생깁니다. 마음이 상해 용서하기 힘들면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기 바랍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면 사랑과 용서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제가 오늘 분쟁과 다툼에 대해 말씀 드린 것은 우리 교회에서도 지체들간에 다툼이 생기고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갈등에 빠지고 친소관계에 따라서 편이 갈라지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조언하는 것입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누가 옳으냐 그런 것을 따져보는 것은 크게 도움이 안됩니다. 저도 전에 그런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잘못한 사람이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교회를 떠나게 만듭니다. 그러니 서로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이 부족해 생긴 것이라 반성하고 서로 용서를 구하며 사랑으로 종노릇하기로 결심하기 바랍니다.

화해하려고 다가서는데 상대가 거부하면 기도하며 기다리기 바랍니다. 상한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잘못해 놓고 더 버틴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 풀리도록 시간을 주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형제나 자매들 간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합니까? 서로 원수가 되길 바랍니까? 결국 용서하고 화해하잖습니까? 가족은 그런 것입니다. 교회가족도 그렇게 지내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교회를 분란에 빠지게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맙시다.

자녀들이 다투면 부모가 모른척할 수 없잖습니까? 부모라면 방치해서 상황을 악화시켜도 안되겠죠. 목회자의 입장도 그런 것입니다. 부모가 바라는 최선은 누가 잘못인지 가리는 것이 아니고 서로 잘 지내는 것입니다. 목회자나 목자는 믿음과 인격의 수준에서 사실상 교인 여러분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족한 만큼 목회자나 목자도 부족합니다. 피차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양들도 목회자와 목자의 부족한 점을 사랑으로 감싸주기 바랍니다. 완전해서 목사나 목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5월은 특히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달입니다. 어린이 날, 어머니 날, 목회자의 날이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며 사랑으로 섬기며 복된 한 주간 보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