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따라 살면

빌레몬1:8-22

동성애와 동성결혼합법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갈 것인 것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복음이 어떻게 사람의 심령을 바꾸는 지, 복음이 어떻게 세상 속에서 우리 삶의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 문화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대체로 크게 세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세가지는 양 극단적 입장과 그 중간 어딘가 자리 잡는 위치입니다. 첫째 극단적 극단적 입장은 세상 일에 대해 물러서는 태도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기독교는 세상을 고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은 보통 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은 문화에 대해 방임적 태도를 취하며 교회가 할 일은 세상을 고치는 게 아니고 전도화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다른 극단적 입장은 소위 승리주의 태도입니다. 이것은 문화를 변혁시키자는 주장입니다.  자유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이 입장을 취하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힘(권력)으로 사회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제3의 길은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사람들이 복음을 따라 살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강조한 것처럼, 사람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지만(노력을 잘 해서가 아니라), 믿음은 그냥 그대로 머물러만 있는 게 아니고 참 믿음은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어떻게 변화에 기여하는지 살펴봅시다. 우선 복음은 겸손의 마음을 갖게 하여서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상관없이 주위 사람들에 의해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과도 겸손하게 협력을 해서 그들이 불신자라 해도 함께 공동의 선을 이루어가게 합니다.

둘째로 복음은 참 그리스도인에게 용기와 통찰력을 주어서 겸손하게 공손하게 문화를 바른 길로 도전할 수 있게 합니다. 예컨데 세상 일을 보면, 지금 돌아가는 방식보다는 뭔가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자각합니다. 예컨데 공권력이나 정부 예산이나 이민정책이나 이런 게 지금 방식보다 뭔가 좀 달라져야 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력을 하는 동시에 공손한 도전을 하게 만듭니다.

셋째로 복음의 원리가 그리스도인들의 리더십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나름의 지위에 올라 리더쉽을 발휘하며 삽니다. 세상 지도력은 힘의 원리에 의해 자기 유익을 구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말하자면,  유익한 것은 자기가 취하고 불리한 것은 아랫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복음의 정신을 따라 사는 리더는 그런 세상 리더와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대신에 약자를 보호하고 때로는 책임을 대신 져주기도 할 것입니다.

밀로스라브 볼프는 [공적 신앙](public faith)에서 빌레몬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입니다. 빌레몬은 노예주인이었는데 그의 노예 중에 오네시모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서 도망쳤다가 무슨 이로 잡혀와 감옥에 있던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복음으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출감하게 된 오네시모에게 주인 빌레몬에게 돌아가라고 조언했습니다. 도망친 노예로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형제로 대해주도록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빌레몬은 바울이 아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밀라스라브 볼프는 바울과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의 관계 또는 변화에 주목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바울이 도망 노예를 이렇게 돌려보낼 때 노예제도 자체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여전히 빌레몬의 노예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빌레몬에게 “너도 기독교인이고 오네시모도 기독교인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네가 그를 주 안에서 형제이자 동료 인간으로서 대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밀라슬라브 볼프는 지적하기를 바울은 노예제도를 안으로부터 철저하게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에는 여전히 주인이 있고 노예가 있지만, 그 사이 권력이 사용되는 방식은 주인과 종의 관계를 형제로 복음이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뉴욕 멘하튼 리디머교회 예화입니다. 1992년쯤 리디머교회가 아직 초창기일 때, 믿음이 없어 보이는 어떤 여자분이 몇 주 동안 교회에 왔길래 팀 켈러 목사님이 어떻게 교회를 찾아오게 되었는지 물었답니다. 그 여자분은 자기는 어떤 TV네트웍에서 일하는데 얼마 전에 정말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러서 정말 하마터면 일자리를 잃을 뻔 했는데 자기 상사가 부장에게 가서 얘기하길 이것이 그 여자분 잘못이 아니라 자기 잘못이라며 책임을 스스로 졌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상당히 인정받고 또 관계가 좋아서 그것으로 그 잘못에 대해 좀 무마할 수 있어서 이 여자분의 실직을 모면케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분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잘못을 대신 담당해준 사람을 찾아가 말했답니다. “저는 이 치열한 뉴욕에 오래 살면서 제가 한 일을 가지고 자기 업적을 쌓는 사람들만 계속 만나왔습니다. 반대로 제 자신의 잘못을 대신 져주는 그런 윗사람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윗 사람이 한 잘못을 제가 져왔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해주셨느냐고 거듭 묻자 마침내 그 남자분이 대답하기를  “저는 사실 기독교인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바로 누군가가 내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 주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다만 이렇게 받은 대로 살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여자분이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묻고 그렇게 해서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깊은 의미를 이해한다면 복음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죄인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이 복음의 겸손을 알게 하고, 또한 복음으로 완전히 의롭다 여김을 받지 못했다면 갖지 못했을 용기를 갖게 하고, 그래서 의미 있는 삶이란 어떤 직위에 있느냐 얼마나 성공했느냐 얼마나 돈을 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옳게 사느냐에 있음을 알게 하고, 복음이 우리들의 인간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사람들을 이용하기 보다는 섬기자로 살게 만든다면 그 자체로 복음이 복음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즉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도록 세상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동성애, 동성결혼용납 같은 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곳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모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미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복음은 단지 우리 죄를 사하고 우리가 주님을 알게 하고 또 죽을 때 주님 품에 안기게 할 뿐 아니라, 단순히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떼어 놓는 구원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사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구원입니다. 우리는 결국 같은 구원으로 주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고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끝에 세상을 바꾸어서 새롭게 하실 것을 압니다. 저희는 지금 주님께서 우리를 여기로 인도하셔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사역을 통해 자신이 받은 은혜를 다 함께 나누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저희는 주께서 당신의 자녀가 하는 일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사용하실 것을 압니다. 저희는 주께서 저희가 더 잘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기를 원하며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이 보다 더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우리가 아버지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