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라면 이래야 한다

사도행전2:37-47

빌 하이벨스 목사님 부부가 쓴 윌로우크릭 커뮤니티라는 책을 보면, 현대 미국인들이 교회에 안나가는 가장 흔한 대답을 보면 첫째가 ‘교회는 일생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불평은 ‘교회 예배가 생명력이 없고 지루하며 구태의연한 것들 뿐’이는 점입니다. 세번째 불만은 ‘우월감에 빠진 목회자들에 대한 반감’이라고 합니다. 네번째는 교회가 언제나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랍니다.  이걸 다 요약하면, 설교는 내 생활과 상관없어 마음에 와 닿지 않고 매주 예배는 뻔하고 지루하며 두드려 맞은 기분으로 교회를 나서게 만들면서 힘들게 번 돈을 교회 돕는 일에 내 놓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남아 있는 사람도 매주 교회 나오기가 싫다는 것이죠.

지난 주에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를 돌아봤습니다. 제 메시지는 여러분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늘푸른교회 예배는 영혼을 소생시키는 생수를 공급하고 있는지, 저는 교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지, 헌금을 강요 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욕심을 내려놓고 영혼을 살리는 교회가 되도록 힘쓰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런 교인인가?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머리 속에 있는 이상적인 교회가 아니라 실제 눈에 보이는 교회모습에 영향을 받습니다. 보이는 만큼만 실재하는 교회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사랑을 많이 말하고 강조해도 실제 교인 중에서 사랑을 그런 사랑을 볼 수 없다면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곧 예루살렘 교회는 완벽해서 이상적인 그런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된 교회당 건물도 없었고, 교회 재정도 그렇게 넉넉하지 못했고 훈련된 교사나 목자들도 턱 없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복음에 충실하고 진지하게 배우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가 있고, 어려운 교우들을 돕기 위해 자기 재산을 팔아 헌금하는 섬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교회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는 그래야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예수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려 뉘우치며 회개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베드로의 권면에 따라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침례받습니다. 상상이 갑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작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 단위로 가정에서 또는 성전에서 모여 떡을 떼며 교제하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또 누군가 사랑의 수고를 다합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시고 그걸 목도한 사람들은 경외심과 믿음이 생깁니다.

그 뿐 아닙니다.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가족의식을 갖게 된 사람들은 교인들 중에 어려운 사정을 듣고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와 나눠 쓰고 자원해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교우들을 돕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부모 형제도 아닌 남을 위해 자기 밭을 팔고 집을 팔아서 그 돈을 선뜻 내어 줄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하지만 교회는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입니다. 이런 분들이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목자가 되어 교회를 섬긴다면 그런 교회가 어찌 부흥되지 않겠습니까?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기고 그런 좋은 소문이 지역사회에 퍼지고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헌금을 쌓아 놓고 목사가 그 돈을 맘대로 쓰고 그러다가 교회가 싸우고 그런다는 소문이 세상에 퍼지는 것과 비교해 보세요.

예루살렘교인들은 예수 믿고 함께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 좋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빼놓고 시간만 나면 교인들이 집에서든 성전에든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교제했습니다. 이게 교회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교인입니다. 주일 교회 나오는 것도 억지로 나오는 것처럼 늦게 왔다가 어느 새 빠져나가고, 셀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10번 권하면 겨우 한 두 번 나오고 이런 식으로 교회생활해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불신자처럼 교회생활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재미를 느끼고 그래서 좋아하게 되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을 좀 덜 자더라도 하고야 마는 게 인간의 속성아닙니까?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밤을 샙니다. 재밌고 그 순간만큼은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죠. 그리스도인에겐 예배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지 말라고 위협하며 잡히면 감옥가는데도 숨어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런 겁니다. 그 정도가 되니까 불신자도 감동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교회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도 안팎으로 거센 저항을 받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불신자처럼 살면서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담대한 마음으로 세상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여 영생의 소망을 갖도록 도와주고, 우리 스스로는 주님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도록 검소하게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세상 욕심을 너무 많이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그렇잖아도 교회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젠 대 놓고 교회를 욕하며 공격합니다. 교회가 제대로 하면 교회를 반대할 수는 있어도 비방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욕을 먹는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 때문이 아니고 기독교 신앙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늘푸른교회가 생각해야 할 것은 전도해서 교인수를 늘리기 앞서 우리가 먼저 진짜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늘어날 때 숫자만 많아져 비대해지지 않고 주님의 몸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빌 하이벨스목사님은 ‘이것이 교회다’ 면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팀과 캐런은 지난 2년 동안 소그룹 조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간과 정열과 사랑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 병상에서 운명하는 캐런을 둘러싸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스물 아홉살 백만장자, 출세가도를 달리는 중인 젊은 관원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께서 그의 마음 속에 말씀하십니다. “즉시 하라. 그래서 계명을 실행하라” 때는 12월 교회는 건축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 관원은 더러운 극장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다 떠난 흔적들을 둘러봅니다. “즉시 하라”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뭔가를 만지작거립니다. 헌금 주머니가 돌려졌을 때 그는 거액의 돈을 무명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앤지는 월요일 밤이면 늘 교회 건물 뒷편에 자리잡은 관리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미혼모를 위한 사역에 참석합니다. 월요일 늦은 밤 시간에도 자원봉사를 하는 정비사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얼굴에 기름을 잔뜩 바른 체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등을 대고 그녀의 차에 유조인트를 갈아줍니다.

시카코 베어즈의 전 라인백(미식축구에서 스크럼라인의 후방을 지키는 선수) 마이크 싱글테리가 공개적으로 가정, 신앙, 그리고 용서에 대해 간증을 합니다. 그를 아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싱글테리가 간증한다고 가족이나 친구의 권유를 받아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중엔 마이크 같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교회에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람도 끼어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교회에 다시 나가볼까 관심이 생겼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수잔은 필요 이상의 많은 물품을 구매합니다. 점원이 ‘평소보다 많은 물건을 사네요” 수잔은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떡입니다. 주일, 수잔은 산 물건들을 검은 봉지에 담아 주차장 뒷편에 놓고 예배보러 갑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수천개 정도 되는 그런 봉지들을 트럭에 싣고 식표품 창고로 가져갑니다. 이렇게 모인 식료품들은 매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뉘어집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이 강단에서 선포됩니다. 갑자기 교인들이 자리를 뜹니다. 전화를 거는 사람, 아예 교회당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빈 교실로 가서 뭔가 신중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상의 사례들은 어느 교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라면 이래야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값비싼 복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누구도 아닌 성령께서 주도하고 계신 것이 보여야 합니다. 교회는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데 전념하는 사람들로 차고 넘쳐야 합니다. 교회는 함께 모여 떡을 떼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는 기적과 표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재산이라도 내 놓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믿고 구원 얻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교회는 불신자까지도 감동시켜야 합니다. 

늘푸른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한 번에 한 사람씩 그렇게 변하고 헌신하면 됩니다. 제일먼저 저부터 시작합니다. 타협 없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제자답게 주님을 따르고 기쁘고 즐겁게 교회를 섬기며 다 내어 주고 섬기는 목자가 되기를 힘쓸 것입니다. 저와 함께 목자 여러분도 복음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기 바랍니다. 목자는 헌신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