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함께 받읍시다

사도행전7:59


성령과 동행하며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서 병자를 고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능력의 종으로 인정받고 여기 저기 강사로 초청받고 영향력있는 교단의 지도자가 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국가적으로도 유명인사가 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요즘은 그런 기대를 갖기 쉽지만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에선 성령의 능력받고 충만하다고 해서 세상적으로 명성을 얻고 부와 인기를 누리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서 앉은 뱅이를 고치고 성령을 받게 하고 수 많은 사람들을 회개하고 돌아오게 했지만 그로 인해 부와 명성과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스데반을 예로 들어보면 어떻습니까? 스데반은 단연 돋보일 만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교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6장 8절을 보면,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 가운데 행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도가 아니고 안수받은 목사도 아니고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러분처럼 생계를 위해 자기 일을 하며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었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이었지만 그로 인해 유대인들의 표적이 되어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대적하던 무리들이 백성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붙잡아 공회에 세웠습니다. 거짓증인들이 나서서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비방했노라 주장하게 했습니다. 스데반은 중상모략을 받고 돌에 맞아 죽음을 당했습니다.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을 당할 때 주님은 무얼하고 계신지 참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필립 얀시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계셨습니까?] 이런 책을 써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악인이 득세하고 의인이 그들의 손에 재산을 빼앗기고 죽음을 당할 때, 사단에게 종노릇하는 포악한 권세가 교회를 무자비하게 탄압할 때, 하나님이 없다며 불의한 재물로 온갖 사치 속에 장수하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허덕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볼 때, 예수믿으면 뭔가 잘되고 성령충만해지면 형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항의가 저절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스데반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성령충만하고 능력받는 건 좋지만 그 결말이 스데반처럼 끝나고 베드로나 바울처럼 살다가야 하는 거라면 성령충만 받는 것 한 번 정도 생각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요? 어떤 분은 좀 심하게 현대 교회 목사님들이 교인들을 속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수믿으면 복받아서 세상에서 모든 게 다 잘 될 것처럼 말한다는 거죠. 사실은 예수 잘 믿으면 세상에선 고난당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빼놓고 말이죠. 로마서 8장 17절을 보면,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정직하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상속받으려는 사람은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에겐 자기 잘못 아니라도 고난 당하는 일이 있다는 거죠.

1921년에 선교사 플러드(Flood) 부부가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고국 스웨덴을 떠나 아프리카 콩고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에릭슨 부부를 만나 넷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다 선교본부를 떠나 오지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원주민 마을에 도착했는데 추장이 토속 신들과 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봐 선교사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산등성이에 올라가 마을과 떨어진 곳에 진흙으로 움막을 지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했지만 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갈 수 없는 선교사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일주일에 두번 닭과 계란을 팔러 오는 소년이 전부였습니다. 플러드 부인은 그를 예수님께 인도해보기로 결심하고 전도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네 사람은 차례로 말라리아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에릭슨 부부는 더 견딜 수 없어 선교본부가 있는 곳으로 철수했습니다. 플러드 부부는 계속 그 마을에 남았습니다. 그런 중에 플러드 부인은 움막에서 임신하고 출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쯤에 추장의 마음도 누구러져 산파를 보내 도와주었습니다. 플러드 부인은 딸을 낳아 ‘아이나’로 이름지었습니다. 그러나 플러드 부인은 출산 후 17일 만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플러드는 화가 폭발했습니다. 그는 오지에 27살 된 아내의 시신을 묻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와 선교본부로 돌아왔습니다. 갓 태어난 딸을 에릭슨 부부에게 맡기고 화를 터뜨렸습니다. “난 스웨덴으로 돌아가겠소. 나는 아내를 잃었고 이 아기는 도저히 키울 수 없소. 하나님은 내 인생을 망쳐버렸소” 그는 하나님을 위해 일어섰지만 아내를 잃게 된 상황에 화를 이기지 못해 소명을 버리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플러드가 스웨덴으로 떠난 지 8개월이 못돼 에릭슨 부부도 알 수 없는 병으로 둘 다 세상을 떠나 버렸습니다. 돌도 안된 ‘아이나’는 어떤 미국인 선교사 부부에게 맡겨져 자라다 3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 후 아이나는 미국에서 자라며 미네아폴리스의 성경학교를 다녔고 거기서 듀이 허스트라는 청년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수년이 흘러 아이나는 첫 딸과 둘째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남편 허스트는 시애틀지역의 한 기독교 학교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아아나는 우체통에서 스웨덴에서 발간된 종교잡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잡지를 넘기다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허름한 움막 앞에 무덤이 있고 거기 하얀 십자가에 플러드란 이름이 보였습니다. 아이나는 학교로 달려가 스웨덴 말을 아는 교수에게 기사를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수는 다음과 같이 기사 내용을 요약해주었습니다. “ 이것은 오래 전에 콩고의 한 마을에 온 선교사의 이야기 입니다. 그들은 한 아기를 낳았고… 얼마후 산모는 죽었고… 한 아프리카 소년이 예수님께 인도되었고… 백인 선교사들이 모두 떠난 후에 이 소년이 자라서 추장을 졸라 학교를 세워… 그는 학교 어린이들을 모두 그리스도께 인도했고… 그 아이들이 또 부모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고… 나중에 추장마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마을에는 600여명의 신자가 있답니다.”

물론 이 결과는 플러드 부부의 희생의 결과였습니다. 허스트부부는 결혼 25주년에 학교의 도움을 받아 스웨덴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나는 수소문해서 아버지 플러드를 찾아갔습니다.플러드는 재혼해서 네 자녀를 더 두었지만 이젠 술로 남은 삶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과거의 상처로 가슴이 멍든 채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절대로 부르지 말아라. 하나님은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단다” 

아이나는 술병이 뒹구는 아파트 방 허름한 침대에 누워 있는 73세된 노인의 곁으로 다가가 “아빠?” 불렀습니다.  플러드는 딸의 목소리에 돌아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얘야, 난 정말 너를 버릴 생각은 아니었단다.” “아빠, 괜찮아요” 그녀는 아버지를 양팔로 감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저를 잘 돌보아 주셨어요”. 이 말에 아버지는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망각했단 말이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 삶이 이렇게 되고 말았단 말이다” 그는 벽을 향해 돌아 누웠습니다.

아이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아빠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데 실화예요. 아빠는 아프리카에 헛되이 가신 게 아니예요. 엄마도 헛되어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어요. 엄마가 주님께로 인도한 그 소년이 자라서 그 마을 전체를 주님께로 인도했어요. 아빠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기에 이제는 600여명의 그곳 주민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어요.. 아빠 예수님은 아빠를 사랑하셔요. 아빠를 한번도 미워하신 적이 없어요” 그 노인은 다시 돌아누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딸의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날 오후 플러드는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딸은 며칠 동안 머물다 미국으로 돌아왔고 플러드는 몇 주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허스트 부부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전도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때 자이르(콩코)의 11만명의 침례교인을 대표해 참석한 지도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허스트부부는 그에게 다가가 플러드 선교사 부부를 아는 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네 알고 말구요, 나를 예수님께 인도한 분이 바로 플러드 부인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당신 부모님에게 식료품을 배달하던 그 소년이었습니다. 당신 어머님에 대한 추억과 그 무덤은 마을 모든 사람들로부터 귀하게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꼭 아프리카에 한 번 오셔서 우리 마을을 방문해주기 바랍니다”

훗날 허스트 부부는 직접 그 곳을 방문해 부모님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나는 하얀 십자가가 서 있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섰습니다. 그는 땅에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땅은 그녀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늦은 예배시간에 그 목사님은 요한 복음 12장 24절과 시편 126편 5절을 읽어주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여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플러드 부인의 희생은 스데반의 희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30대 전후에 고난 속에 인생을 마쳤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살다 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젊어서는 육신의 욕망에 휘둘리며 죄악의 쾌락을 누리다가 세월이 흘러 늙어서 육신은 쇠해 병들고 추한 모습만 남고 한 게 없어 주 앞에 서기에 부끄러움 뿐인 인생이라면 오래 사는 게 복입니까? 지금부터라도 정신차립시다.

늘푸른교회 청년 여러분!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의 재물이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재능을 아낌 없이 투자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는 돈 없고 시간 없어서 봉사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렇게 사는 건 여러분에게 해롭습니다. 물통의 물처럼 언젠가 바닥이 보이는 게 인생입니다. 다른 곳에 다 쓰고 바닥이 보일 때 주를 위해 살지 못한 걸 후회하면 때가 늦습니다. 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때와 재물이 남아 있을 때 그걸로 주님을 섬기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읍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당하는 고난이 주님의 나라에서는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