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

사도행전3:11-19

네로 황제와 같은 세상 권세자들의 박해와 끊임없이 계속된 사단의 파괴 공작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바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군병들에게 넘겨줄 때 제자들은 겁을 먹고 다 흩어졌습니다. 제자들은 메시야로 믿고 따르던 스승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자 낙심하고 집에 돌아가 다시 고기나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두 달 사이에 투사로 변했습니다. 베드로는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증거하고 야고보는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참수형을 당하고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이 죽음을 감수하며 예수님을 증거하게 만든 것은 부활 때문이었습니다.

1. 예수님 장례식
안식일이 시작되기 직전 금요일 해질 때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돌려받아 돌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이 아리마대 요셉은 공회원으로 유대사회의 지도급인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의 이목 때문에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승이 죽었다는 소식에 더 이상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숨기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용기를 내어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의 시신을 넘겨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에는 같은 공회원으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았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 사후에 ‘coming out’한 셈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과 증인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된 상황에 대한 기록이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요한복음 20장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안식일이 끝난 주일 새벽에 먼저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였습니다(막16:1). 그녀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재료라도 더 넣고 싶어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무덤에 가까이 가서 보니 이상하게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옆으로 치워져 있었습니다. 무덤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안보였습니다.

이 여인들은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여인들의 말대로 무덤 안에는 정말 예수님의 시신은 없고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만 놓여있었습니다. 머리를 감쌌던 수건은 세마포 있는 곳에 함께 있지 않고 딴 곳에 개켜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도 베드로나 요한 모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요20:9).

두 제자는 영문을 모른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아는 그냥 돌아갈 수 없어 무덤 밖에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리아는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 시신이 뉘었던 머리 편과 발 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왜 거기서 울고 있느냐?"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님의 시신을 가져다 어디 두었는지 알 수 없어 그렇습니다" 대답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의 뒤에 서계셨지만 마리아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설마 예수님이 살아나 거기 계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분이 마리아에게 “여기서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말을 건넸습니다. 마리아는 묘지관리인인줄 알고, “당신이 (주님의 시신을)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러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부탁했습니다. “마리아야!” 낮 익은 목소리였습니다. “주님의 음성인데?” 마리아는 돌이켜 “선생님이세요?”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께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해라” 말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기쁜 마음으로 놀라운 이 소식을 얼른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머물다 하나님께 올라가셨습니다. 기록상으로도 11번 이상 여러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일 저녁 제자들에게(요10:19), 8일 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에게, 500명에게 일시적으로, 승천하신 후 특별히 바울에게까지.

3. 증인 활동
주님의 부활과 승천은 제자들에게 영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믿게 만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먼저 가신 하나님의 나라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은 우리가 한국에 가는 것처럼 현실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극한 반대와 박해속에서 제자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부활의 신앙이었습니다. 그 다음 부활의 신앙 위에 임한 성령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오신 이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에 주목해보세요.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신자들은 누구든지 사단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 믿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믿음의 원리를 잘 깨닫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무시하도록 속삭입니다. 이런 마귀의 활동을 막고 예수 믿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 이름으로 일으킨 것은 그 앉은뱅이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3시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성전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앉은뱅이가 있던 미문은 성전 안뜰과 바깥뜰 사이에 있는 동문으로 구리와 금으로 만들어져 아름다운 문으로 불렸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그 전에도 날마다 여기서 구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오늘 처음 기도회에 가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전에도 스쳐지나 간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앉은뱅이를 주목하게 만드는 힘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는 “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말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뜻 밖의 상황 전개였습니다. 오그라졌을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일어서서 걷고 뛰어다닐 수 있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되었으니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환자들은 오랜 기간 물리치료를 받으며 재활훈련을 거쳐야 걷고 뛸 수 있습니다. 태어나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사람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일어서서 걷고 뛴 것은 창조의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와 주목한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솔로몬 행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예루살렘 성전 동편 바깥 뜰에 세워진 기둥과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복도이름인데 솔로몬 성전 건축 시 세워졌기에 ‘솔로몬 행각’이라고 불렸습니다. 베드로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이런 기적을 일으킨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돌이켜 죄 사함을 받으면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조금 알고 있는 세상 지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초자연적 역사를 제한하지 마세요. 1543년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줄 알았습니다. 아인쉬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뉴튼의 운동법칙(만유인력)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중력이 강한 우주와 같은 거시세계에서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휘어 직진하는 빛이 휘어 보이는 현상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기선 뉴튼은 틀렸고 아인쉬타인이 맞습니다.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현재에도 제한적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한 이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어다니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누구이길레 그의 이름을 믿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수양회에서 피터 와그너 목사님이 짧은 다리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여 길어지게 했다는 사례를 말한 적 있습니다. 기억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뉴튼의 법칙도 아인쉬타인의 법칙도 아닌 예수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 작동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사람은 구원 얻습니다. 바울 사도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말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성령의 보호를 받게 되며 기도응답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