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바라시는 것

사도행전1:6-9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분들은 잘 듣고 매일 순종하며 살기 바랍니다. 저도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힘써 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일본의 지배 아래 있을 때 김구선생님은 하나님께서 나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일제시대에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기고 박해를 견디다 못해 상해로 피신해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분들 모두 조국의 광복을 위해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과 대화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유대인들도 로마 제국의 지배아래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BC43년 이후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 예수님 당시에도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 당국은 총독을 파견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세주를 보내주시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6절을 보면,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지금입니까?”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당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예수가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12제자 중에도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관심은 나라의 회복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고 인류를 자기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영적인 메시야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제자들은 예수님을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메시야보다 조국을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줄 메시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언제 회복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입장에선 이 보다 더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유대인이면서도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광복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될 것인데 그러면 예루살렘은 물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을 남겨두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해 야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보여준 예수님의 능력을 생각할 때 예수님이 나서면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모른 척하고 떠나버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곤경에 처해서 기도할 때 이런 심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생각하면 내 문제를 능히 해결해주실 수도 있을 터인데, 가만 계십니다. 병으로 죽어가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절박하겠습니까? 그래서 고쳐달라고 기도하는데 낫지 않습니다. 부도 직전에 몰려 금식하며 메달리는데 결국 부도가 나고 맙니다. 사실 그럴 때 답답하죠. 뭘 잘못해서 하나님이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것인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세상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 데이트하는 것, 직장 얻는 것, 장년들은 가족의 행복, 돈, 집, 여행이나 취미생활 이런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영혼이 구원 얻는 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업무 차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갔다고 합시다. 어디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본사에서 맡겨준 일에 온통 마음이 가 있겠죠. 일이 잘 끝날 때까지 계속 일 생각만 할 겁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맡겨준 업무를 가지고 세상에 출장오신 것이죠. 그 업무는 오직 한 가지, 죄인을 불러 회개하고 구원 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고난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하나님의 소원도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영혼을 구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뭡니까? 여러 가지 목적이 있지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복음전파입니다. 때문에 교회의 활동은 모두 전도에 맞춰져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신앙훈련도 하고 찬양이든 봉사활동이든 교제도 합니다. 이 모든 활동은 영혼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을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봉사하는 것으로 끝나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전도가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마귀는 사람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속아서 세상 재미에 취해 살면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마귀, 귀신 같은 것이 어디 있느냐고 없다고 그럽니다. 그럴 때 교회까지 귀신은 없다고 생각하고 전도하고 영혼을 구출하는데 힘쓰는 대신에 우리끼리 모여 즐겁게 지내기만 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출산율이 떨어져 걱정하는 것처럼 되고 말겠죠.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할 때까지 40여일을 지상에 더 머무시다 하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가시기 전에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것이 복음전파입니다. 4복음서 기자들 모두 전도하라는 당부로 예수님의 말씀을 마무리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준 당부는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하나는 교인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세상에 나가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교회의 모임이나 프로그램은 이 두 가지를 잘 하는데 도움이 될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예수님과 관심이 다르면 안되죠. 예수님은 영혼구원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도하기를 바랍니다. 왜 주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십니까? 목사와 목자, 장로와 집사, 등 하나님이 직분을 주시는 목적이 뭡니까?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 목자, 장로, 집사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에 관심이 없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전도 안하는 우리를 보고 영혼을 구원하려고 고난당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세계로 손현보 목사님 이야기인데, 권사임직식을 마치고 권사님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권사 직분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명입니다. 세상에서 대통령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신 이 직분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새벽에 나오셔서 저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새 신자들을 심방하고 위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이 새벽기도회에 반은 나오고 반은 나오지 않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직접 만나 권면을 했답니다.

“권사님이란 직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주신 직분입니다. 그러니 권사님이 교회를 위해서, 이 젊은 목사를 위해서,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권사님이 기도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 바빠서요….” 그랬답니다. “뭐가 그렇게 바쁩니까?” “아들이 부산 법원 앞에서 주차장을 하는데 제가 그 일을 좀 도와줘야 합니다” “그 일은 아들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고 권사님은 교회에 와서 기도하십시오” “그래도 너무 일이 많아서….” “권사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 사업을 할 수 없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한 직분을 권사님에게 주셨는데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권사님도 아시잖습니까? 세월이 얼마나 금방 갑니까? 제발 전도도 하고 제대로 신앙생활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도 바쁘다고 하니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지 손목사님이 가깝게 지내는 성도님께 권사님이 정말 주차장에 가서 일을 돕느라 그런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주변 사람의 말이 달랐습니다. “목사님 사실은 그게 아니고, 가보시면 알겠지만 권사님이 고추 농사를 지으십니다.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고추 농사를 지으시는지 아마 이 근방에서 제일일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차장 가기 전에 고추밭에 가서 벌레를 잡아주고 약도 쳐주고 주차장에 다녀온 후 4시 경에 또 고추밭에 가서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줍니다.

목사님이 다시 권사님을 불러 물었습니다. “권사님! 권사의 직분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고추밭은 날마다 가신다면서요? 고추농사 때문에 그렇게 바쁘신 것이라면서요? 고추가 뭐라고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아들이 권사님한테 농사지으라고 합니까?”

“아이고 목사님! 아이들은 농사짓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뭐 있습니까? 아들네나 딸네가 오면 고추도 주고 고춧가루도 만들어주고 하는 것이 제 큰 낙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녀들에게만 관심이 있습니까? 권사님, 복음 전해서 영혼을 구하는 것이 낙이지, 어떻게 그런 것들이 낙이 됩니까? 젊은 자녀들은 권사님이 고추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다 좋은 것 사먹습니다. 권사님이 농사지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자녀들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뭣 하려고 하십니까?”

아무리 설득해도 권사님 마음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 권사님을 위해 기도하는데 9월 중순 어느 토요일, 하루는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네가 진짜 하나님의 종이라면 그 권사를 그대로 두면 안된다. 고추밭을 다 뽑아 버려라” 하도 권사님이 고추밭에 신경쓰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아서 처음엔 마음을 접었답니다. 그런데 다시 기도하면 할 수록 자꾸만 그 마음을 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심지어 설교 준비할 때도 그 고추밭을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고추밭을 왜 그냥 두느냐, 그 고추밭을 뽑아라’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같았습니다. “떻하면 좋지?”고민이 됐습니다.

9월 중순 참으로 더운 늦여름 어느날 사람들에게 권사님 고추받이 어딘지 물어 찾아갔습니다. 소문대로 고추농사가 참 잘 되었습니다. 옆에 고추밭이 몇 개 더 있었는데 눈으로 봐도 권사님 고추밭이 최고로 잘 되었습니다. 고추가 하나 둘 발갛게 익고 있었습니다. ‘이 고추밭을 없애야 하겠구나’ 그래서 근방에서 낫을 빌려왔습니다. 모조리 베어버릴 작정이었습니다. 한 두 개 해보는데 고추마다 고춧대를 얼마나 튼튼하게 세우고 줄로 묶어놨는지 뜻대로 잘 안되었습니다. 여간 힘든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웃통을 벗어제기고 손으로 뽑기 시작했습니다. 밭이 단단해서 뽑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두 세 시간쯤 그렇게 고춧대를 뽑아 던지니 땀이 비오듯하고 손에 물집도 생겨 더는 못하고 3분의 1쯤 남겨두고 집에 돌아왔답니다.

목사님이 집에 돌아와서는 권사님 딸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고추밭에가서 한 일을 알리고 누가 그랬냐고 물으면 목사님이 그랬다고 하라고 알렸습니다. 이런 까닭을 알리 없는 권사님은 토요일이라 여느 때보다 주차장에서 빨리 돌아와 서둘러 옷갈아 입고 고추밭으로 갔습니다. 가서 보니 고추가 다 뽑혀 있습니다. 깜짝 놀라서 다시 살펴보며 든 생각이 “ 내 밭이 아닌가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추를 뽑은 적이 없으니 당신 고추밭이 아닌 줄 알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 자란 고추가 뽑혀 여기 저기 뒹그는 모습이 눈에 선해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해 다시 밭으로 가서 확인했답니다. 다시 가서 보니 자기 고추밭이 맞습니다.

“아니 나하고 원수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누가 다 지어 놓은 농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겨우 기운을 차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우리 고추밭 뽑는 거 봤나”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 누가 우리 고추밭 고추를 다 뽑아놨는데 니는 누가 그랬는지 아나?” 딸은 흥분한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엉겁결에 모른다고 대답했답니다. 권사님은 오후 내내 먹지도 않고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분을 싹이지 못했습니다.

목사님이 그랬다고 차마 말도 못하고 딸은 “엄마, 진정하세요” 달랬습니다. “진정하게 됐나? 생각해봐라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다 지은 농사를 이렇게 당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니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우리 집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이냐? 누가 나하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이렇게 했단 말이냐? 어떤 죽일 놈이 이렇게 했는지 , 왜 뽑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어머니를 그냥 놔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딸이 저녁 9시에 사택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뽑았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제가 보니까 어머니가 정신이 없는 사람 같은데 아무래도 오늘 밤에 큰 일이 날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우리 어머니에게 가셔서 무슨 조치든 취해주십시오” 목사님이 승합차를 타고 권사님 집으로 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한 쪽 방에는 빨간 고추랑 파란 고추가 따 있고 그 중간 벽에 권사님이 기대 앉아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 마치 실성한 사람같이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들어갔는데도 아는 척도 하지 않습니다.

“권사님” “예” “왜 그렇게 정신이 없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평생을 살면서 원수 맺은 사람도 없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어떤 죽일 놈이 우리 고추밭을 다 뽑아놓았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놈이 누군지 알기만 해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 누가 압니까? 그 놈이 나중에 우리 집에 불이라도 지르면 어떻게 합니까?”

“권사님, 사실은 제가 오늘 오후에 권사님 밭에 가서 고추를 뽑았습니다” “목사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목사님이 왜 우리 고추밭에 손을 댑니까?” “권사님!, 정신 차리고 잘 보십시오. 권사님이 하도 고추밭에 매어 있으시기에 제가 오늘 오후에 가서 뽑았습니다. 죄다 뽑으려다가 너무 덥고 손도 아프고 피곤해서 조금 남겨 놓고 집에 왔습니다. 제 손 좀 보십시오. 껍질이 다 벗겨지지 않았습니까?”

권사님이 목사님 손을 한참을 뚫어져라 보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왜 우리 고추밭을 뽑습니까?” 그렇게 묻는데 할말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잠시 생각하다가 권사님께 되물었답니다. “제가 하나만 물어볼 터이니 대답해 보십시오” “해 보이소!” “권사님은 지금까지 수십년 예수님을 믿고 권사님까지 되셨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감격한 적이 있습니까? 주님은 마지막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생각하고 지킨 적이 있습니까? 권사님은 지금 고추밭 때문에 심장이 떨리고 치가 떨려서 말을 못한다고 하시는데 예수 믿고 너무나도 좋아서 오늘처럼 심장이 떨린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전하다 죽을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너무나도 좋아서 심장이 떨린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수십 년 예수님을 믿으면서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하셨습니까? 옆 사람이 지옥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오늘처럼 떨린 적이 있습니까?

권사님이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7분 정도 시간이 흘렀답니다. 그 때 권사님이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너무 잘못했습니다. 이 고추가 뭐라고, 이 고추가 뭐라고, 지금까지 여기에 이렇게 온갖 정성을 쏟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 하나님께서 권사님의 마음을 만지셔서 비로소 뭐가 중요한지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고추를 백 근 농사지으면 뭣 합니까? 천 근 하면 뭣 합니까? 만근 하면 뭣 합니까?” 진심으로 권사님을 위로해드린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 주일 새벽에 권사님이 새벽기도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온지 3개월 밖에 안된 성도가 권사님과 함께 새벽기도회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새벽기도회를 나왔는지 물어봤더니 “목사님 저도 권사님 밭 옆에 고추를 심어놓았습니다” 권사님 고추밭이 다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해서 알아보니 목사님이 새벽기도 나오지 않아서 뽑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놀래서 새벽기도에 나온 거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시작된 새벽기도를 지금도 잘 나온답니다. 그 날 이후 권사님은 변해서 물이 불편해 자식들이 사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식혜를 만들어 1.5리터 페트병에 담아 싣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준답니다. 왜 주냐고 물으면, 나 따라서 교회 한번 가자고 권한답니다. 그렇게 해서 그 해에 권사님이 전도해서 세례받은 영혼이 11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도하기 힘들다’, ‘요즘 사람들은 전도해도 안 믿는다’ 이런 말에 속으면 안됩니다. 모두 사단이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예루살렘에서도 수 천명이 예수 믿고 돌아왔는데 왜 시애틀은 안되겠습니까? 오늘도 복음의 능력이 역사하면 영혼은 변화되고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피 묻은 복음의 능력을 믿고 증거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성장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전도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사람들의 체면 같은 거 신경쓰지 않고 담대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알리며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세주라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자고 외친자들이니 사실 예수를 믿을 수 없는 그런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통회하며 예수 믿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예수를 전하는 교회에서는 이런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교우 여러분 가능한 불신자 전도에 주력합시다. 이 교회 저교회 옮겨다니며 제대로 신앙생활은 하지 않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은 그냥 놔두고 정말 예수에 대해 들어본적도 없거나 있다고 해도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합시다. 그러면 합당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믿고 주께 돌아오게 역사하십니다. 일단 올 한 해 동안 한명의 결신자만 얻어도 성공 아닙니까? 결신자 한 명 얻기 위해 최소한 10명 이상에게 전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사람을 찾아 나서기 바랍니다.

전도대상자를 찾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교회 반경 20마일 내에 아는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세요. 그 사람들을 만날 계획을 세우세요. 전화, 카톡, 메일, 방문 등으로 상황파악하고 경조사에 적극 도와주고 집에도 초대하고 선물도 주고 그러면서 다가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엔 이런 저런 일로 만나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을 흘려 보내지 말고 전도대상자로 삼아 다시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세요. 교회 나오는 걸 꺼리는 사람에겐 복음전하고 간증하고 거기까지만 하면 됩니다. 교회는 예수 믿은 후에 데리고 오면 됩니다.

전도는 사람을 만나야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을 접촉하지 않는 전도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결신자를 얻기는 어려우니까 가능한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자를 얻는 게 중요하니까 대상자 찾기, 대상자 확보하기, 대상자 관리하기에 힘쓰면 전도가 됩니다. 얼마나 강한 집념을 가지고 전도하려고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