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해야 산다

사도행전4:23-31

저는 최근에 ‘교회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교회에 나오는가?” 이런 생각해봤습니다. 교회를 생각할 때 기쁘고 즐겁기 보다 왠지 부담을 느낍니다. 대형교회든 개척교회든 목회자는 교회성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은혜로 즐기며 목회하자” 수 없이 생각하지만 주일에 회중 앞에 서면 언제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할까 또 그런 생각이 밀려옵니다. 처음 교회나올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은 사람을 보면 “저 한 사람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게 고맙죠.

어떤 목사님이 “목회의 생명은 변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 자신이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교회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하려면 뭘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이 역사해야 표적과 능력이 나타나고 그 표적과 능력이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롭게 변화되고 싶은 사람은 기도하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인생의 목적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메세지는 ‘기도해야 산다’ 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이 영적인 가족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일하는 곳입니다. 교회당에 출석하는 것과 교회에 속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오늘 교회당에 출석했네요. 그렇지만, 아직 교회에 속하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주님으로 따를 때 교회에 속하는 것입니다. 교회다니면서 교회의 목적과 상관없이 지내는 분들도 좀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올해는 늘푸른교회에 속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오늘 왜 교회 나왔습니까? 목자들이 전화로 귀찮게 해서 할 수 없어 나온 분들도 있죠? 구원얻고 천국가려고 교회나오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혼자 집에 있어보니 외로워서 교회나오는 사람도 있죠?  부모님중에 매주일 전화로 확인하는데 거짓말도 한 두번이지 할 수 없어 나온 사람도 있죠? 병고치려 나오는 사람도 있답니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큰 교회 찾아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동기나 목적이 무엇이든 일단 교회 나와 제 말을 들어주니 암튼 고맙습니다. 

교회를 ‘소원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 비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처음 나오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쩜 당연합니다. 종교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죠. 사실 기도에 하나님께 비는 측면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은혜받아 복음을 깨닫고 교회가 뭔지 알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겠죠. 어떤 동기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나왔든지 복음을 듣고 깨달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분들은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고 충성된 제자로 헌신하길 바랍니다.

세상이 점점 세속화되어 사람들이 너무 막나간다고 걱정합니다. 전에 비해 세상이 너무 개방적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특성은 요즘 세대만 갑자기 그런게 아니라 아담이 범죄한 이후부터 쭉 그랬습니다. 문제는 그 시대의 교인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얼마나 잘하느냐 차이입니다. 세상이 너무 타락해서 문제가 아니라 그 세대의 교인들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해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없는 걸 걱정해야 합니다.

2008년 자료를 보니 남한 군인 숫자는 52만 2천명쯤 됩니다. 지금 남한 전체 인구는 대략 5천만명이랍니다. 군인 대 국민의 비율이 일당 천, 말하자면 군인 한명이 국민 1,000명을 지켜주는 셈입니다. 기독교가 전체인구의 20%는 넘는다고 하니, 기독교인 숫자는 적게 잡아도 5백만명은 될 겁니다. 일당십입니다. 그리스도인 한 명이 불신자 열명만 지키면 됩니다. 위키페디아에 Seattle 인구가 60만 2천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Seattle에 교인수가 만명만 돼도 1대 60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군병입니다. 군인들은 일당천으로 나라를 지켜내는데 하나님 나라 병사들은 일당백만 지키면 충분합니다. 세상을 탓할 게 아니라 교회가 반성할 일입니다.

반성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당연히 교회당에 출석하는 사람부터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전에는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하나님 부정하고, 음욕에 취해 살고, 사기치고 , 거짓말로 속이고, 훔치고, 술에 취해 방탕하게 살며, 세상의 영광과 돈과 출세를 위해 부정을 저지르며 살았더라도 이젠 예수믿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도 변합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사람을 변화시킬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한 세대 전에 크게 부흥한 대도시 중심에 위치한 교회들이 텅텅비어 있다고 합니다. 작년인가 시애틀 타임즈에 씨애틀도 UW 중심으로 몇몇 큰 건물을 가진 교회들이 젊은 사람들이 모이질 않아 교회당이 텅 비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런 반면에 최근에 급성장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뉴욕 부르클린에 위치한 짐 심발라 목사님이 목회하는 터버너클 교회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이분은 신학도 공부하지 않았고 목회가 뭔지도 모르고 장인의 권유로 직장을 그만 두고 수십명 모이는 교회를 맡아서 기도로 성령의 능력에 의해 수천명이 모이는 교회로 부흥시켰습니다. 이 분 교회에서 마약 중독자들이 회복되어 돌아오고 깽들이 회심하고 길거리 여자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 떠났던 사람들까지 일부러 찾아 몰려드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순절 이후에 예루살렘에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강팍했던 사람들을 무엇이 변화시켰습니까? 그것은 성령을 통해 나타난 초자연적인 역사들이었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병든 사람이 낫는 것과 같은 표적과 기사가 영적 각성을 일으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말로만 선포되는 복음을 가지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지 못합니다. 오늘날도 불신자들의 주목을 끌고 마음을 움직여 교회당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은 성령의 개입을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입니다.

세상에 죄는 넘치는데 은혜는 말라가고 있습니다. 강단에서 진리를 선포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텅빈 교회를 지키는 목사님들도 전통적 신앙을 굳게 붙잡고 있습니다.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을 믿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신성을 주장하며 주일마다 사도신경을 암송합니다. 그런데 뭐가 잘못돼 교회가 능력을 잃고 있나요? 오늘 본문 속에 힌트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밖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파하자 대제사장 일행이 붙잡아 가두었습니다. 다음날 대제사장 일행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고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일행은 풀려나자 제일먼저 다른 사도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전파하지 말라고 위협받고 있는데, 담대히 전도할 수 있게 용기를 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도 낫고, 기적도 일어나 사람들이 이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행4:29-30)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모인 곳이 진동하고, 이건 하나님께서 "알았다"고 사인을 보내신 것 같습니다. 참 재밌는 하나님이십니다. 용기내라고 한 번 흔들어 준거죠.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성령이 충만해 너나 없이 열심히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전도하지 말라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성령의 응답과 전도의 열정이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세상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는 학문적인 지식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당 안에서 조차 설교나 교육만 가지고는 사람들이 잘 변하지 않습니다. “뒤 따르는 표적이 말씀을 증거해줘야 합니다”(히2:4). 표적은 지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겐 유치한 것 같아도 이 유치한 것이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 하늘로부터 오신 성령께서 개입하여 표적과 이적이 나타날 때 강팍한 사람들이 굴복합니다.

기도문을 보면 사도들은 잘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한 게 아니라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영적으로 소경된 사람, 마음이 닫혀있는 강팍한 사람에겐 복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잠자는 사람에게 루터가 와서 강의한다고 잘 알아듣겠습니까? 소경에게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를 보여준다고 감동하겠습니까? 먼저 잠을 깨우고 눈을 뜨게 해야 듣고 볼 수 있겠죠? 표적과 기적 같은 성령의 역사가 바로 영적으로 잠든 소경을 깨워줍니다. 이것이 복음 선포에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과거 부흥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웨일즈의 부흥, 1906년 아주사의 부흥, 거기엔 영적으로 침체된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탄식하며 하나님의 표적과 성령의 개입을 간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 부흥을 위해 매일 모여 말씀보며 기도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한 사람씩 성령을 체험하고 능력받아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 그들의 기도는 부흥을 낳고, 또 그 부흥은 기도에 불을 붙였습니다. 새해엔 우리 교회에서도 성령의 나타남을 갈망하며 기도에 불이 붙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에 전념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든다면 얻는 건 절망감 뿐입니다. 한 쿼러가 지났는데 목장에 새가족이 한 명도 늘지 않은 목자들은 목장부흥을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양을 둔 목자들도 하나님께 나와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몫입니다. 목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게 다가 아닙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거듭나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자랑할 것은 날마다 구원받고 변화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교회 시설이 좋다거나 프로그램이 끝내준다거나 목사님이 멋지다거나 뭐 이런 건 사실 자랑거리가 못됩니다. 이것들은 이기주의와 교만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것들입니다. 교회에 돈 많이 버는 장로 한분만 있어도 좋은 교회당 건물 가질 수 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 같은 건 당장이라도 잘나가는 교회 카피해서 가져올 수 있습니다. 교회에 성령의 능력과 표적이 나타나 교인들이 변화되고 구원얻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교회가 부흥되고 그렇다면 자랑할만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화두는 기도, 성령의 능력, 변화 이 세단어입니다. 주님 만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왜 교회 나옵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려고 집중하지 않으면서 왜 천국가려고 합니까? 천국은 자기 맘대로 사는 곳이 아니라 24시간 한 순간도 빠짐없이 주님과 함께 하나님 뜻대로 사는 곳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천국가서 그렇게 사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을 애타게 기다리지 않는 사람을 왜 하나님께서 천국에 보내시겠습니까? 안그래요? 생각 좀 하자고요.

어떤 분이 한 말입니다. “교회가 인기 있으면 주일낮예배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목사님이 인기 있으면 주일 저녁예배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예수님이 인기 있으면 기도회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천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주중에 열리는 기도회는 100여명을 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들이 모이질 않아 기도회를 중단할지 고민하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교인들이 많이 모여드는데 목회자가 기도회 참석하기 싫어서 기도회 폐지한 경우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쫓겨날 게 아닙니까? 기도회에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유명 연예인을 초대하고 공연하는 것은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은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시간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죽겠다고 아우성치면서도 기도안하는 것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을 하나만 들라면, 저는 ‘기도’를 꼽겠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진짜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만큼 유지해온 것은 금요일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 덕입니다. 금요일 밤을 달리 보내고 싶은 유혹이나 요구가 있을 것입니다. 한 주 일과를 막 끝냈으니 집에서 가족과 쉬고 싶고, 가까운 사람들과 저녁이라도 먹으며 지내고 싶을 겁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금요기도회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다른 요일로 옮기는 건 몰라도 기도회를 없애자는 건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저 혼자라도 와서 기도할 생각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늘푸른교회가 가진 재산은 기도 뿐입니다. 기도해야 살 길이 열립니다. 교회당에 출석하는 사람조차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한 교회가 돼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로 일어섭시다. 기도로 교회를 살립시다.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표적과 이적이 일어납니다. 표적과 이적은 잠든 영혼을 깨워줄 것입니다. 잠든 영혼들이 깨어 일어나야 교회가 부흥합니다.

집사님들부터 기도에 앞장서서 늘푸른교회를 일으켜주기 바랍니다.
목자들은 자신은 물론 양떼를 위해 낙타 무릎이 돼야 합니다.
사무엘이 결단한 것처럼 저도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도록 힘쓸 것입니다.
늘푸른교회 성도 여러분 기도로 여러분 영혼을 일깨워 살리기 바랍니다.
영혼이 잘되면 나머지 인생도 잘풀립니다.

‘기도해야 산다’ 이 진리를 잊지 말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