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의 부활

고전15:35-49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가 구원얻을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후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죽은자의 부활’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전한 메세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었습니다(행2:14-36). 바울 사도는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부활이며(롬1:4).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말했습니다(롬10:9). 그러니까 부활을 믿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 믿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믿음은 무너지고 말겠죠. 예수믿어 죄사함을 받고 영생얻는다는 것도 부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닙니까? 부활과 영생이 없다면 제 인생은 너무 허망할 것 같습니다. 돈을 번 것도 없고 인생을 즐긴 것도 없고 교회 밖에 없습니다. 천국소망으로 위안을 삼고 살고 있는데 이렇게 살다 죽었는데 부활이 없다면 진짜 이건 사깁니다. 다행하게도 예수님의 부활은 죽으면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증명해주신 것입니다.

침례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로마서 6장 3절 이하를 보면, 바울 사도는 침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와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5절에 “만일 우리가 그의 북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침례받음으로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다시 살 수 없다면 침례의식은 무의미해집니다. 바울은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해 침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지하여 저희를 위하여 침례를 받느냐?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낙심했던 제자들이 다시 살아난 것도 예수님의 부활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어 심문받는 현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실망해서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감옥에 갇히고 사자굴에 던져지는 위험 속에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5장은 ‘부활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간 스스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적 세계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39,40절을 보면, 육체 중에도 땅에 속한 육체가 있고 하늘에 속한 육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짐승, 새, 물고기의 육체는 말 그대로 땅에 속한 고기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까지도 땅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왔으니 하늘에 속한 신령한 자라는 것입니다(46절) 바울은 44절에 “육의 몸으로 심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다”고 표현했습니다.

45절은 더욱 신기한 말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어 생령, 즉 살아있는 영의 수준이지만,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 즉 예수의 영이 누구 몸에든 들어가면 그 사람은 죽음에서 살아나게 만드는 그런 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 성령이 임하면 그 사람은 영생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왜냐면 예수의 영, 성령은 살려주는 영이시기 때문에 때가 되면 죽은 자가운데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려낼 것입니다. 바울은 51절에서 이것을 ‘비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부활의 구속사적 의미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죄에서 영원히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증시켜 주신 것입니다. 과거의 죄는 물론,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내가 스스로 지은 죄는 물론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까지도 주님께서 다 그 빚을 짊어지시고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셨다가 사망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때가 되면 예수믿고 죽은 사람들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답니다(51절)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육체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죽음은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죽음으로 허망하게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극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한 번 죽게 되겠지만 죽음을 이기고 영생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은 권력이나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인간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기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에 여러 번 그리스도가 고난받고 죽음을 당한 후 삼일만에 살아날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 중에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확신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 무덤에 제일먼저 찾아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나서 믿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할 때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쉽게 믿지 못하는 도마까지 배려해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8일이 지나 다시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았습니다. 그 때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한복음 20:27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자기 눈으로 확인한 후에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한복음 20: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오늘 우리들을 위해 남기신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환상이나 꿈에라도 예수님을 한 번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저도 전에 그런 마음이 강했습니다. 주님을 봤다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부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국갔다 왔다는 사람들의 간증책을 여러권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더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게 왜 복된지 아십니까? 제가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묵상하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거기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12:3)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본다고 믿어지는 게 아니고 성령께서 역사하여 믿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다시 말해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곧 성령받았다는 뜻입니다. 앞서 성령, 즉 주님의 영은 무슨 영이라고 했습니까? 살려주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보지 않고 믿게 되었다는 말은 성령받았다는 말이고, 살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은 부활을 보장받은 것이니 복받은 게 아닙니까?  뭘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영생을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