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 속에 산 요셉

창45:1-15

오늘은 요셉의 고난과 영광의 인생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삭의 순종과 야곱의 복에 대한 열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극명하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요셉이 다른 형제들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다가 어느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고난을 당하다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먼저 먼저 요셉의 출생과 청소년기에 대해 살펴봅시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밧단 아람으로 피신해 있던 시절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15년 만에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그 때 야곱은 첫째 아내 레아와 두 여종을 통해 10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언니 레아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는 동안 라헬은 한 명도 낳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사랑도 아들 없는 허전함은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5년이 다 되서 요셉을 낳았기 때문에 라헬은 물론 야곱도 다른 아들보다 당시 막내인 요셉을 끔찍하게 아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머니의 사랑을 오래 받지는 못했습니다. 요셉이 열 살도 되기 전에 어머니 라헬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에 밧단 아람에서 돌아와 세겜에 머물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자기 집 사람과 함께한 모든 자들을 정결케하고 벧엘로 떠났습니다. 그 당시 임신 말기였던 라헬에겐 이 여행이 힘들어 그랬는지 라헬은 여행 도중에 난산으로 죽었습니다. 이 때 태어난 아이가 12번째 베냐민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 대해 애틋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잃고 외로워하는 요셉을 보면 안스럽고15년 만에 얻은 아들이라 그렇게 좋아하던 라헬의 모습도 떠오르고 그래서 야곱은 막내 베냐민 보다 요셉을 사랑한 것 같습니다. 창37장 3절을 보면,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야곱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채색옷은 소매없는 긴 가운 같은 모양입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라고 하는데 이 때 아버지 야곱 나이가 얼마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추정해보면 대략 90세 전후가 될 것 같습니다. 추정 근거는 야곱이 요셉이 살아 있는 걸 알고 애굽에 내려갔을 때 130세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 총리가 된 것이 30세였고 그 때부터 7년의 풍년과 2년의 흉년(창45:6)이 지날 때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130일 때 요셉은 40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은 90세 전후에 요셉을 낳았을 것입니다.

형제라도 누가 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 질투심이 생기겠죠. 그래서 형들은 동생 요셉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일러바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혼자 독차지하고 잘못이나 일러바치는 그런 동생을 좋아할 형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동생 주제에 꿈을 들먹이면서 마치 다스리는 왕이라도 될 것처럼 말하니 눈에 가시 같았습니다.

요셉이 18,19세쯤 되었을 때입니다.  형들이 세겜에 가서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과 양떼들이 잘 있는지 가서 보고오라고 헤브론 골짜기로 보냈습니다. 가서 보니 형들이 없었습니다. 형들을 찾아 헤매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형들이 도단으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 뒤를 따라가 도단에서 만났습니다. 형들은 멀리서 요셉이 오는 걸 보고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던 동생을 이 기회에 죽이기로 모의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가 나중에 근처를 지나가던 이스마엘 사람에게 은20을 받고 팔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형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요셉이 어느날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왜 이런 불행과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욥에게 불행이 닥친 것처럼 요셉도 그렇게 그 지옥 같은 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고 온 가족을 살려낸 결말을 알고 있으니 괜찮게 생각되나,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 앞에 요셉이 얼마나 공포에 빠졌을지 짐작갑니다.

애굽에 도착한 후 요셉은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 집에 팔려갔습니다. 창39장 2절을 보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걸 두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말합니다. 좀 아이러니 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셔야지 형들의 손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노예로 팔려 시위대장 집에 머물게 됐다고 그걸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부분을 이해하려면 섭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좀 살펴보고 요셉의 이야기를 계속 보도록 합시다. 창세기15장 13,16절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고 네 자손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애굽에 내려가고 거기서 400년 동안 괴로움을 당하면서 4대를 보낸 후 애굽을 벗어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태어나기 170년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태어나기 170년 전에 하나님이 내 조상과 나눈 이야기가 내 인생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요셉을 보니 상관이 있습니다. 태어나기 170년 전에 하신 말씀을 성취하려고 하나님이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요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계시고 그 뜻을 다 이루기까지 요셉을 형통케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스토리를 끝까지 다 모르면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알 수 없죠. 그래서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도하실 때도 끝까지 다 살아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고생 많이 하는 청년들이 있을 것입니다. 원하는 대로 잘 안되고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자꾸 나가고 그런데 그걸 가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다고 하면 동의할 수 있습니까? 요셉에 대해 성경은 그런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에 팔려간 사람보고 하나님이 함께하는 형통한 인생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인생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교회만 다니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고 믿고 사는 수준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하고 보는 게 달라질 것입니다.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들이 팔아먹은 동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보복당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때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형들을 이미 다 용서한 것입니다.

다시 요셉의 노예생활로 돌아갑시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인정을 받아 총리가 된 것이 30세라고 하니까 요셉은 애굽에 팔려와 10년 정도 노예로 지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일을 하다가 주인의 아내를 겁탈했다는 모함으로 왕에게 잘못한 고관들을 수용하는 감옥에 들어가 있는 동안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안면이 생기고 그의 소개로 왕의 꿈을 해몽하고 총리가 되었습니다. 노예로부터 총리가 되기까지 요셉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정식과 성실입니다.

저는 요셉의 인품이 어떤 사람인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뜻하는 바가 있으니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며 지켜주셨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요셉의 스토리를 다 알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됩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기 인생을 놓고 하나님이 어떤 계획이 있고 어떻게 그걸 성취해가시는 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기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된 것과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단호하게 뿌리친 사건입니다.보디발이 처음부터 요셉에게 가정 총무일을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작은 일부터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는 걸 보면서 집안일을 총괄하게 했을 것입니다. 보디발에겐 누군가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고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 다음 주인의 아내가 유혹할 때 요셉은 주인이 이 집에서 내게 금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당신은 주인의 아내이니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겠습니까? 그러고 유혹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감옥책임자로부터 인정받아 죄수를 돌보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 감옥은 시위대장 집안에 있는 왕의 죄수를 수감하는 곳으로 요셉은 여기서 고위급 대신들과 안면을 쌓고 애굽의 정치에 대해서도 배우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가정총무일과 대신들도 수감되는 감옥일의 경험은 요셉이 총리가 되어 애굽 전역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 경험도 지식도 없는 사람이 총리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요셉을 먼저 애굽에 보내 보디발의 집과 대신들도 수감되는 감옥에서 애굽 고위층의 생활을 읽히고 국가 경영과 정치를 배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낸 세월이 거의 10년이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체험으로 배운 것입니다.

끝으로 요셉이 누린 영화에 대해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섭리 속에 노예로 팔려가 10여년 동안 고생도 하고 치욕적인 순간도 있었지만 총리가 되어 영화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침례 요한 처럼 고생만 하고 끝나는 인생도 있지만 요셉의 경우는 고생한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았습니다. 히브리 노예출신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히브리 노예출신의 지혜로 살아남았다는 것이 수치스러워 그런 것인지 애굽 역사기록물엔 요셉이 총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요셉은 성공적으로 총리직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총명과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나중에 하숫가에서 올라온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먼저 올라온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를 먹어치우고, 마른 일곱 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을 꾸었습니다. 애굽 사람중에는 아무도 그 꿈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 꿈 해석을 알고 있죠? 혹시 모르는 분이 있다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요셉은 이 꿈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7년은 풍년이 오고 그 후 7년은 흉년이 오는데 흉년이 너무 심해 이전 풍년을 다 잊어버리고 망하게 될 것이니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세워 풍년의 곡식 오분의 일을 거둬들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정답을 보면서 시험 보는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런 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요 총명입니다. 가진 지식과 경험이 한계가 있는데 밤새워 머리를 짜낸다고 뭐가 나오겠습니까? 어둠 속에서 바늘 찾기 해보세요. 열심히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밝은 불 빛 아래 자석을 가지고 하면 훤씬 쉽겠죠. 바로와 대신들은 요셉의 총명과 지혜에 모두 감탄했습니다. 바로는 이처럼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이 어디있겠느냐고 즉석에서 요셉을 총리로 지명하고 인장 반지를 끼워주고 관복을 입게 하고 왕의 버금 수레에 태워 고관 대신들에게 요셉에게 엎드리게 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고 영화를 누린 것은 요셉 개인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을 통해 야곱과 12지파 조상이 되는 야곱의 아들들을 살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앞으로라도 하나님이 복주시고 형통케 하여 많은 재물을 얻고 권세를 얻게 되거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잘난 체 거들먹거리면 오래가지 못해 다 거둬가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겐 부와 권세를 열망하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요셉처럼 낮은 자세로 정직과 성실하게 사는데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가 있어 재물도 주시고 지위도 높여주시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어쩌다 보니 높은 자리에서 영화를 누리게 된다면, 몸 둘바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하나님 뜻을 이루는데 힘쓰며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