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은?

갈2:20

지난 주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수양회를 마쳤습니다. 수양회를 떠나기 전에 주제가 “4차원의 영성: 성령체험”이라서 수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성령체험을 못하고 냉랭한 분위기로 돌아오면 어쩌나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만져주시는 성령님을 체험하고 몇 사람들은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간증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임할 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이 방언이었습니다. 오순절에 방언을 말한 사람들의 경우는 먼저 방언을 체험한 사람들이 방언하도록 기도해주거나 안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기도중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방언이 터져나온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렇게 방언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키는 말을 따라 하다가 방언을 말하게 되면 성령의 역사인지 자의식으로 말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집니다.

수양회에 참석해 강의를 잘 들은 분들은 영적 세계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성령의 인도아래 말씀과 기도를 통해 4차원의 영적 세계에 영향을 주는 생각과 믿음과 꿈과 말을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3차원의 우리 인생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이 요소들은 성령의 영향도 받지만 사단의 영향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로 지켜야 합니다.

수양회 마지막날 밤에 2시간이 넘게 성령님 체험과 은혜 받은 것을 간증했습니다. 간증을 들으면서 성령님께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이런 저런 모양으로 역사하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체험의 핵심은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 복음을 깨닫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구별된 삶을 사는 것, 능력받고 복음전하는 열정이 생기는 것, 이 모두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제일 중요한 일은 이렇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고 죄를 고백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수양회에서 성령님을 체험한 분들은 무엇보다 마음이 새롭게 변하여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고 무엇보다 주님을 닮아가고 전도에 힘쓰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복음의 핵심은 결국 죽음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 만 알고 있는 사람은 절반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속에는 예수님의 죽음은 물론 여러분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갈라디아 2장 20절의 메시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바울은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옛 사람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죄에서 벗어나고 욕망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여행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가능합니다. 죄인된 인간은 교만하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방탕합니다. 몸이 죽어야 이런 죄악된 욕망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육체의 욕망들이 소멸됩니다. 그러니 욕망과 싸워 이기려고 하지 말고 먼저 옛 사람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구해야 합니다.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주님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지 다른 존재로 태어나 노력해서 인간이 되는 게 아닙니다. 불신자가 노력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교회다니며 노력한다고 마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지도  않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만 높아집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려면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불신자인지 하나님 자녀인지 헷갈릴 때가 없습니까? 주님이나 교회일보다 여러분 자신의 유익이나 가정 일을 더 생각하고 주님과 교회 일을 소홀히 할 때 맘이 편한가요? 그럴 때 솔찍히 어떤 심정인지 궁금합니다. 목회 경험을 통해 볼 때 진실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며 삽니다. 자녀나 가정,직장이나 사업 때문에 주님과 교회 일을 뒤로 밀어놓는 사람을 보면 아직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참 애매모호한 말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시기와 분쟁에 휘말려 있던 고린도 교인들을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서로 좋아하는 사람, 맘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시기, 질투하며 다투었습니다. 하는 걸 보면 불신자인데, 말로는 예수 믿는다고 하니 바울 사도께서도 답답해서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사람이 없나요?

놀러다니며 주일도 빠지고 금요기도회나 셀모임은 별관심이 없고 그런데 오래 전에 방언을 받고 방언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목사인 저도 헷갈리죠.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않게 성령체험한 분들은 새롭게 변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만일 성령받고 방언하게 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예배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큰 일입니다. 한 번 신령한 은혜를 맛보고 성령의 은사를 받았던 사람이 심령이 무뎌져 성령을 거슬려 행하게 되면 새롭게 회복되기가 더 힘들답니다.

이용규 몽골 선교사가 쓴 책 [더 내려놓음]을 읽어보면 이용규선교사 사모의 간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나는 남편의 헌신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선교지에 따라나섰지만 개인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선교지에서 오병이어선교회가 세운 몽골 국립과학기술대학내에 설립된 몽골 영양개선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며 이레교회도 섬기고 남편과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모든 걸 다 잘 해내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에너지는 바닥이 나서 점점 침체의 나락으로 미끄러져 우울증에 걸리고 소화불량으로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영적 전쟁에 대한 무지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선교지에 왔지만 영적 전쟁터라는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그 때 큰 아이 동연이는 유치원에 갈 나이였고, 작은 아이 서연이는 6개월짜리 였습니다. 애들을 데리고 수요예배, 금요예배를 드리기에는 몸이 힘들고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주일 예배만 드리면서 아이들과 집에서 보 낼 때가 많아졌습니다. 나중에 예배가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나서, 나는 그때 하나님 앞에 목숨을 내놓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 예배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피곤해서 늦잠 자느라,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과제물 혹은 시험 공부하느라, 자녀나 부모님 때문에, 직장일 때문에, 감기 몸살로 아퍼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이런 이유로 예배에 빠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직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그러는 건 덕이 안됩니다. 제가 여러분을 잘 못 가르친 것은 아닌지 반성됩니다. 예배참석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가볍게 대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요?

이용규 선교사 아내는 나중에 복음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5박 6일 세미나에 참석해서 복음의 능력을 마음 깊게 경험한 후 회복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영혼이 소생되고 우울증도 사라지고 육체의 질병도 호전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녀는 우울증이 자신의 죄성에서 기원하는 것임을 알았답니다. 우울증의 배후에는 극도의 자기애가 숨어 있답니다.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느끼고 그 상처를 움켜쥐고 자기 연민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 상처받는 일 같은 건 없습니다. 반대로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에 자기 연민에 빠져 자기를 불쌍히 여기고 외로워하며 어둠에 빠져듭니다. 이것이 우울증입니다. 자기연민이나 우울증이나 절망감 등은 죽어야 해결되지 자아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대속만 믿지 말고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실제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데서 멈추면 반쪽짜리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물론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해야 비로소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삶에 변화가 없고 육신의 욕망에 휘둘리고 사단의 공격을 받아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먼저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기도합시다.

침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면 침례에 대해 반쪽만 아는 것입니다. 침례의 진짜 의미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 지내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나의 옛 사람, 내 자아가 죽었다는 것이 바로 침례의 영적인 뜻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야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이 생기고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님 나라, 가정과 교회 사이에서 갈등하며 우울증에 빠지고 공허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자아가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마음의 상처 같은 걸 받지 않습니다. “지렁이를 밟으면 꿈틀거리는 이유는 뭡니까?” 지렁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밟아버리면 꿈틀거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다 말았기 때문에 아프다고 꿈틀대고 불평하고 남 탓하고 그럽니다.

교회생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게 바로 이런 문제입니다. 죽으면 다 소멸될 갈등을 죽지 않고 어떻게 해결해보려고 애쓰다가 절망감에 빠져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대개 더 노력해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성경을 더 많이 읽고, 봉사를 더 많이 하고, 성령의 능력을 더 많이 받고, 은사를 더 많이 받고. 그런데 아세요? 더 노력해도 더 많이 받아도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자아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해결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면 다 해결될 문제들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죽었다 살아날 수 없습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십자가에서 죽였다 살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고치고 습관을 고치려고 애쓰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죽여달라고 간구하세요. 옛 사람을 고쳐 쓰려고 하지 말고 새 사람을 덧 입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