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하는 목장이 부흥한다

사도행전5:17-4

오늘은 전도를 주제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다 회개하고 예수 믿어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엔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로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할 마음이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전도해서 지옥 갈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초대교회에 비할 때 우리 교회가 제일 부족한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의 토대 위에 초대교회를 본받아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전도해야 합니다. 주님과 초대교회가 생명을 걸고 집중한 일이 전도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고 예수님이 생명을 희생해가면서 만들어 놓은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전도 없이 다른 모든 걸 다 하는 것과 전도만 하고 그 외에 다른 것은 못하는 경우를 놓고 선택해야 한다고 해도 전도를 선택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최근 우리 교회 실상을 보면서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며 기도하던 중에 우연히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우리가 전도에 너무 소홀했다는 반성을 좀 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전도를 많이 강조했지요. 하지만 직접 나가 전도하거나 각 목장이 어떻게 전도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평가하고 전도전략을 짜고 실행하도록 하는 데는 약간 방임적인 태도를 취해온 게 사실이었습니다. 왜냐면 저도 누굴 만나 전도해야할지 다소 막연했고, 여러분도 전도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적당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님과 주님이 보실 때는 참으로 나쁜 목사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의 최고 존재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전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전도와 관련해 신약성경전체 모습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사역을 전도로 시작해서 전도하라는 당부로 끝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마4:17). 3년 공적인 활동을 하시는기간 동안 남쪽 유대지역과 북쪽 갈릴리 지역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말씀은 “너희는 세상에 나가 모든 민족들로 제자를 삼아 침례를 주고 주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마28:19,20).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전반부는 베드로가 중심이 된 전도활동과 그 결과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지고 이야기,그 다음 11장 후반부부터 28장 끝까지는 안디옥교회와 바울이 중심이 되어 지금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와 그리스와 로마까지 다니며 전도하고 교회를 세운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 뒤에 이어지는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등등 모두 전도와 교회세우는 이야기입니다. 신약성경은 거의 모두 전도이야기이기 때문에,  전도하면서 신약성경을 봐야지 전도하지 않으면서 성경을 읽으면 현장감이 없기 때문에 말씀의 능력을 맛볼 수 없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들이 열심히 전도할 때 표적도 일어나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앞장섰던 대제사장과 일 당들이 마음에 시기가 일어나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는데 밤에 천사가 감옥에 찾아와 이 생명의 말씀을 계속 백성들에게 전하라며 갇혀있던 제자들을 꺼내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옥에서 나오자 마자 새벽에 성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제사장과 함께 하던 무리들이 공회를 소집해 옥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어떻게 성전에 나타나 예수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인지 경위를 파악하려고 제자들을 다시 붙잡아 공회 앞에 세워 심문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금지시켰는데 너희 가르침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해서 그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우리에게 돌리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당신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 용서를 얻게 해주려고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예수를 하나님 오른편에 높이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들이며 성령도 그렇습니다”

대제사장 일행은 사도들의 대답을 듣자 마다 크게 화를 내며 제자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으로 율법교사인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사도들을 공회에서 잠시 나가게 한 후 공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가말리엘은 이 전에도 드다라는 사람과 갈릴리 유다라는 사람이 나타나 사람들을 추종하게 만든 적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이 죽자 따르던 무리들이 스스로 따 떨어져나간 사건을 상기시키며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가르치는 것도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면 시간이 지나면 그냥 소멸될 것이고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될 것이니 그냥 가만 놔두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대제사장 일행은 가말리엘의 제안이 옳다고 생각해서 사도들에게 채찍을 가하고 예수의 이름을 다시 언급하지 말라고 금지시키고 내보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위해 수치스런 고통 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여기고 성전에서든 집에서든 계속 예수를 그리스도로 가르치며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살아 있을 당시엔 로마 당국과 유대사회 지배세력이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전도하는 사람은 붙잡아 매질을 하고 감옥에 넣거나 심한 경우는 사형시키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초대 교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수님의 분부를 충실하게 이행하여 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위험하기 때문에 전도를 포기한 게 아니고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하고 심하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도했습니다. 백성의 한 사람으로 법을 지켜야 한다는 구실로 뒤로 물러가자는 그런 사도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도하다 투옥되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 미련하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도 없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세상에 나가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어떤 교회보다 전도하는 교회를 축복해주십니다. 한 때 전도해서 복 받은 교회들이 전도하지 않으니까 소멸한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지금도 전도하는 교회는 부흥해서 은혜가 넘치고 일꾼들도 재정도 넘쳐서 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반면에 전도하지 않는 교회들은 교인들이 떠나고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해 점점 줄어들고 재정도 빈약해서 자립하기도 어려워 어디 도움 받을 데는 없을까 기웃거리며 가련한 처지에 빠져듭니다. 우리도 전도하지 않으면 자립하지 못해 이렇게 가련한 처지를 면치 못하다가 교회 이름마저 유지하지 못하고 소멸될 수 있습니다. 설마 그렇게 까지 되겠는가 싶습니까? 전도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왜냐면 개척했다가 사라지는 교회들이 한 해에 수백개가 넘습니다.

전도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전도하지 않으며 느끼는 부담보다는 훨씬 가볍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이고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교인이 만든 적든 전도하지 않는 부담이 없을 수 없습니다. 성경읽을 때, 기도할 때 전도하지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몸담고 있는 교회가 교인수가 얼마 안되고 일꾼도 부족하고 재정도 자립이 되지 못하고 제대로 교회 구실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 자체만으로 부담스러울 겁니다. 전도해서 부흥된 교회에서 기쁘게 신앙생활하는 복을 누립시다.

수 많은 교회가 쇠락해서 소멸되는 상황에서도 수백명, 수천명으로 성장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쇠락하는 교회도 성장하는 교회도 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앞에 둡니다. 하나님 안 믿고 예배 안드리고 찬양 안하고 성경공부 안하고 기도안하기 때문에 소멸되는 게 아닙니다. 부흥하는 교회처럼 다른 것은 다 하는데 전도는 안하거나 전도에 대한 열정은 없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영혼을 교회로 데려오지 않기 때문에 소멸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 열심히 전도하는 교회는 주님이 결코 소멸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주님이 꼭 필요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는 주님이 꼭 붙잡고 지켜주십니다.

지금 형편이 어떤 교회든 전도하면 부흥됩니다. 교회는 시작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사도들이 열심히 전도하니 예루살렘 교회가 수천명으로 성장했습니다. 흩어진 제자들과 바울과 바나바가 열심히 가르치며 전도하니 안디옥교회가 부흥했습니다. 바울과 전도팀이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전도하니 소아시아 곳곳에 믿는 사람이 생기고 교회가 세워지고 그 교회들이 크게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교회들이 살아있습니까? 유적 말고는 없죠?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열심히 전도하는 세대들이 천국 간 후에 후 세대들이 믿음을 버리고 전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도 소멸되고 만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  이 책은 부산 끝 어촌 마을에 있는 세계로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해 20-30명의 교인을 데리고 출석교인 2000명 이상으로 교회를 성장시킨 손현보목사님의 전도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분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전도에 집중했는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책의 내용을 다 말할 수는 없고 전도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부임해서 한 달쯤 되었을 때 남전도회 월례회가 있다고 설교를 부탁해서 가보니 결혼한지 얼만 안되는 젊은 사람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 7명이 모였는데, 5분 정도 설교하고 옆에 앉아 회의 진행을 지켜보는데, 총무가 나와서 남전도회 1년 사업내용을 보고 하는데 5천원씩 회비를 걷어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지금 아무개 집사님 집에서 잘 키우고 있고 우리가 계획한 대로 잘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전부였습니다. 총무 보고를 마치자 남전도회 회원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잘 되었다고 격려하며 마치더랍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남전도회가 복날에 그 개를 잡아서 회식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남전도회 1년 사업계획의 전부였습니다.

막상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도사님 머리 속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이 교회 남전도회는 완전 개판이구나 이런 개판인 남전도회가 하나님의 교회의 주체가 되다니 …. 이대로 계속된다면 이 교회는 머잖아 망하겠구나 예수님께서 피 흘려서 세우신 교회,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직분을 맡은 남전도회의 1년 사업이 고작 개 한 마리 사서 그 개를 잘 키워서 잡아 먹는 것이 전부란 말인가? 이런 남전도회가 존재하는 한 이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는 임할 수 없다 이 남전도회를 없애버려야 하겠다” 개 한 마리 키우는데는 모두 관심을 집중하면서 영혼구원에는 도무지 무관심한 남전도회 회원들이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서 이번에는 여전도회 월례회가 있다고 해서 또 참석했습니다. 여전도회는 남전도회보다 인원이 많아서 열 댓 명이 모였는데 그 때도 짧게 설교를 하고 ‘여전도회는 상황이 다르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참관했습니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회개가 나와 지난 겨울 여전도회에서 70속 들이 낙동 김을 한 박스 사서 회원들에게 팔라며 얼마씩 나눠주었는데 아직까지 원금이 걷히지 않아서 힘들다고 원금을 내지 못한 회원들 이름을 호명하며 말하자, 한 집사님이 앞에 있는 탁자를 치면서 버럭 화를 냅니다. “그럼 팔리지 않는 것을 우짜라꼬? 도로 갖고 가이소” “아니 지금이 몇 월인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우짭니까? 날짜 지난 김을 누가 묵으라꼬예?”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전도사님이 “교회에서 무엇 때문에 이런 장사를 하고, 큰 소리가 나게 합니까?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전도사님이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인데, 이렇게라도 해야 교회가 숟가락이라도 하나 사고 밥그릇이라도 하나 삽니다. 여전도회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누가 교회 살림을 삽니까? 그래야 전도사님 생신 때 뭐라도 해드리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여전도회가 없으면 안 돌아갑니다” 얼마 후에 전도사님 생일이 돌아왔습니다. 한 여집사님이 교회와 붙어 있는 어느 집사님 댁으로 오라고 해서 가보니 생일 밥상이 차려 있었습니다. 생일상을 보니 화가 났습니다. “언제 제가 생일밥상 차려달라고 했습니까? 이런 것 하려고 김 팔고 젓갈 팔고 교회에서 싸웠습니까?” 상을 엎어버리겠다고 달려들자 여전도회원들이 겨우 말렸답니다.

손 전도사님은 생각하기를 개잡아 먹고 친교하지 않으면 안되는 남선교회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없애버리고, 전도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전도는 안하고 몇 푼도 벌지 못하는 장사한다고 다투는 여전도회도 과감하게 없애버렸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온 교인들이 전도에 힘쓰고 있을 때 성가대에게 몇 명 전도했는지 물었는데 성개대 연습하느라 전도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성가대도 없애고 모든 힘과 관심을 전도에만 집중시켜 결국 주민이 수 백명 밖에 없는 부산 끝짜락 30여명 모이던 어촌 교회를 수 천명이 모이는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면, 복음전파에 전 교회와 기관들이 관심을 집중해 보라고 합니다. 1년 동안만이라도 지역 주민들을 섬기고, 복음 전파에 힘쓴다면 이웃들에게 교회의 이미지는 더 없이 좋아질 것이고 이웃들이 교회에 긍정적인 궁금증을 갖기 시작할 거랍니다.

우리도 올 해 남은 기간은 무조건 전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습관이 되지 않은 것은 매일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쉽게 잊고 이전 상태로 돌아갑니다. 전도는 우리가 말로만 강조하고 실제로 하지 않았습니다. 전도하려면 가능한 많은 대상자들을 찾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접촉하고 기회라고 생각되면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반복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제발 찾아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끈질기게 해야 합니다. 한 두 번 신사적으로 말한다고 믿으면 전도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어쩜 기도보다 전도에 더 적합한 예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매일 찾아와 전도하니 귀찮아서라도 교회에 한 번 나가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마귀가 쳐 놓은 금지선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목장도 대상자를 가능한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두 서너 사람 데라고 한 해 동안 목장 섬기면 100% 성공해도 배가 되지 않습니다. 목자와 양들 한 사람이 적어도 5명 이상 전도대상자를 확보하고 1년을 목표로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고 섬기고 모임에 초대하고 찾아가고 그렇게 하면 지금 모이는 숫자를 기준으로 배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석도 잘 안하고 교회는 나오지도 않는 사람들을 양이라고 데리고 그들 좋게 하느라 기운 다 빼면 아무리 열심히 목장 사역해도 결과가 좋을 수 없습니다. 그런 양을 버리라는 게 아니고 대상 폭을 넓혀서 너무 그런 양들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양들도 많이 돌보라는 겁니다. 그래야 그 중에서 좋은 양이 나오고 그들로 인해 목장도 부흥하고 교회도 성장할 게 아닙니까?

예수님이 전도할 때 믿지 않겠다는 사람 붙잡고 3년을 보냈습니까? 바울이 전도할 때 몇 사람 붙잡고서 시간을 다 보냈습니까? 아닙니다. 듣지 않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놔두고 다른 마을로 다른 사람들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목장도 만들고 교회도 세우고 그렇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밥 안 먹겠다고 습관적으로 투정부리면 따라다니며 먹이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다른 것도 주지 말고 굶기세요. 사람이 하루 이틀 굶었다고 죽지 않습니다. 배고파 죽게 생기면 뭐든 먹겠다고 달려들 겁니다. 그 때 품에 앉고 먹이세요. 그런데 자식이 하나면 이게 잘 안되죠. 여럿이면 되는데. 그래서 목장도 양이 여럿이어야 훈련도 잘됩니다. 말 안 듣는 두 세명 데리고 목장하면 1년 후에도 그 수준을 못 넘습니다. 그런 목장의 목자들은 전도대상자를 찾고 새 양을 얻는 게 성패를 가릅니다. 그리고 말 잘 듣는 새 양들에게 더 집중하면 말 안듣는 양도 살아남기 위해 더 잘 합니다. 떨어져 나가도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아깝다고 가라지가 알곡이 되진 않습니다. 염소 돌보기에 집중하는 목장이 되면 안됩니다. 제대로 된 목자라면 양을 찾아 양을 돌보는 사역을 해야죠. 모든 것에 우선해 전도에 집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