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을 열망한 야곱

창32:13-32

오늘은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의 인생을 살펴보는 것은 믿음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살다간 생활환경과 문화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너무 달라서 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본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과 관계에 대해서는 참고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는 믿음을, 이삭에게서는 순종을 배웠습니다. 야곱에게서는 무얼 배울 수 있을지 지금부터 살펴봅시다.

야곱의 인생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첫번재 교훈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언약의 후사가 되고 오히려 형 에서가 야곱을 섬기는 자가 된 상황 속에 담겨있는 영적 진리입니다. 야곱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25장 19절 이하에 나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에서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싸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식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리브가에게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야곱을 형으로 태어나게 해서 장자의 명분도 갖고 아버지의 축복도 받고 하면 형제간에 갈등도 없고 어머니도 편할 것인데 왜 이렇게 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팟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먹는 망령된 행동을 했다고 비난 받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와 동생이 짜고서 아버지와 자기를 의도적으로 속이고서 축복을 빼앗아 간 것은 야비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모른다면 그렇게 밖에 볼 수 없겠죠. 이에 대해 하나님은 훗날 바울을 통해 그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로마서9장 11,12 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라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에서와 야곱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보여주기 위한 연극의 등장인물인 셈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남의 인생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항의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울께서도 이런 질문을 예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변론을 해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라 하고 싶은 데로 할 권리가 있답니다.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항의하는 것이 주제 넘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왜 그렇게 하느냐고 저항할 수 없답니다. 바울 사도는 한 발 더 나가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다”는 표현도 사용했습니다.

야곱이 주는 두번째 교훈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복을 열망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하나님의 복을 받겠다고 노력했는지 아시죠. 태어날 때 갖지 못한 장자의 명분을 갖고 싶어했습니다. 좀 야비하지만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별 짓을 다하죠. 서원하면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애원하기도 합니다. 축복해달라고 천사를 붙잡고 밤새 씨름하다가 환도뼈를 얻어 맞아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야곱에 대해 기록한 성경을 읽어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겠다, 반드시 성공하겠다 이런 집념이 곳곳에 보입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창세기 31장 38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형 에서를 밧단 아람의 외삼촌께 가서 살 때 어떻게 살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외삼촌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얻는 대가로 14년, 양떼를 얻기 위해 또 6년을 더 그렇게 20년을 일했지만 외삼촌은 열번이나 약속을 어기며 품삯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양치기 일은 사실 가장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집나가 초지를 찾아 이리 저리 다니며 야영하며 양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잠자리, 의복, 먹는 것, 씻는 것 모두 형편없고 굶주린 짐승들이 양떼를 공격하며 싸워야 했습니다. 40절 보면, 야곱은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20년을 보내야 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 복주시기를 열망하며 강하게 마음 먹고 한판 해보자는 심정으로 전투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뭔가 이루고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집 장남들은 야곱의 전투적인 인생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나 환경을 탓하면서 상처받았다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패배자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자식도 선택해서 낳은 건 아니잖습니까?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된 것은 누구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받아 들이고 열심히 살아 여러분이 성공하면 됩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은 인생을 전투처럼 최선을 다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미국에 이민 와 사는 청년 가정은 유학생들에 비해 형편이 어려운 경우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유학들이 1,5세나 2세 청년들보다 돈을 더 잘 쓰고 그러죠? 부모 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게 유감스럽지만, 불평하고 좌절하며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 여러분 자식도 그렇게 한탄하며 보내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복을 구하며 공부든 일이든 최선을 다하세요. 쓸 돈 없으면 그 시간에 공부하세요. 그러면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나중에 여러분 자녀들에겐 좋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을 통해 얻는 세번째 교훈은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 것입니다. 밧단 아람의 20년 세월은 야곱이 고생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든 세월이었지만 인생의 기반을 다진 세월이었습니다. 야곱은 거기서 두 아내를 얻었고, 르우벤부터 요셉까지 11명의 아들이 생겼으며 거부 소리를 들을 만큼 많은 양떼와 약대와 나귀와 노비를 얻었습니다. 야곱의 경우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하나님을 믿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갚아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중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는 겁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 머물던 14년 세월 동안 고생하고 얻은 것은 처자식 뿐이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에게 속아 일만하고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친 야곱은 외삼촌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포기했다면 거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 라반은 야곱이 원하는 방식으로 품삯을 주겠다고 달랬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오늘 이후로 양떼 중에서는 아롱진 자와 점있는 자와 검은자, 염소 중에서는 점 있는 자와 아롱진자가 태어나면 그걸 야곱이 자기 몫으로 하겠다고 제안합니다.

라반은 야곱의 제안을 듣고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라반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목축업을 한 사람이니 아롱지고 점 있고 검은 것을 모두 골라내면 야곱의 몫이 잘 안 나올 것 같았습니다. 라반은 하나님이 야곱 편이라는 걸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꿈에 보니까 양떼를 탄 수양이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성경엔 하나님께서 라반의 소행을 아시고 야곱에게 갚아주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야곱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몸을 낮추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선 필요하면 몸을 낮추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절대로 머리 숙일 수 없다는 것은 자존심이라기보다 교만이겠죠. 남에게 머리 숙이지 못해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주도 면밀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타이밍을 잡는 감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배워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비열한 수단으로 남을 이용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니고 몸을 낮춰 정글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상대로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펴봅시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들은 에서는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려고 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칠 때 에서는 동생이고 뭐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저 야비한 놈을 반드시 죽일 심산이었습니다. 야곱도 형의 감정을 알기 때문에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를 맞이하러 온다는 말을 듣자 마자 두렵고 답답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형 에서의 공격에 대비하는 동시에 그의 감정을 풀고 호감을 얻으려고 주도 면밀하게 계획했습니다.

야곱은 따르는 무리들과 가축을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에서가 한 떼를 공격하면 남은 한 떼는 도망갈 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기도하다가 천사를 보자 축복해달라고 붙잡고 밤새 씨름하다 엉덩이뼈를 얻어맞고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엔 이게 에서가 불쌍하게 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밤새 씨름하느라 지쳤을 거 아닙니까? 거기다 다리까지 절고 있는 동생을 보니 불쌍한 마음이 들었겠죠.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직전에 여종과 그 자식들을 제일 앞에, 중간에 레아와 그 자식들, 그리고 라헬과 요셉을 제일 뒤에 좀더 안전하게 배치했습니다. 야곱은 몸을 일곱번이나 땅에 굽히며 에서에게 나갑니다. 형이 다가와 포옹할 때는 형님의 얼굴을 뵌즉 하나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말하고 내 주라고 하나님처럼 높여 불렀습니다.

야곱은 가족과 재산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을 최대한 낮추었습니다. 가족을 지키고 재산도 지키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선물을 보내고 엎드리고 주라 불러주고 못할 게 뭡니까? 그게 세상 살이 입니다.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고 처자식을 고생시키고 집안 망하면 뭐합니까? 전 힘들고 모냥 빠지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가족은 체면보다 소중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체면보다 더 소중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도 체면보다 소중합니다. 사실 우리는 주의 종이니 자존심, 체면이니 이런 거 버리고 가야죠.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온 야곱은 세겜 성 앞 밭을 사서 그곳에 장막을 치고 머물게 되었습니다. 세겜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65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기도 합니다. 야곱에게 디나라는 딸이 있었는데 세겜성에 구경나갔다가 추장 세겜에게 강제로 욕을 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고비 넘겼을 때 또 이런 불행한 일이 터지는 게 인생이죠. 이걸 뭐 조심 안 해서 생겼다고 할 수도 없잖습니까? 나중에 동생의 소식을 듣고 분노한 시므온과 레위가 동생 디나를 아내로 달라는 세겜에게 세겜 남자들이 모두 할례받아야 한다고 속여서 할례받고 고통스러워할 때 급습해서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의 보복이 두려워 일을 크게 만들었다고 두 아들을 책망하고 시므온과 레위는 동생을 그렇게 만든 놈들을 가만 두는 게 옳으냐고 항의합니다.

야곱에 대한 기록이 더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야곱의 좋은 면에 대해서만 말씀드렸습니다. 물로 야곱에게도 비난받을 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계획을 모르고서 드러난 행동만 가지고 윤리나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 판단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을 선택한 하나님께서 은혜와 주권으로 우리도 택하여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 되게 해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기 바랍니다.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바랍니다. 또한 야곱이 자기 인생을 견뎌내고 마침내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기 바랍니다. 힘들지만 공부든 직장일이든 사업이든 눈붙일 겨를 없이 산 야곱처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10년 20년 하다 보면 하나님이 복 주실 것입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낙심하지 않고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살다 보면 뜻 밖에 불행한 일도 생기는 게 인생입니다. 행복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스런 사정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불행한 일이 생기고 힘들면 하나님을 찾기 바랍니다. 불행은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위기를 넘어가게 해주십니다. 오늘 야곱을 통해 배운 인생의 교훈을 가지고 여러분 모두 인생의 승리가자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