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받자

마가10:32-45

성탄절을 앞두고 오늘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는 것”(막10:45)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섬김과 대속입니다. 지금부터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공생애 3년이 거의 다 끝나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거의 일주일 전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몇 달 동안 베뢰아 지역을 전도하신 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조만간 닥칠 일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했습니다. 33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고 저들이 죽이기로 결정해서 능욕과 고문을 당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다가올 수난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 동안 누구보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열심을 내던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보다 주의 나라가 임했을 때 영광과 권세를 미리 보장받는데 열을 올렸다는 게 다소 의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합니다. 대개 열심을 내는 사람은 욕심도 많은 법입니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크겠죠.

오늘 본문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예수님께 부탁한 것으로 나오지만, 같은 사건에 대한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와서 간청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들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교인들이 하나님께 뭔가를 바라서 교회 다니고 봉사합니다. 구원해주신 것이 감사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열심을 내며 교회를 섬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예수님께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다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자리에서 제자들은 서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분을 낸 것은 그들도 같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3년 동안 함께 하며 보여줘도 아직 못 깨닫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뭘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잘 타일렀습니다. 높아지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 이 모습이 진정한 제자상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우리 본성과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높아지고 대접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어떤 분 말이 세상엔 두 가지 법칙이 있답니다. 중력법칙과 이기주의 법칙.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중력법칙 때문에 쉽습니다. 반대로 땅에서 하늘로 쏘아 올리는 게 힘들죠. 마찬가지로 이기심법칙 때문에 낮아지고 남을 섬기는 게 힘듭니다. 은혜 받고 변해야 가능합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실제로 주의 종으로 일하면 교회에서 권력타툼은 거의 사라질 겁니다. 모든 교인들이 섬기는 자세로 일하면 교회에서 분쟁이나 분열은 거의 사라질 겁니다. 최근에 어떤 교회 장로들이 은퇴한 목사의 과거 비리에 대해 법의 단죄를 구한다고 소송을 냈습니다. 명분을 뭐라 하든 간에 돈이 걸려있어서 그렇게 한 것 같은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서까지 자기들의 유익을 구하겠다는 것이죠. 정말 교회를 위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어야죠.
섬기는 자, 이것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고 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본 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기 때문에 세상에서 권력을 잡으려고 시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때 추종하던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예수님은 군중들을 피해 산 속으로 은거하셨습니다. 사실 섬기는 종이 되는 데는 권력이 필요 없습니다. 지배하고 다스리려니 권력이 필요한 거죠.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국민을 섬기는 정치인들은 별로 없고 저마다 권력을 잡고 자기 야망을 이뤄보려는 사람들 뿐입니다.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의 장래를 염려한다면 목사들까지 패거리 지어서 정치 논리에 빠져 대통령을 물러가라거나 지지한다거나 그러지 않을 겁니다. 목사의 고유한 직무는 복음을 전해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고 변하여 새롭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세상에 평화가 오고 인권이 존중되고 정의가 실현되게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목사는 주님을 본받아 사람들의 종이 되어 섬겨야죠. 떼를 지어 성명을 발표하면서 권력과 맞서 싸우겠다는 것은 기상은 가상하지만 섬기는 종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큰 자가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는 것은 이 세상의 법칙과는 반대입니다. 이 세상에서 큰 자는 재물과 권세를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재물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은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들이지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도 종교지도자들도 요즘엔 대접받으려고 하지 섬기는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다고 이야기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이 섬기는 종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원래 목사라는 말에는 돈 냄새 권력 냄새가 나면 안됩니다. 청소부 혹은 미화원이라는 말에서 돈이나 권력의 이미지를 느낍니까? 안 그렇습니다. 낮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실제 그렇게 사니까 그렇죠. 목사의 원형인 목자도 그런 직업입니다. 야곱의 고백처럼, 낮엔 더위와 밤엔 추위와 고생하며 제대로 잠도 못자고 양 떼를 돌봐도 재물도 권력도 얻지 못하는 자리가 목자입니다(창31:40). 목사는 그렇게 사는 인생이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목사들이 재물도 모으고 권세도 가지고 세상을 향해 호령하며 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면서 섬기는 자리에서 대접받는 자리로 옮겨갔습니다. 대접받는 자리를 지키려고 다투는 거죠. 섬기는 자리 지키려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거긴 경쟁자가 별로 없거든요.

성탄절을 맞이해 섬기러 오신 예수님,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섬기며 살다 가신 예수님을 본받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먼저 가정에서 교회에서부터 섬기는 삶을 몸에 익혀 세상에 나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 섬기는 수고를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불평한 것을 반성하고 2014년엔 대접받을 생각을 버리고 교회를 더 섬기는 주의 종이 되기를 힘쓰겠습니다. 여러분도 남은 인생을 섬기는 삶에서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