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3: 8~18

오늘은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대쪽 같이 타협없는 신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 사람은 왕이 만든 신상의 낙성식에서 신상에게 절하라는 명령에 불복한 이유로 왕 앞에 불려갔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아끼던 왕은 이 세 사람은 타일러 지금이라도 신상에게 절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풀무불 속에서 죽지 않게 구해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만에 하나 하나님께서 풀무불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지 안더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금신상에게 절하는 일 같은 것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이 세 사람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 좀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에 왕의 꿈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왕이 꿈에 본 신상은 머리는 금으로 만들어졌고, 가슴과 두 팔은 은으로, 배와 넓적다리부분은 놋으로, 종아리와 발의 일부는 쇠, 그리고 발의 나머지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박사, 점성술사, 술객, 심지어 무당까지 불러다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하나님을 섬기던 다니엘은 이상 중에 그 꿈 내용은 물론 의미까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품은 계획을 하나님께서 드러내주지 않으면 귀신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무슨 일이 있으면 점보려고 철학관이나 용하다는 무당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얼마나 쓸대없는 것인지 깨달아야합니다. 
꿈 해석에 감동을 먹은 느부갓네살왕은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단2:47)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건을 보면서 이게 입에 발린 말 뿐이었다는 걸 알겠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가와 같이 허망합니다. 왕이 말한대로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모든 신들의 신이요 왕을 다스린다고 깨달았다면 신상 따위를 만들어 절하며 섬기도록 명령하는 짓은 하지 않았겠죠. 왕이 왜 갑자기 신상을 만들었는지 짐작이 갑니까? 신상의 금머리가 왕이라는 다니엘의 꿈 해석을 듣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사실 그 꿈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지혜로운 왕이라면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결단을 내려야 했을 것이지만 바벨론 우상 숭배에 뼈속까지 쪄들어 있던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다니엘은 금으로 된 신상의 머리가 느부갓네살 왕을 가리킨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왕 보단 못하지만 은 가슴과 팔로 상징되는 다른 나라가 일어나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금 머리라도 결국 지금 자기 나라가 언젠간 멸망한다는 이야길 들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금 머리라고 좋아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느낌에는 왕이 금 머리라는 말에 혹해서 세상엔 자기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더욱 교만하고 큰 신상을 만들어 백성들로 절하여 섬기도록 했습니다.

왕은 금으로 큰 신상을 만들어 두라 평지에 세웠습니다. 두라 평지가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는 분명치 않고 바벨론의 Southeast지역이라고 합니다. 신상의 크기는 높이가 60규빗 / 너비는 6규빗으로 돼있습니다. 1규빗은 45.6cm이니 신상의 높이는 27m 35cm 너비는 2m 74cm 거대한 신상을 세운 것입니다. 왕은 이 신상 낙성식에 총독, 수령,행정관,모사,재무관,재판관,법률사,각 지방 모든 관원을 참석시켜 신상에게 절하도록 명령하고 거역하는 사람은 풀무불에 던져 처형토록 했습니다. 어이 없는 조치였지만 왕명이 지엄해서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고 시키는데로 했는데,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는 왕의 신상에 절하는 걸 거부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다 포로 주제에 바벨론 높은 관리가 백성을 다스리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바벨론 우상숭배자들은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왕에게 밀고했습니다. 왕명을 항거한 신하를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된 왕이 세 사람을 불러 타일렀습니다. 지금이라도 신상에 절하면 지난 번 일은 문제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왕이 유다 포로지만 재능 있던 이 세 사람을 매우 아꼈다는 걸 보여줍니다. 15절에서 왕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불타오르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겠다.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회유했습니다. 그러나 세 젊은이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타는 용광로와 왕의 손에서 구해 내실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외국인 포로가 젊은 나이에 당시 최강의 바벨론 제국의 지방 수령의 자리에 놀랐으니 개인적으로는 성공한 인생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직자 입장에서 개인의 신앙을 이유로 왕명이나 국가 시책을 거스리는 건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잠시 신상에 절하고 넘어가면 큰 문제가 될 게 없었습니다. 언젠가 서울시장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기도했다고 곤욕을 치렀습니다. 교인들도 그것은 공직자로서 적합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가세했습니다. 요즘엔 대통령과 청와대가 특정 종교를 편든다고 어떤 종교계에선 불만을 표출하고 그걸 무마하려고 애쓴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오늘의 시각으로 본다면 다니엘이나 세 친구는 평범한 시민이 아닌 고위직에 오른 행정관료 혹은 정치인입니다. 그들은 다른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개인 신앙을 앞세워 왕명을 위반한다는 건 보기에 따라서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즘 보면 정치인들은 정치와 신앙은 별개처럼 움직입니다. 교회에선 장로인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들이 사찰 모임 같은 곳에 가면 의례히 참배하고 절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개인 신앙을 이유로 타종교 행사에 참석하지 않거나 참배를 거부하면 종교를 차별한다고 또 무시한다고 그 종교에 속한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여론이 악화되고 지지도가 떨어지고 그럴 겁니다. 사실 종교가 다양한 현대 사회에서 특정 종교의 신념에 따라 정치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신앙과 생활은 일반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직장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며 어딘가 속해 살아가야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다 보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 지 딜레마에 처하게 됩니다. 다음 주에 시험입니다. 의대에 가기 위해 최소한 3.8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BJ에겐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토요일까지 열심히 했지만 충분치 못해 불안합니다. 내일이 주일인데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교회에 가야할 지 집에서 개인적으로 간단히 기도하고 계속 시험공부를 해야할 지 갈등입니다.
JB는 직장에서 다음 주일에 MT가 있습니다. 그 전에도 주일에 교회 간다고 MT에 불참해왔는데 이번엔 보스가 새로부임해 눈치도 보여서 맘 속으론 이번엔 할 수 없이 예배에 빠지고 MT에 참석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BY는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신다고 연락이 왔는데 도착예정시간이 주일 오전 12 경입니다. 교회 간다고 기다리고 계시라고 하거나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여 부득이 주일을 빠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K는 최근에 예수님을 믿는 불신자 집안의 장손입니다. 두 달 후에 문중이 모여 시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제사에 참여해야 할지 갈등입니다. HS는 국토안보부 직원인데 요즘 비상이 걸려 직원들이 주일에도 계속 나와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료직원들 눈치가 보여 자기도 주일에 출근해야 할지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직장에서 보스와 갈등이 생기고 승진에 장애가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일에 예배드리기 위해 시험을 못 볼 수도 있다면 그 결과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느라 믿지 않는 부모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거나 눈 밖에 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느라 지금 가지고 있는 지위나 신뢰를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맘 속까지 하나님을 부인하라는 것도 아닌데 눈 감고 머리 한 번 숙이는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주지 않겠습니까?
낙성식에 참석한 세 친구들도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 넣는다는 선포를 듣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죽음이 멀리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죽음 앞에 초연하지만 죽을 병이라도 걸리면 심리적으로 공포를 느낍니다. 죽음이란 게 그런 겁니다. 지금 세 젊은이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신앙의 진실성을 시험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타 죽을지언정 신상에 절하여 십계명 중 두번째 계명을 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겐 신상에 절하는 걸 거부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풀무불의 죽음과 왕의 위협에서 하나님께서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일단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의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평소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잘도 믿고 의지하다가 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늘이 꺼진 것처럼 겁내며 믿음 없는 사람이 되어선 안됩니다. 어둠 속에 불 빛이 필요한 것처럼 위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끝까지 의뢰하며 세상과 싸우며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지킬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언제나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

종할 때 전쟁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승리였습니다. 전투력이 위일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는 패했습니다. 사단과 싸울 때도 내 힘과 의지와 꾀를 의지하고 싸우면 생명의 위협 앞에 겁을 먹고 물러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죽음 앞에서도 담대해집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믿었으나“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왕의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뜻이 계셔 자기들의 믿음대로 용광로의 불속에서 혹은 왕의 손에서 구해주지 않고 죽음을 당하게 내버려 두신다할지라도 자기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 신상에 절하지 않고 그냥 죽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고백에서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이 구해주실 것이기 때문에만 왕의 명을 거부하고 신앙을 지킨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실망한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암으로 죽어가는 가족을 위해 금식하고 작정하여 기도하고 헌신의 표현으로 거액의 헌금을 드리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병이 낫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상처받을 때 하나님은 어디계셨습니까?], [하나님 나는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이런 책을 보면 선천성 기형아, 심장병, 소아암으로 죽어가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다 실망한 부모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돌아온 건 실망 뿐인 현실 앞에 그들은 믿음을 잃어버리기 직전에 서있습니다. 부도의 위기에 직면하여 어떤 기적 같은 해결책을 구했으나 끝내 부도로 빗더미에 앉게 된 사람의 이야기 등.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런 상황으로 내 몰린 적이 있을지 모릅니다. 실망해서 하나님을 거의 떠날 뻔 한적도 있을 것입니다. 실망과 분노의 원인은 그리 아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 청년은 그리 아니하신다고 해도 신앙을 위해 죽겠다고 했습니다. 왕 앞에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해야 왕의 체면이 서고 기분이 좋아져 너그러운 왕인척하며 봐줄 건데 이건 너무 빡세게 나왔습니다. 왕은 세 청년을 아끼던 마음이 사라지고 분노가 솟아 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왕은 온도를 7배나 높이도록 한 후 병사들을 시켜 왕명을 우습게 여긴 세 청년을  용광로 불 속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불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사드락 메삭 아벤느고를 붙잡고 가던 병사들이 용광로 밖에서 불타 죽는 사고가 발생할 정도였습니다. 왕은 방자한 세 젊은이가 어찌 되는지 지켜본듯합니다. 그러다 왕이 깜짝 놀랐습니다.
세 사람을 결박해 용광로에 던져 넣었는데 용광로 속엔 결박되지 않은 네 사람이 자유롭게 걸어다니는데 그 모습이 왕의 눈엔 신의 형상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겁을 먹은 건 왕이였습니다. 왕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이리로 나오너라!”소리쳤습니다. 조금 전만해도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겠느냐고 위협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눈 앞에 벌어진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후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하나님을 이런 방식으로 알아가는 듯합니다. 당해보고 난 후 달라지는 것 말입니다.

용광로 밖으로 나온 세 청년을 본 왕은 더욱 정신이 나갔습니다. 그 뜨거운 불 속에서 머리카락 한 올 끄슬린 흔적이 없었고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눈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물론 바벨론의 방백, 수령, 도백, 참모들 모두 자기들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섬기는 신의 능력으로 그리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왕은 이 젊은이가 믿는 신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청해서 조서를 내려 “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섬기는 하나님을 욕되게 말하는 사람은 그 몸을 쪼깨고 집을 거름터로 삼겠다”고 선포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을 통해 느부갓네살왕과 바벨론 온 땅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세상을 다스린다는 걸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무대에 주연은 당연히 하나님이시지만 세 청년은 주연다운 조연을 했습니다. 세 청년이 초반에 겁을 먹고 신상에 머리 숙였다면 이 드라마는 1회에 끝나고 말았겠지만 그들의 믿음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겁을 먹고 실망하는 이유는 죽어도 좋다는 경지까지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소망은 있지만 이 세상의 일들이 맘대로 잘 안될 때 예수 믿는 기쁨이 소멸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신앙은 전염성이 떨어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주었는지 염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변사 더둘로는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을 가리켜 “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들을 다 선동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엔 어김없이 예수믿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살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 고통, 불행 같은 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도 다 당하는 겁니다. 실연, 자녀문제, 가정불화, 질병, 교통사고, 사업실패, 실직, 등. 나에게도 언제든 올 수 있다는 걸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기대와 달리 하나님께서 이런 세상 고통 속에서 당장 우리를 구해주지 않더라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믿음을 연단해야 합니다. 인생 30 정도 밖에 안된 청년들이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들을 보면 여러분에게도 이런 믿음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떠날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믿음을 더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세상 우상을 섬기지도, 하나님을 원망치도 아니하겠노라 고백할 수 있어야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믿음을 지키는 게 성공한 인생입니다. 공부를 많이 해 지식인이 되고, 돈을 모아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 명예를 얻었다 해도 사는 동안 수도 없이 신상에 절하며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그건 실패한 인생, 불행한 종말이 기다릴 뿐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끝까지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크고 작은 위험에서 지켜주십니다. 혹시 어려움 점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른 뜻이 있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을 지켜낼 수 있는 단계까지 자라도록 힘쓰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