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9/29/19)

시선 / 시편 23편 / 복진형 집사

시편 23편은 다윗이 가장 힘겹고 어려움이 많았을 때 쓰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대부분은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노년에 도망 다닐 시기 전 후로 보는 정설이 있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 왕은 하루 아침에 갖고 있었던 모든 것을 잃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에게 말이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시편23편 1절 은 다윗 자신의 시선을 처한 상황이나 주변의 환경 등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게 느낀 것은 세상 속에서 주님을 향한 시선을 잃지 않고 매일매일 하나님께로 시선을 유지하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우리는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많은 경우 당장 눈 앞에 있는 필요에 놓기 십상입니다. 다윗 왕역시 수많은 다른 시편들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습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항상 다윗은 그 시선을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 두게 되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시선의 바뀜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생각의 바뀜이 우리의 행동을 바꿉니다. 다윗이 여기서 고백하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께로 시선을 향하면 현실이 부족한데도 부족하다는 마음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역사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축복입니다.

더 나아가서 3절에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라고 고백합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동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지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우리를 채워 주시는 이유는 첫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두번째는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의의 길이란 로마서 1장 17절 에서는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의가 복음속에 나타나고 그것은 오로지 믿음으로 근거하여 일어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을 예수님의 대속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복음의 길입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족하지 않게 채워 주심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 왕은 4절에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다윗 자신의 의지적인 표현입니다. 이것은 능동적인 행동이 필요한 말입니다. 막상 우리는 살면서 어떻게 행동하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께 매우 잘 나아갑니다. 하지만 그 축복을 받은 뒤에는 세상속에 묻혀 우리가 받은 축복을 잊기 매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지 생각을 하나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일방향인가요 아니면 다윗 왕처럼 양방향인가요? 무엇이 진정 우리 믿음의 고백이 될까요?

우리의 시선을 바꾸면 우리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우리가 복음을 받고 구원에 이르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깨달아지면 우리 역시 의지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옛적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심을 믿고 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끝은 다윗 왕이 고백한 마지막 절로써 보여줍니다. 적들과 고통이 사방에 나를 둘러 쌓는 상황속에서도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이 살리라.” 매 순간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늘푸른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